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스, 체어맨의 대항마를 꿈꿨지만 망해버린 대우 고급 세단

차명 '스테이츠맨'은 '권위 있는 정치가'를 뜻하는 단어로 경쟁 모델인 쌍용 '체어맨' 못지않은 차급에 걸맞은 묵직한 이름이었습니다. 외관은 날렵한 눈매의 프로젝션 헤드램프와 세로형 그릴, 대우 로고를 다듬은 오너먼트 엠블럼으로 '매그너스' 못지않게 날카로운 인상이었고, 견고한 디자인의 멀티 스포크 휠, 후면부는 마치 에쿠스와 체어맨의 절충안 같은 생김새로 노출형 머플러 팁과 LED 테일램프로 깔끔하게 마무리해 세련미가 돋보였어요.

측면에서는 링컨 '타운카' 같은 전형적인 미국형 대형차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습니다. 낮게 가라앉은 긴 차체, 무려 5.2m에 달하는 전장은 리무진 모델을 빼면 동급에서 가장 긴 수치로, 덩치면에서도 경쟁차에 밀리지 않았죠.

단, 날카로운 앞모습, 뒷모습과 달리 부드러운 곡선이 가미되어 조화롭지 못한 느낌을 주는 것은 페이스리프트 이전 동글동글한 인상이었던 전기형의 흔적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샤프한 디자인과 가늘고 늘씬하게 뻗은 차체로 동급에서 가장 젊고 도시적인 분위기를 뽐냈지만 대형차, 플래그십 세단의 포스는 다소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애초에 주 타겟인 중장년층을 노려 한껏 몸을 부풀리거나 곳곳에 각을 세워 권위적인 느낌을 강조했던 에쿠스, 체어맨 같은 경쟁 차들과 달리 이쪽은 보다 젊은 소비자층, 기사를 두지 않고 직접 운전하는 하이오너들을 공략해 무게감을 덜어냈고, 오히려 이도저도 아닌 느낌이라며 외면받았어요.

큰 차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얼굴, 라디오를 켜면 프런트 펜더 한 귓대에 눈치 없게 솟아오르는 안테나는 그나마 있던 호감도 떨어지게 만들었죠.

실내 역시 보수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안정적인 좌우대칭형 레이아웃에 투박한 스티어링 휠과 간결한 디자인의 계기판, 적재적소에 쓰인 우드그레인으로 대형차다운 중후함을 더했죠. 여기에 트립 컴퓨터, 오디오 및 공조장치 작동 여부를 알 수 있는 멀티 디스플레이, 최대 3개의 포지션을 지원하는 메모리 시트와 10개 스피커의 '블라우풍트'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 등 차급에 어울리는 고급 장비도 갖췄습니다.

흔한 스티어링 칼럼에 붙은 레버식이 아닌 로터리식 라이트 조작 스위치도 남다른 느낌이 나서 좋았고 키를 잡고 있지 않아도 시동 위치에 놓기만 하면 알아서 시동이 걸리는데, 별 게 아닌데도 참 독특했던 기억이 나네요.

특히 이 차의 진가는 뒷좌석에서 드러나죠. 실내 공간 확보에 불리한 후륜구동계를 사용했음에도 거주성만큼은 독보적이었습니다. 높게 솟은 센터 터널은 어쩔 수 없었지만, 경쟁차 중에 리무진 모델 부럽지 않은 레그룸과 헤드룸, 마치 거실 한쪽에 놓여있는 가죽 소파를 그대로 우겨놓은 것 같은 뒷좌석 시트는 그 생김새만큼이나 남다른 푹신함으로 착좌감은 이후 출시된 후속 차량들보다 낫다고 평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여기에 폭신한 수제작 카매트를 기본 옵션으로 제공해 고급감을 더했고, 조명을 내장한 화장거울, DVD 모니터를 각각 2개씩 배치해 뒷좌석 승객에게 대접받는 느낌을 줄 수 있었습니다. 주변 소음에 방해받지 않고 영화나 음악 등을 감상할 수 있도록 유선 헤드셋 한 쌍도 기본으로 제공했어요.

