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 아이오닉 9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제공 중인 전기차·배터리 세액공제를 조기 종료하는 법안을 발의하면서, 한국 완성차 및 배터리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 정부의 세제 혜택이 사라질 경우, 천문학적 액수를 투자한 국내 기업들의 수익성과 전략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15일 미국 하원 세입위원회 소속 제이슨 스미스 공화당 의원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전기차 세액공제를 당초 종료 시점인 2032년 말보다 6년 앞당긴 2026년 말로 조정하는 내용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발의했다. 전기차는 물론 배터리 생산을 대상으로 한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의 종료 시점도 1년 앞당기는 조항이 포함됐다.
지금까지 미국 정부는 북미 최종 조립, 배터리 원재료의 우방국 조달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한 전기차를 구매한 소비자에게 최대 7500달러(약 1050만원)의 세액공제를 제공해왔다. 렌트·리스 차량에 대해서는 원산지 요건을 면제해 사실상 대부분의 수입차가 보조금 대상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법안이 통과되면 2026년부터는 구매자·리스사 모두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로 인해 미국에서 일정 수준 이상 전기차를 판매한 업체(현대차·기아 포함)는 연내 보조금 제외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IRA 발효 이후 조지아주 엘라벨에 HMGMA공장을 신설하고, 올해부터 아이오닉 5, EV6, EV9 등의 현지 생산을 시작했다. 제네시스 GV70과 아이오닉 9 등도 현지 생산을 앞두고 있으며, 이들 모델은 세액공제 대상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될 경우, 보조금 효과는 길어야 연말까지로 끝나게 된다.

기아 EV3배터리 업계의 충격은 더 직접적이다. 국내 3대 배터리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은 모두 미국 현지 공장을 운영 중이며, 그동안 AMPC를 통해 생산분에 대한 보조금을 지원받아왔다. 특히 AMPC는 단순 지원금이 아닌 세액공제 형태여서, 각사 분기 실적에 실질적인 수익으로 반영돼왔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3747억원이었지만, AMPC 혜택 4577억원을 제외하면 실제로는 830억원의 적자를 낸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SDI와 SK온은 AMPC 포함 기준으로도 적자를 기록했다. 세액공제 종료 시점이 앞당겨질 경우, 이들 기업의 수익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예측 불가능한 정책 환경이다. IRA 시행 이후 미국 정부는 일관된 인센티브 제공을 전제로 전기차 및 배터리 기업의 대규모 현지 투자를 유도해 왔다. 그러나 행정부가 바뀌고 정권 성향에 따라 법안 방향이 급변하면서, 미국 내 투자를 결정한 국내 기업들의 불확실성 리스크는 날로 커지고 있다.
특히 공화당은 환경규제와 재정 지출 확대에 부정적인 기조를 유지해왔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IRA의 전면 재검토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이번 법안 발의도 그런 흐름 속에서 등장했다. 한 국내 부품업체 관계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보조금 정책이 바뀌다 보니 원가 계산이나 원재료 수급 계획조차 어렵다"고 토로했다.
다만 법안이 실제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IRA의 수혜 지역으로 분류되는 조지아·테네시·미시간 등은 공화당 우세 지역으로, 보조금 축소가 오히려 지역 내 일자리와 정치적 지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은 이들 지역에 생산 거점을 확보하고 있다.
전기차 산업 전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IRA 세액공제가 단기 수요 진작 효과를 제공하면서도,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을 일정 수준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만약 조기 폐지가 현실화되면, 아직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한 전기차 시장이 다시 침체기에 접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도 미국 전기차 시장은 캐즘(기술 수용 초기의 정체기) 구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이제 보조금에 의존하지 않는 '포스트 IRA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조금 유무와 관계없이 생산 효율성과 공급망 경쟁력을 강화하고, 완성차-배터리 간의 동맹 구조를 보다 공고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미국 외 시장, 특히 유럽과 동남아·중동 등 제3지역에서의 신규 수요 창출도 병행되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보조금이 줄어드는 건 맞지만, 시장 전체 흐름이 전기차로 향하는 것은 되돌릴 수 없다"며 "AMPC 의존도를 줄이고 생산성과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게 장기적 해법"이라고 말했다.
/지피코리아 김기홍 기자 gpkorea@gpkorea.com, 사진=현대차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