56년 전, 등록금 벌려고 알바로 연기 시작한 소녀의 근황
도그데이즈’ 윤여정② “변명도, 후회도, 낙담도 없다”
7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살고 있는 노년의 배우는 자신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들려주었다. 아르바이트로 연기를 처음 시작한 때로부터 이제 관록의 배우로 자리매김해 세상으로부터 쏟아지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윤여정(76)은 자신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 속에서 세상과 사람에 대한 실망감, 자신의 주변에 대한 ‘츤데레’와도 같은 무심함 속 따스한 인간미, 여전히 당당한 배우로서 자존감 등이 한껏 묻어났다. 대중은 그래서 그에게 ‘윤며들다’(윤여정에게 스며들다)는 별칭을 안겨주었을까.
▲연기를 처음 시작한 계기가 무엇이었을까요.
“알바로 시작했어요. 돈 벌려고. 내가 너무 안 좋은 학교를 갔기 때문에 엄마한테 등록금 달라고 하기가 너무 미안했어요. 반세기 전 얘기예요.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 일이기 때문에 옛날에 나오는 얘기예요. 옛날 얘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을 제가 살았어요.”
그러면서 윤여정은 ‘꼰대’를 말했다. 자신이 한창 젊어 살았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너무도 다르다면서. 자신의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꼰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그는 말했다.
“여러분은 아마 우리나라가 정말 잘 살 때 태어난 사람들일 거예요. 나는 지금도 깜짝깜짝 놀라요. 전쟁 때 피난 가고 그럴 때 생각하는 엄마나 부모님들이 여러분을 보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뜨거운 물 나오는 집도 없었어요. 그래도 나는 그때가 굉장히 행복했던 것 같아요. 아무 격차도 없었고, 명품 그런 것도 몰랐고요. 그래서 이런 어른들이 보면 여러분한테 막 말하고 싶겠지. 그렇게 사는 거 아니라고. 근데 난 절대로 안 하지. 나 혼자 집에 가서 욕하지. ‘뭐 그런 것들이 다 있어’라고.”
▲‘내가 연기를 좀 잘하는 것 같다’면서 연기에 재미를 느낀 때는 언제였을까요.
“잘 하는 것 같다고는 생각 안 했어요. 우리 때는 적령기가 되면 다 시집을 갔어야 했어요. 안 가면 손가락질해요. 저 집 딸이 왜 시집을 못 가냐, 무슨 문제가 있냐, 이랬기 때문에 시집은 꼭 가야 했어요. 그래서 시집을 갔고, 그리고 그만뒀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시집을 가면 자연히 은퇴를 하는 거였어요. 어쩌다 다시 제가 배우를 하게 됐을 때 굉장히 감사했죠.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삼성에서 임원으로 잘 나가던 여자가 10년쯤 공백이 있다 다시 온다고 삼성에서 받아줄 리가 없잖아요. 여러분이 아무리 잘 나가는 기자라도 10년 공백이면…. 근데 나한테 일을 주고 일하라 그러고. 그래서 굉장히 고마웠어요. 열심히 했어요.”
▲당시 일과 관련해 가장 고마운 분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이혼하고나서 아무도 날 쓰지 않으려 했어요. ‘이혼한 여자는 쓰지 마십시오’라는 암묵적인 게 있었나봐요. 그때 김수현 작가가 가장 잘 나가는 사람이었는데, 그가 ‘너는 재능이 있으니, 그 사람은 내가 재능 있다고 생각했나봐, 내 도움 없이도 혼자 자립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드라마를 하는 순간 너는 다 없어질 거다’라고. 하지만 아무도 안 써주자 김 작가가 ‘정말 촌스러운 놈들! 진짜!’ 그러면서 저를 처음 써줬다.”
▲이제 많은 작품을 하면서 그래도 배우를 업으로 삼기를 잘했다 이렇게 느끼시는 순간이 있으셨겠네요.
“매 순간 그렇게 느꼈어요.”
▲연기 피로감은 어떨까요.
“많죠, 있죠. TV(드라마) 할 때, 이 역할 한 다음에 바로 또 다음 역할 넘어가고, 텀이 짧잖아요. 그럴 때 정말 힘들고 맞는 건가 했죠. 그런데 나는 또 실용적인 사람이라 먹고 살려고 해야 했기 때문에 아무튼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다 내가 받은 레슨이에요. 내가 받은 수업이에요. 지금은 이제 내가 돌아볼 것밖에 없잖아요, 바라볼 것보다는. 그러니까 다 반추하는 나이가 되어 지금은 노배우가 됐어요.”
