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초코파이 강제로 먹이는 ‘육사 파이데이’…인권위는 의견표명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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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육군사관학교(육사) 방문조사를 통해 선배가 후배들에게 '파이류 과자'를 강제로 먹이는 인권침해 관행을 확인하고도 별도의 의견표명을 포기하고 육사에 자율적 개선추진을 맡긴 것으로 확인됐다.
군인권보호국은 이러한 방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육사에 파이류 과자 강제취식에 관한 인권침해 관행을 시정해야 한다'는 정책권고와 의견표명안을 군인권소위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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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원 군인권보호관 등 권고 거부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육군사관학교(육사) 방문조사를 통해 선배가 후배들에게 ‘파이류 과자’를 강제로 먹이는 인권침해 관행을 확인하고도 별도의 의견표명을 포기하고 육사에 자율적 개선추진을 맡긴 것으로 확인됐다. 김용원 군인권보호관 등이 의견 표명에 반대했기 때문인데, 인권위 내부에선 ‘군인권보호관 제도 출범을 취지를 망각하고 피진정기관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나온다.
30일 한겨레가 더불어민주당 김성회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인권위 자료를 보면, 인권위는 육사 선임 기수 생도들이 일명 ‘파이 데이(3월14일)에 1학년 생도들에게 초코파이 등 파이류 과자를 강제로 과도하게 먹이고 있다는 제3자 진정 등이 접수됨에 따라, 육사에서의 인권상황을 파악하고 병영 부조리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 3월 방문 조사를 실시했다. 3월 14일인 ‘파이 데이’는 수학자들이 원의 둘레의 길이를 지름으로 나눈 값인 원주율 ‘파이(π) 3.1415926’을 기념하기 위해 이름 붙인 날인데, 육사에선 관행적으로 ‘파이류 과자’를 강제로 먹는 날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인권위 군인권보호국 조사는 육사 1~4학년 생도를 대상으로 한 개별 및 집단 면담과 전체 생도 106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를 통해 인권위는 “3월14일 파이 데이 당일 생도 면담 과정에서 ‘파이류 과자’를 먹도록 하는 관행과 육사 생도 간 발생한 파이 데이 취식 강요 문화는 과거부터 존재해 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생도 1·2학년의 경우 선배들의 취식 강요를 거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인권침해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했으며, 나아가 취식 강요 외에도 선배 생도의 후배에 대한 부당한 행위나 차별적 관행 등이 있을 개연성도 있다고 봤다.
전체 생도 1067명을 대상으로 한 모바일 설문조사 결과, 89%는 파이 데이 등 취식 강요 문화를 알고 있었다. 특히 응답 내용 중 일부에선 “3월14일 감시가 심할 것이라며 전날 실시하였다”, “3월10일과 18일 취식 강요를 경험했다”, “10분 안에 음료수 없이 최대한 많이 취식해야 했고, 분대별 대결 형태라 과식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금지해도 암암리에 진행했고, 강압적 분위기를 형성해서 토하거나 괴로워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등 구체적인 피해 내용이 언급되기도 했다.
군인권보호국은 이러한 방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육사에 파이류 과자 강제취식에 관한 인권침해 관행을 시정해야 한다’는 정책권고와 의견표명안을 군인권소위에 올렸다. 하지만 지난 9월24일 열린 군인권소위에서 김용원 군인권보호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복수의 인권위 직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소위에서 원민경 위원은 정책권고와 의견표명을 주장했고, 김용원·한석훈 위원은 “인권위 방문조사 이후 육사가 나름대로 조치를 하고 있으니 육사 자율에 맡기자”고 했다고 한다. 당시 원 위원은 “아무것도 안 할 거면 방문조사는 왜 했고 군인권보호관은 왜 존재하냐”고 강력히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인권위는 육사에 조사 결과를 알려주고 자체 개선하도록 맡기는 선에서 진정을 마무리했다. 육사는 생도 스스로 생도문화를 개선 정착시키기 위한 협의체인 ‘상호존중 위원회’ 신설 등이 담긴 생도생활예규를 10월 발령했다고 밝혔다.
인권위 한 직원은 “방문조사 결과에 따라 권고나 의견 표명 등을 통해 이러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 공론화하지 않고 감추면서 육사에 면죄부를 줬다”며 “헛수고 방문조사를 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인권위 또 다른 직원도 “피진정기관에서 알아서 하란 거는 검사가 백지 구형하는 거랑 다를 바 없다”며 “군사망 사건을 계기로 출범한 군인권보호관 제도의 설립 취지를 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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