다만 '홀덴'의 사양을 그대로 들여오면서 여타 국산차의 AV 시스템처럼 아날로그 TV나 DMB 등은 볼 수 없었고 오로지 DVD나 VCD를 감상하는데 써야 했습니다. 그나마 3색 RCA 단자를 마련해 DMB 수신기 같은 외부 기기를 연결할 수 있었다는 건 다행이었지만요.

또 헤드레스트에 모니터 넣는 차들이 몇몇 있었는데, 마치 전자파가 머리로 그대로 전달될 것 같다며 불안해하는 소비자들이 은근히 많았어요.

다만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 국내 소비자를 배려하지 못한 몇몇 디테일들이 앞서 언급한 장점들을 갉아먹었습니다. 먼저 뒷좌석에는 양쪽 헤드레스트에 모니터를 두 개나 설치했으면서 정작 앞좌석에는 내비게이션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TV나 DVD는 고사하고 후방 카메라도 이용할 수 없었죠.

또 센터패시아를 최대한 간결하게 만드는 지금의 시선으로는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버튼 구성, 크기도 비슷한 것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데다 설명도 영어로 쓰여있어 매번 기능을 확인하며 눌러야 했기 때문에 당시에도 조작 편의성 면에서 안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연하게도 상단의 거대한 LCD 정보 창과 계기판의 트립 컴퓨터 역시 한글화가 되어있지 않았죠. 가뜩이나 전자식, 풋 파킹도 아닌 핸드 브레이크인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한술 더 떠서 레버가 운전석이 아닌 조수석 쪽에 가깝게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단순하게도 '우 핸들 설계'의 흔적을 고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게 킹 받는 지점이었어요.

창문 스위치도 흔히 배치되는 도어 트림이 아닌 센터 콘솔 부근에 위치해서 얼마간 적응이 필요했습니다. 오래전 대우 프린스나 르망을 타시던 분들이라면 이 위치가 더 익숙하실 수도 있겠지만요.

이밖에 비상시에 찾다가 더 크게 사고 날 것 같은 비상등 스위치, 왠지 암레스트에 있어야 할 것 같은 공주장치 및 엔터테인먼트 컨트롤러와 왠지 맞은편에 있어야 할 것 같은 DVD 체인저, 왠지 소모품이 아닐까 의심되는 팝업식 컵홀더나 뒷좌석 승객을 위한 커튼이 없는 것, 전동 접이식 사이드미러가 빠지는 등 대륙의 투박함이 묻어나는 구성으로 이 차급의 고급 세단에 기대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 실망하는 소비자들이 많았습니다.

한편 내비게이션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대우에서는 궁여지책으로 액세서리 내비게이션을 제공했는데 하필이면 센터패시아 최하단, 재떨이를 드러내고 여기에 모니터를 설치하는 지금 봐도 황당한 결정을 내립니다. 차주를 해치려는 속셈이냐며 '사고 유발 내비게이션'이라는 조롱 섞인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다행히 주행 성능 부분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파워트레인은 V6의 다양한 차종이 공용하는 V6 2.8L, 3.6L 알로이텍 가솔린 엔진 두 가지를 제공, 모두 5단 자동 변속기를 매칭했습니다. 호주 사양인 8기통 5.7L 엔진이 옵션으로 제공됐다면 상징성 하나만큼은 최고였을 텐데 조금 아쉽네요. 두 모델 다 거대한 차체를 이끌기에 부족함 없는 동력 성능을 선사했고 후륜구동 특유의 안정감, 동급에서 가장 거대한 전장을 가진 것이 무색하게 약 200kg 정도 가벼운 몸무게로 동급 대비 몸놀림이 가뿐하다며 호평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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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RPM을 좀 더 풍부하게 쓸 수 있는 파워 모드, 특히 건너편에 자리한 액티브 셀렉트를 활성화시키면 놀랍게도 패들시프트를 사용할 수 있었어요. 차량의 성격과 시기를 생각하면 정말 의외인 구성이죠. 당대 고급차의 덕목처럼 여겨졌던 일명 '물침대 승차감'의 경쟁차들과 달리 서스펜션은 비교적 탄탄한 세팅으로 주행 안정성에 좀 더 집중한 모양새였는데 핸들링이 예리하진 않았음에도 덕분에 전장을 의식하지 않을 만큼의 편안한 코너링이 가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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