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8번’으로 불리며 차별받던 혼혈 소녀…156명의 엄마 됐다
한국서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
오랜시간 힘들고 아팠던 경험
같은 처지 아이들 품어주고파
다문화 대안학교 ‘해밀’ 설립
12년간 156명 학생들 함께해
용감한 나라 美·동트는 나라 韓
이젠 양국 부모 둔 거 감사해
![인순이가 4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작업실에서 매일경제와 만나 ‘영향력 있는 여성상’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08/mk/20250908070902192tsnv.jpg)
지난달 말 미국에서 열린 시상식을 마치고 돌아온 인순이 씨는 최근 본인의 성수동 작업실에서 진행된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에서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 나는 꿈이 어떻고 성공이 어떻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최선을 다해 내 인생을 살아나가려고 했을 뿐인데 이런 순간은 정말 상상하지도 못했다”며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인순이 씨가 올해 수상자로 선정된 배경으로는 2013년 다문화가정 아이를 위한 대안학교 해밀을 설립한 게 주요하게 작용했다. 해밀학교는 미국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혼혈로 태어난 그가 혼혈 아이들의 아픔을 다독이고 올바르게 성장하도록 이끌기 위해 사비를 털어 강원도 홍천에 설립한 학교다. 인순이 씨는 현재 해밀학교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인순이가 4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작업실에서 매일경제와 만나 ‘영향력 있는 여성상’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08/mk/20250908070903469zhfc.jpg)
인순이 씨는 자신의 사춘기는 남들보다 유독 춥고 길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나의 아픔을 누군가가 또 겪는다면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며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성공하게 됐으니 감사할 따름이고 학교를 세운 것도 내가 받은 걸 되돌려주고 싶어서 내린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올해로 설립 13년 차를 맞는 해밀학교는 전액 무료로 운영된다. 국가 지원이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후원금과 인순이 씨의 사재로 운영된다. 학교 운영비가 만만치 않다 보니 인순이 씨는 12년 넘게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학교 설립 이후로는 휴가도 제대로 못 가고 스타일리스트 쓸 비용도 아껴가며 행사를 뛰고 있다. 현재 약 600명인 후원자를 1000명까지 늘리는 게 꿈이라는 인순이 씨는 “그만둘까 고민도 수없이 하지만 그때마다 기적처럼 후원의 손길이 이어진다”며 “학교에 가서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보면 고생했던 기억은 한순간에 씻겨 나간다”며 웃었다.
![인순이가 4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작업실에서 매일경제와 만나 ‘영향력 있는 여성상’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08/mk/20250908070904727kkvu.jpg)
해밀학교 설립자로서 그의 목표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친정엄마’가 되는 것이다. 그는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며 “내가 살아온 길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나는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더라’라고 한마디 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겐 힘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 156명을 키우면서 인순이가 바라는 것은 딱 한 가지. 후원받던 ‘1208번 소녀’가 후원자로 성장한 것처럼, 아이들 역시 받았던 도움을 되돌려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는 “아이들이 힘들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과거의 자신처럼 길을 잃고 방황하는 다문화 아이들에게 인순이 씨가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힘든 일이지만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아.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심사숙고하고 길을 잘 찾는다면 네가 원하는 그 방향으로 갈 수 있어. 한번 살아보자. 그리고 함께 견뎌내보고 버텨보자.”
소설 ‘대지’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소설가 펄 벅은 1965년 한국 전쟁고아와 혼혈 아동 등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펄벅재단을 설립했다. 1967년 부천 심곡동에 사회복지시설인 소사희망원을 설립해 직접 이들을 돌보고 교육시켰다. 1973년 그가 생을 마감하면서 소사희망원도 1975년 문을 닫았다. 펄벅인터내셔널의 영향력 있는 여성상은 이 같은 벅의 정신을 기리고자 1978년 제정됐다. 벅은 한국 혼혈아를 다룬 소설 ‘새해’를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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