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해소에 적절한 세금은?[김유찬의 실용재정](16)
2022. 11. 30. 07:27
사회가 불평등해지면 계층 간 갈등과 충돌이 증가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경제발전 속도도 늦어진다.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는 명분은 충분하지만, 조세제도에 이러한 기능을 정착시키기 위한 정치적 실현과정은 만만치 않다. 불평등을 줄이려는 목적의 과세에서 상속세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상속세는 다른 경제주체에 재산을 이전하는 과정에 과세포착점이 존재한다. 한 사람이 창출한 소득을 소득세 과세 이후 보유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이전시켜주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가도 공동체의 몫으로 일정 부분을 요구한다. 가족 내에서 이뤄지는 상속에서 국가가 상속세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특별히 예민하게 느끼는 경향이 한국사회에 존재하지만, 개인의 자산이 온전하게 자신의 힘으로만 이룬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사회가 일정한 몫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국가가 이를 더 많이 요구하면 결과적으로 사회적 격차는 줄어들게 된다.
공정한 세금 부과를 위한 과제들
상속세는 특히 우리 사회 최상위계층에 대한 과세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경제적 특권계층인 기업 오너들은 가업상속공제의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이 제도는 기업의 고유한 생산적 경제활동에 필수적인 자산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공제를 허용한다. 상속인이 다른 금융이나 부동산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상속세를 납부할 능력이 있는지 확인하고 다른 자산이 없는 경우에만 예외를 둬야 한다. 제도에 이러한 조건이나 심사 규정이 없으니 현재의 우리나라 제도는 위헌적이다.
상속세는 불평등 해소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두가지 한계를 가진다. 우선 상속세의 과세규모가 미약하다. 증여에 대한 과세를 포함해 상속증여세는 2021년 전체 국세수입의 4.4%를 차지했다. 이는 예외적인 경우다. 2019년까지는 전체 국세수입의 3%에 미치지 못했다. 또 상속과세는 피상속인의 사망 이후에나 이뤄진다. 개인 간에 소득과 자산의 격차를 만드는, 불평등의 싹은 큰 부분이 가정과 부모에 기인한다. 상속세의 과세시점은 이미 개별 가계에서 환경의 불평등이 그 역할을 수행한 이후다.
결국 과세를 통한 불평등 해소는 상속세뿐만 아니라 소득과 소비 그리고 저축 및 자산의 형성이 이뤄지는 개인들의 경제활동 전 과정에서 조세제도의 전반적인 구조를 통해 균형 있게 추구될 수밖에 없다. 응능원칙(납세자의 지불 능력에 따라 과세해야 한다는 과세 원칙)에 충실한, 소득세와 법인세를 주축으로 적절한 수준의 세 부담을 정착시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적절한 수준의 재정지출을 할 수 있도록 조세제도의 재정조달 기능을 확보해야 한다.
세법 원칙의 으뜸은 바로 국가가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세금의 부담이 구성원들에게 공정하게 배분돼야 한다는 점이다. 세금 부담을 구성원들에게 골고루 나눠야 하므로 조세제도의 중심에는 자연스럽게 소득세가 위치한다. 세금 부담 배분은 고통의 분담이다. 가족이나 회사가 아니라, 고통을 실체적으로 느끼는 주체인 개인을 전제로 해야 공정한 분담이 가능하다. 이상적인 소득세는 개인들의 소득을 누락시키지 않고 종류별로 모두 파악해 합산한 다음 이를 과세한다. 합산된 개인들의 소득에 적용되는 세율은 대다수 국가에서 누진세율을 적용한다. 세금 배분의 관건은 고통의 균등한 분담에 있다. 소득의 한계효용이 체감하므로 소득이 높은 이들의 추가적인 소득에 대해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고통의 균등한 분담에 해당한다. 동등희생설의 내용이다. 소득세는 전체 국세수입의 3분의 1을 점유하는 세목이다. 누진세율 구조를 강화하면 불평등 해소 측면에서 소득세가 가장 유효한 조세가 된다. 소득세는 소득이 발생하는 시점에 과세한다는 점에서 개별 가정에서의 불평등한 환경을 교정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시기적으로도 유효하다.
법인세, 부가가치세, 상속세 등의 세목도 공정과세와 불평등 해소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기능을 가진다. 소득세와의 연관성을 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소득보다 소비를 중심으로 경제적 능력을 파악한다면 과세당국은 상대적으로 비용을 적게 들이며 과세할 수 있다. 세금 전체에서 소비세의 비중이 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소비세는 누진율을 적용하기에 부적절하다. 고통의 균등한 분담 차원에서 열등하다. 소득세와 소비세를 병행 과세함으로써 징수비용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국제적으로 비교해보면 미국 등 주요국에 비해 우리의 소득세 비중이 현저하게 낮아 공정한 과세가 어려운 세입구조다. 향후 세제개혁의 소비세 분야에서 누진율 적용이 어려운 점을 보완하는 제도적 개선방안이 필요하다.
불공정 과세 부추기는 법인 감세
법인(주식회사/유한회사)은 자본의 유한책임화를 통해 위험한 투자를 가능케 하는 유용한 사회적 도구다. 개인의 세 부담을 회피 혹은 유예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기업활동의 국제화를 통한 조세 부담의 회피는 개별국가가 따라갈 수 없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법인에 대한 과세가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어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 악화되고 있다. 법인의 소득은 주주들에게 경제적으로 귀속된다. 법인에 대한 세금감면은 다른 시민들에 비해 기업의 대주주들을 가볍게 과세하자는 얘기다.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어떤 사람들인가.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우리나라에서 지급되는 배당소득의 69.3%가 상위 1%의 계층에 귀속된다. 대부분의 배당소득이 소수 특권층의 것이다. 법인에 대한 감세는 불공정한 과세를 더 불공정하게 만든다.
경제적 능력의 파악 기준으로, 재산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다. 소득집중도보다 자산의 집중도가 더 강화되는 것이 최근의 추세다. 특히 부동산 보유에 대한 과세는 주거와 부동산시장 안정의 관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동시에 불평등 해소의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부동산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도 마찬가지다. 부동산을 통한 자산형성은 한국사회에서 주된 자산축적의 경로로 작동한다. 부동산자산의 보유구조는 매우 불평등하다. 이를 통한 자산형성의 기회가 불평등할 뿐 아니라 개인의 노력과 창의성보다 상속 등을 통한 초기 부동산취득자금의 존재 여부에 상당 부분 좌우되기 때문이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포용재정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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