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 대출비리]② "수뇌부 몰랐나"…사외이사, 조병규, 그리고 임종룡 '책임론'

서울 중구 우리금융그룹 본사 전경 / 사진 제공=우리금융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 친인척 관련 사업자 부정대출 사건의 여파가 커지면서 현직 경영진의 책임론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부정대출이 자행됐던 시기가 현 우리금융 수뇌부의 재임기간과 맞아 떨어지면서다. 특히 이번 비위가 길게는 7년 전부터 발생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금융 내부에서 일찍부터 공공연한 비밀로, 대다수 임원은 알았지만 쉬쉬해왔다는 내부고발이 잇따라 충격을 더한다.

14일 <블로터> 취재 결과 우리금융 내부사정에 밝은 복수의 핵심 관계자들은 손 전 회장이 취임한 지난 2017년 말부터 그의 처남 등 친인척 관련 부정대출이 실행됐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번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 2020년부터 올해 1월까지 대출이 집중됐다고 알려졌으나, 손 전 회장이 '절대권력'을 휘두른 취임 직후에 사건이 시작됐다는 전언이다.

우선 금감원 조사에서 드러난 부정대출 취급 시기부터 조명한다면, 2020년 손 전 회장 재임 시절 우리은행장은 권광석 전 행장이었다. 권 전 행장은 대출의 부당함을 인지해 손 전 회장에게 수차례 보고했지만 묵살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소식통은 "권 전 행장이 손 전 회장에게 (친인척) 대출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진언했지만, 톱 최고경영자(CEO)는 오히려 '소탐대실하지 말라'고 경고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말했다. 소탐대실은 권 전 행장의 연임 여부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추정되며, 실제로 권 전 행장의 임기는 은행권 관례상 '2년+1년'이 아니라 1년 단임에 추가 1년 등 총 2년에 불과했다. 소식통의 증언으로 미뤄볼 때 손 전 회장은 재임 기간 중에도 친인척에 대한 대출이 시행되고 있음을 인지했다고 볼 수 있다.

손 전 회장은 이에 대해 <블로터>와의 통화에서 "친인척이 우리은행 영업점에서 돈을 빌린 것은 사실이나, 대부분 담보대출이기 때문에 손해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대출 사실을 인지했음을 시사했다. 다만 해당 대출이 정상적인 심사와 과정을 거쳤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손 전 회장의 처남 김 모 씨는 서울 강남지역 등에서 어려움에 처한 중소형 병원을 사들여 구조조정한 뒤 영업을 정상화하는 비즈니스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위 '사무장병원'과 비슷한 사업모델이다. 건물과 병원이 있어 다른 대출보다 담보와 수익을 입증하기 쉬웠고, 이 과정에서 사문서 위조 등 부정대출이 손쉽게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

고위경영진 중 이 사실을 알았던 인물로는 조병규 현 우리은행장이 꼽힌다. 조 행장은 4년 전 우리은행 기업그룹 집행부행장과 우리은행 경영기획그룹 집행부행장을 지내며 권 전 행장과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관계자들은 "권 전 행장이 톱CEO에게 (친인척 대출과 관련해) 거절당하는 것을 당시 조 부행장이 여러 번 목도해 권 전 행장과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손 전 회장 처남에 대한 소문이 당시 우리은행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조 행장은 관련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 행장은 지난해 7월 은행장에 부임했다. 이에 앞서 3월에는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올랐다. 손 전 회장의 처남 관련 사업자 대출은 올해 1월까지 일선은행 창구에서 잔액이 집행됐다. 따라서 새로운 최고경영진(임 회장과 조 행장)이 들어선 후에도 부정대출이 시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임 회장 역시 관련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손 전 회장 처남 사건을 사전에 인지했던 조 행장이 은행장으로 부임했다는 점에서, 조 행장이 신임 회장에게 관련 보고를 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금융 측은 임 회장 등 현 수뇌부가 이번 대출비리건을 보고받고 인지한 시기가 올해 3월이라는 공식 입장을 냈다.

핵심 관계자들은 임 회장과 조 행장이 손 전 회장 친인척의 비위 사실을 모를 리 없다고 입을 모은다. 또 다른 소식통은 "손 회장 시절 사업하는 처남에게 특혜성 여신이 나간 것을 우리금융 사람이면 모르지 않는다"며 "임 회장과 조 행장이 알지 못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손 전 회장 처남이 우리금융 인사를 다 한다는 (비선실세) 소문이 파다했고, 결국 그 처남을 찾아간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라고 귀띔했다.

특히 임 회장이 취임 직후 이른바 '손태승 지우기'에 공을 들였다는 것은 우리금융 안팎의 지배적 시각이다. 전임자의 색깔을 없애는 가장 전형적인 방법은 전임자의 비위사실을 찾아내는 것이다. 조 행장은 임 회장이 낙점해 은행장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어, 금융그룹 내 역학관계를 모를리 없는 그가 손 전 회장 친인척 비리대출 사실을 임 회장에게 사전 보고하지 않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새로운 경영진이 우리금융그룹의 새판을 짜던 이 시기에도 손 전 회장의 처남 관련 사업자에 대한 부정대출 잔액이 집행되고 있었다. 이는 법적 책임이 없더라도 도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시사한다. 만일 알고도 묵인했다면 도의적 책임보다 더 큰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 은행권의 시각이다.

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 소속 사외이사들에게도 손 전 회장의 친인척 관련 전횡이 보고됐다고 전해진다. 우리금융 이사회는 △2020년 총 9명(노성태·박상용·정찬형·첨문악·전지평·장동우·김홍태·이원덕·손태승) △2021년 총 7명(노성태·박상용·정찬형·장동우·김홍태·이원덕·손태승) △2022년 총 9명(노성태·박상용·윤인섭·정찬형·신요환·장동우·송수영·이원덕·손태승) △2023년~ 총 7명(윤인섭·정찬형·윤수영·신요환·지성배·송수영·임종룡) 등으로 구성됐다. 공식적 고발이었는지, 첩보 차원의 비공식 보고였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금융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손 전 회장 처남 사건과 관련된 문제는 사외이사들이 단 한 차례도 제기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손 전 회장에게 책임을 묻거나 내부조사를 지시하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금융 지배구조와 내부통제의 부실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우리금융 특유의 '불통' 문화가 이번 대출비리 사건의 배경이라고 지적한다. 그룹 서열 1, 2위인 회장과 은행장 간에 긴밀한 소통이 이뤄져야 하지만, 이 부분에서 우리금융은 미흡하다는 비판이다. 임원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는 '제왕적 회장' 문화가 문제의 본질이라는 지적이다. 조 행장 역시 관련 사건을 알고도 이런 문화 때문에 새로 취임한 임 회장에게 보고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또 다른 소식통은 "조 행장은 워낙 조용한 스타일이라 임 회장의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서열이) 확실하다"며 "조 행장이 손 전 회장건을 몰랐을 리는 없겠지만, 임 회장에게 보고했는지 여부는 미지수"라고 전했다.

임 회장은 이번 사건이 불거진 이달 11일 직후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해 공식 사과하며 머리를 숙였다. 우리금융 측은 "금감원에서 본건을 수사기관에 의뢰했으니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며 "추후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결과에 따른 내부 후속조치 마련에도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신병근·이수민·최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