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삐삐 만든 헝가리 공장, 이스라엘의 ‘유령 회사’였다”
17일 레바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해 4000여명의 사상자(레바논 보건당국 기준)를 낳은 무선호출기(삐삐)를 위탁 생산한 헝가리 업체가 이스라엘이 수년 전 만들어 운영한 ‘껍데기 회사’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뉴욕타임스(NYT)는 18일 이스라엘 정보 당국 관련자 세 명을 익명으로 인용해 이같이 전했다.
이날 레바논 전역에서 폭발한 호출기는 레바논의 이슬람 무장단체 헤즈볼라 대원들이 사용한 것으로, 대만 기업인 ‘골드 아폴로’의 상표가 부착돼 있었다. ‘골드 아폴로’는 테러 직후 “유럽 제휴 업체에서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방식으로 우리 브랜드를 붙인 것이며 우리는 이 사건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문제의 호출기가 제조된 공장은 헝가리 부다페스트 소재의 ‘BAC’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공장을 운영하던 주체가 이스라엘이라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NYT “해당 공장 이외에도 이스라엘 정보 당국이 운영하는 ‘유령 회사’가 최소 두 곳이 더 있다”고 전했다. 헤즈볼라의 호출기에 폭발 장치를 어떻게 심었는지를 두고 다양한 추측이 나왔는데, 이스라엘 당국이 아예 헝가리에 공장을 만들고 실제 운영을 하면서 대만 회사의 수주를 받아 ‘폭탄 삐삐’를 만들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보도에 따르면 BAC는 평상시엔 일반 업체와 같이 주문을 받고 정상적인 제품을 제조했다고 한다. 그러다 헤즈볼라가 주문을 넣었을 때만 탄약 등을 넣은 무선호출기 등을 제조했다. 이 공장에선 헤즈볼라가 주문한 무선호출기의 배터리 표면에 강력한 폭발 물질인 PETN을 발라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폭탄 삐삐’는 2022년 여름 처음으로 레바논에 소량 배송됐고, 올초 헤즈볼라가 휴대폰 사용을 자제하면서 수천 대가 제작돼 레바논에 전달됐다. NYT는 이스라엘 정보 당국이 해당 무선호출기를 언제든 적당한 때에 누를 수 있는 ‘버튼’이라고 불렀다고 전했다.
헤즈볼라가 조직적으로 무선호출기를 쓰도록 부추긴 것 또한 이스라엘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헤즈볼라는 휴대전화가 이스라엘에 추적당하기 쉽다며, 휴대폰 대신 무선호출기를 쓰도록 했는데 이 ‘소문’ 자체를 퍼뜨린 주체가 이스라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휴대폰을 해킹해 원격으로 마이크와 카메라 등을 작동시켜 소유자를 감시할 수 있다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이야기는 몇 년 전부터 아랍권에 퍼졌다. 이후 헤즈볼라와 그의 동맹국들 사이에서 그 어떤 휴대전화 통신도 더는 안전하지 않다는 소문이 확산하며 무선호출기가 대거 배포됐다. 메시지를 받기만 하는 무선호출기는 기지국으로 어떤 정보도 보내지 않아 자신의 ‘위치’를 노출하지 않는다. 개인 정보 보호에 유용하다는 뜻이다. 로이터는 “무선호출기는 휴대전화와 달리 GPS(위성항법장치)가 내장되지 않아 위치 추적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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