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되지 못한 조선의 왕) 세조가 끔찍이도 아낀 덕종, 의경세자

7대왕 세조의 장남
의경세자입니다.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7대왕 세조

찬탈로 인한 등극이었던만큼
아무래도 초기 권력기반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기에

1455년 세조는 왕위에 등극하자마자 장남을 세자로 책봉했습니다.

의경세자는
아버지와 완전 다른 성격이었는데

성품이 온화하고 공부하는 걸 즐겼으며
서예와 시문에도
능력이 뛰어났다고 하죠.

아버지와 성격은 딴판이었어도
의경세자는 세조와 부자지간이
굉장히 좋았다고 하고

세조와 세조의 아내 정희왕후가
이토록 주변 평판이 좋은 의경세자를 굉장히 아꼈다고 합니다.

그런 의경세자였기에
아버지가 찬탈한 정권에서
차기 국왕인 세자로 임명된 것에 대한
부담감을 느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의경세자의 건강이 좋지 못했고
세조 재위 3년이었던 1457년
20살을 채우지 못하고 사망합니다.

세조가 직접 의약품을 공수할 정도로
아들 회복에 정성을 들였으나
치유하지 못하고 사망해버렸죠.

의경세자의 요절과 관련하여
전설이 하나 내려온답니다.

세조가 꿈속에서 자기 형수님,
즉 자기가 죽인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가 나타나

“네가 내 아들을 죽였으니
나도 네 아들을 죽이겠다”며
저주를 퍼부었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아들 의경세자가 실제로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러나 의경세자가
단종보다 먼저 죽었기에
이 이야기는 그저 전해지는 전설이랍니다.

세조는 죽은 자신의 장남을
끔찍이도 아꼈기에
아들 사후 세조가 직접 의경세자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1457년 의경세자가 사망하자마자
그 해에 바로 당시 8살이었던 차남 해양대군을
새로운 세자로 책봉합니다.

사실 세자가 죽을 경우
그 동생이 뒤를 잇는 게 아니라
그 아들이,
즉 왕의 손자가 세손에 책봉되는 게 원칙입니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세조는 의경세자 사후
그 동생을
세자로 책봉했는데요,

세조가 장남 의경세자를
워낙에 예뻐했던지라
왜 원칙을 무시하고
동생 해양대군을 세자로 책봉했는지는
설만 무성할 뿐
정확한 세조의 의중은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가장 유력한 설로는
손자를 세손으로 책봉하면
자기 둘째아들이 자기처럼 삼촌으로서 왕 욕심을 낼까봐

그런 일이 없도록
처음부터 둘째아들을 세자로 임명했다는 해석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세자로 책봉된
세조의 둘째아들 해양대군이
조선의 8대왕 예종이 되었고,

예종도 일찍 죽자
죽은 의경세자의 둘째아들 잘산대군이
9대왕 성종으로 즉위합니다.

성종이 왕이 되자
자기 아버지 의경세자에 대한
추존이 필요했고

의경세자를
덕종으로 추존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