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1층에 돌연 ‘가림막’ 설치…출근길 문답 바뀌나
대통령실 “경호·보안 이유” 설치
MBC와 설전 관련 “심각하게 봐”
야당 “윤, 선택적 언론관 비판”
여당 일부 “대통령이 논란 키워”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들과 약식회견(도어스테핑)을 하는 용산 대통령실 1층 공간에 대통령실이 20일 돌연 벽을 세우는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가 완료되면 기자들에게 개방돼 있던 용산 대통령실 주출입구 시야는 모두 막힌다. 대통령실은 “경호·보안의 이유”라고 설명했지만 <문화방송>(MBC) 기자 전용기 탑승 배제와 전용기내 특정 기자 간담으로 불거진 윤 대통령의 언론관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야당은 “윤 대통령 ‘선택적 언론관’의 상징”이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1층 주출입구로 출근해 현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약식회견을 했다. 1층 기자실에 있던 기자들은 허리높이의 유리벽을 지나 윤 대통령이 있는 현관에서 취재를 준비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이날 오후부터 유리벽 앞 약 2m 지점에 벽을 세우는 공사에 착수했다. 목재로 틀을 잡은 모양새를 보면, 가로 6m, 세로 4m 크기의 벽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들어서며 중간에 직사각형 모양의 출입문 하나만 설치된다. 주출입구에서 들고 나는 상황을 기자들이 전혀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평소 기자단은 주출입구를 통해 윤 대통령이나 대통령실 참모들의 출입을 파악할 수 있었고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참모들과 일상적인 대화도 가능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지금 1층 공간이 기자들에게 완전히 오픈돼 있고 외교적으로 대통령 비공개 일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며 “모든 상황이 노출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어서 가벽을 설치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금요일 설전과 관계있는 공사 아닌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면서도 “금요일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고 대통령실은 이 사안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답했다. 벽을 세우는 공사가 ‘약식회견 설전’과 연관성이 있음을 내비친 설명이다. 또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나무는 유리벽을 설치하는데 무너질까봐 임시로 대어둔 걸로 안다”며 “(투명 유리인지) 불투명 간유리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8일 약식회견 말미에 문화방송 기자는 “(한-미) 동맹 관계를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는 악의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임의 일환”으로 전용기 탑승을 배제했다고 한 윤 대통령의 말에 “무엇이 악의적이었느냐”고 따져 물었다. 윤 대통령이 답 없이 떠난 뒤 이기정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이 문화방송 기자에게 “예의가 아니다”라고 비판하자 두 사람 사이에 고성이 오간 설전이 벌어졌다.
이 일을 계기로 약식회견까지 통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실은 “11월2일 비공개로 진행된 윤석열 대통령의 외국 대표단 접견 시 일부 출입기자들이 대통령실과의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대표단을 촬영한 일이 있었다”며 “외빈과의 사전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데 대한 외교가의 문제 제기도 있었다. 1층 구조물 설치는 이 일을 계기로 논의된 것으로 도어스테핑과는 무관하다”고 공지했다. 지난 2일 대통령실을 방문한 ‘외국 대표단’은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 일행이다. 기자단의 시야를 차단하는 공사를 휴일에 갑자기 시작하면서 18일 전 사건을 명분으로 들고 있는 것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동남아 순방을 앞두고 문화방송 기자의 전용기 탑승을 배제하고, 기내에서는 특정 언론사 기자 두명을 전용 공간으로 불러 한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눠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실의 기자단 시야 차단 공사가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과 언론관을 반영한 결과물이라고 비판했다. 고민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외신조차 윤석열 정부의 언론 탄압을 우려하고 있다”며 “대통령실이 특정 언론의 보도에 불만을 가질 순 있으나 그렇다고 ‘전용기에 타지 말라’고 하거나, 언론과의 언쟁이 보도됐다고 해서 도어스테핑 공간에 가벽을 설치하는 걸 보면 국정운영이 얼마나 즉자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수진 원내대변인도 “그간 도어스테핑을 이어오며 윤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하거나 선택적으로 질문을 받는다는 비판이 나왔는데, ‘가벽’이 그런 선택적 언론관을 상징하는 게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적대적 언론관에 대해선 여당 안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국익을 위해 순방을 나간다면서 엠비시를 탑승 배제한 일이 해외 언론에 어떻게 보도가 됐나. 그게 대한민국 국익과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됐나”라며 “계속 확대 재생산해서 논란을 이어갈 일인지 대통령부터 차분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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