▲같은 시대를 살았던, 또 살고 계시는 나문희·김영옥이 주연한 영화 ‘소풍’이 ‘도그데이즈’와 같은 날 개봉합니다. 경쟁이 불가피하게 됐는데요.
“그런 걸 무슨 경쟁이라고 해. (김)영옥 언니는 저보다 딱 10년 위예요. 그래서 내가 맨날 농담 삼아 영옥 언니가 내 롤모델이야 그래요. (나)문희 언니는 저보다 5살 위인데, 그러니까 TV드라마 초창기부터 같이 하고 그랬으니까, 뭐, 정말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죠.”
윤여정은 2016년 노희경 작가가 대본을 쓴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떠올렸다. 그를 비롯해 김혜자, 나문희, 김영옥, 고두심, 박원숙, 신구, 주현 등 그야말로 ‘전설’의 배우들이 화려한 출연진을 구성한 드라마는 노년의 삶과 청춘의 이야기를 버무려 시청자 사랑을 받았다.
“그때 우리가 굉장히 감사했어요. 우리가 함께 할 횟수가 줄어들던 때였어요. 노희경 작가에게 (김)혜자 언니가 첫 촬영할 때 그랬어요. ‘이 작가가 우리 다시 만나게 해주려고 이 작품을 썼나 봐’ 그랬어. 그래서 우리가 감사해 했어요.”
그렇게 흐르는 세월을 아쉬워하는 윤여정은 2021년 영화 ‘미나리’로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한국배우가 쓴 최초의 역사로 남았다. 세상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많은 것이 바뀌었을 거라 짐작하나보다.
▲그 후 주연 제안을 많이 받으면서 씁쓸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사람이 간사한 거를 볼 수 있잖아. 난 쭉 살아 활동하고 있는데, 갑자기 상 탔다고 주인공으로 막 섭외하고. 영화 라운드 인터뷰를 많이 해봤지만 이렇게 (기자들이)많이 오신 적은 없었거든요. 제가 인기스타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멜로영화는 어떠세요.
“나는 여배우들이 왜 멜로, 멜로 하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미녀가 아니라서 멜로를 안 해봤고, 그래서 그런지 난 멜로에 대한 향수도 없고, 로망도 없어요. 어떤 순간에 내가 어떤 할아버지를 만나서 진짜 어떤 동지애를 느꼈다, 뭘 느꼈다 그러면 그것도 그들 나름대로 멜로예요.”
▲또 다른 로망이 있으실까요.
“그냥 이 자리 빨리 끝내고 집에 가는 거. 내가 무슨 약장사 같아. (그러면)안 되겠다. 그럼 약장사를 비하하는 거니까. 내가 좀 이렇게 다정다감한 형이 못 되나 봐요.”
윤여정은 그런 자신이 어머니를 닮았다고 했다.
“엄마가 우리한테는 전부였죠. 정말로 내가 하나, 우리 엄마한테 미안한 거는, 내가 아카데미상을 조금 일찍 탔다면 우리 엄마가 신사임당상을 받아도 아깝지 않아요. 34살에 청상과부가 돼 이북에서 넘어와 집도 절도 없는데 엄마가 공무원 시험을 보고 우리 셋을 먹여 살리셨어요. 그러니까 우리한테는 대단한 존재이고, 그리고 굉장히 실질적인 사람이었죠. 내가 우리 엄마를 많이 닮았어요. 아주 진짜 멋있는 사람이었어요. 멋있게 옷을 입어서가 아니고, 멋있는 말을 해서가 아니라 정말 분수를 알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거였죠,”
▲어머니가 해주셨던 말씀 중 아직도 마음 속에 담아두고 계신 게 있을 것 같아요.
“큰 부자는 하늘이 내는 거다. 열심히 일해서 저금 열심히 해야지, 쓸데없는 돈 넘보지 마라. 일해서 버는 돈이 정말 네 돈이다.”
▲이제 벌 만큼 버셨나요?
“난 건물도 없고 빌딩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런 거 상관없어요. 지금도 일을 해서 내게 수입이 있고, 이 나이에 그런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그러면 우리 엄마 딸로서 하나도 손색이 없잖아요. 우리 엄마도 돌아가실 때까지 자기 돈을 다 쓰시고 가셨어요.”
그렇게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윤여정은 마종기 시인의 ‘이슬의 명예’를 라는 시의 한 구절을 말했다.
‘변명도 후회도 낙담도 아양도 없이 / 한길로 살아온 길이 외진 길이었을 뿐’.
“아! 이 시인도 나 같은 삶을 살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