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CFO] 전자 CFO는 곧 계열사 CEO 레드카펫 I 삼성전자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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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곧 최고경영자(CEO)가 되는 레드카펫이었다. 과거 삼성전자에서 경영지원실장을 지낸 인물들은 대부분 그룹 계열사의 CEO 자리에 올랐다.

삼성전자의 경영지원실장(CFO)은 삼성그룹 중 가장 덩치가 크고 산업계 전체에서도 대표 기업으로 꼽히는 삼성전자의 살림을 맡으며 재무 전문성을 더 키울 수 있다. 또 연결기준 연간 매출 300조원(2022년 기준) 규모의 삼성전자와 자회사들을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자금의 흐름을 관리한 경험은 중요한 사업적 결정을 내리는데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이에 그룹의 수뇌부는 삼성전자의 경영지원실장이 계열사 CEO로서 회사를 잘 이끌 것이란 판단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물산 대표로 간 윤주화…경영 멘토 역할도

지난 2010년부터 2023년 2분기까지 10년 이상 기간동안 삼성전자의 경영지원실장을 지낸 인물은 △윤주화 △이상훈 △노희찬 △최윤호 △박학규 등 5명이다. 현재 경영지원실장인 박학규 사장을 제외한 4명은 주요 계열사의 CEO나 이사회 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윤주화 사장은 성균관대학교에서 통계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 감사팀과 경영지원실에서 근무한 '재무통'이다. IMF 외환위기 시절 삼성전자의 구조조정과 재무구조 개선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회사가 경영위기를 극복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2010년 경영지원실장에 올라 2012년까지 약 3년간 회사의 살림살이, 그리고 재무전략 수립을 총괄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생활가전 사업에서는 'LCD TV', 통신 사업에서는 스마트폰 '갤럭시 S', 반도체 사업에서는 'D램(40나노 이하 공정)과 낸드플래시(30나노 공정)' 등의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으로 거듭났다. 이 기간동안 회사의 실적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연결기준 매출은 2010년 154조6000억원에서 2012년 201조1000억원으로 30%, 영업이익은 17조3000억원에서 29조원으로 68%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윤 사장은 글로벌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회사에 도입해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기여했다. 그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에는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삼성전자의 성장 가도를 이끌었던 윤 사장은 약 3년간의 경영지원실장 임기를 마치고 2012년말 삼성그룹 계열사인 제일모직의 패션부문장 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재계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윤 사장을 제일모직 및 제일기획에 있던 이서현 부사장의 '경영 멘토'로 배치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회장의 둘째 딸인 이 부사장은 2002년 제일모직 입사 이후 패션 관련 업무를 줄곧 담당하며 부사장까지 올랐다. 하지만 다른 최고경영자(CEO)들에 비해 경영에 대한 경험은 부족했다. 이에 삼성전자에서 경영지원실장을 역임하며 대규모의 조직을 관리하고 글로벌 경영 시스템을 경험한 윤 사장을 제일모직 패션부문 대표이사에 앉혀 이 부사장이 그로부터 경영 수업을 받도록 했다는 해석이다.

윤 사장은 제일모직에서 에버랜드(에버랜드가 2013년 12월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문을 인수)에 이어 삼성물산(에버랜드가 제일모직으로 사명을 변경한 후 2015년 9월 삼성물산과 합병) 대표이사까지 맡으며 약 4년간 패션부문 대표를 맡았다. 이 기간동안 윤 사장과 함께 패션부문 사업을 이끈 이 부사장은 2015년 12월 그룹 인사에서 삼성물산 패션부문장 사장에 오르며 경영 홀로서기에 나섰다. 윤 사장은 삼성사회공헌위원회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사회 이끈 이상훈

윤 사장에 이어 경영지원실장을 맡았던 이상훈 사장은 삼성전자에서 전략기획실과 사업지원팀장, 미래전략실 전략1팀장 등을 지냈다. 2012년말부터 2017년말까지 약 5년간 경영지원실장을 맡으며 회사의 살림살이를 책임졌다. 이 기간은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이 최지성 부회장의 뒤를 이어 회사의 대표이사에 올라 윤부근 부회장(TV·가전)·신종균 부회장(모바일)과 함께 삼성전자를 본격적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킨 시기다.

이 사장은 2018년에는 권 회장의 뒤를 이어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당시 삼성전자의 일반 등기이사가 이사회 의장에 오른 것은 처음이었다. 그가 삼성전자 경영지원 실장에서 이사회 의장으로 직행한 것은 당시 이재용 부회장과의 인연, 그리고 이사회의 권한을 강화하고자 하는 이 부회장의 의지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 사장은 이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혔던 인물이다. 이 사장이 삼성전자 미국법인 경영지원팀장으로 근무할 당시 하버드대학교에서 유학 중이던 이 부회장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두 사람의 인연은 길게 이어졌다. 이 사장은 이 부회장이 상무로 근무하던 시절부터 가까이서 그를 보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장의 능력과 성품을 높게 산 이 부회장은 2017년 3월 미래전략실을 해체한 후 2018년 3월 이 사장을 이사회 의장에 앉혔다. 당시는 이건희 회장이 병석에 있었던 시기로 이 부회장이 사실상 그룹의 오너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부회장은 미래전략실을 해체하며 이사회의 권한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했다. 미래전략실이 없어지면서 이사회를 실질적인 의사결정기구로 삼겠다는 의지였다. 이 사장이 이사회 의장으로 직행하게 된 배경이다.

이 사장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약 2년간 이사회를 이끌며 이사회 중심의 경영체제를 안착시키고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에스원·삼성SDI 대표로 활약한 노희찬·최윤호

이상훈 사장에 이어 삼성전자의 경영지원실장을 맡은 노희찬 사장은 앞서 경영지원실 지원팀 부사장과 삼성디스플레이의 경영지원실장 부사장을 지냈다. 그는 2017년말부터 2020년초까지 약 2년간 경영지원실장으로 삼성전자의 재무를 총괄한 후 2020년 1월 에스원의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에스원은 일본 보안기업 세콤이 최대주주이며 삼성SDI가 2대주주로 있다. 노 사장은 에스원에서 근무하며 대외 고객을 확보하는데 힘을 쏟았다. 중국과 베트남 등에 진출한 삼성그룹의 계열사들과 협업해 현지 보안 시장을 공략했다.

노 사장의 후임으로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을 이끈 최윤호 사장은 앞서 구주총괄 경영지원팀장과 미래전략실 전략1팀 상무, 무선사업부 지원팀장 등을 맡았다. 당시 전무였던 그가 무선사업부 지원팀장을 맡고 있던 2017년 3월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미래전략실이 해체됐다. 그룹 전체가 혼란스러웠던 시절, 그는 무선사업부 지원팀을 지키다가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사실상 미래전략실의 역할을 했던 삼성전자 사업지원 T/F에서 부사장을 맡아 그룹을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는 삼성그룹의 2022년 정기임원 인사를 통해 삼성SDI 대표로 자리를 옮겼으며 2023년 현재까지 대표를 맡고 있다. 삼성SDI는 삼성전자에서 글로벌 사업을 경험하고 회사의 재무도 책임진 그가 회사의 글로벌 사업을 확대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이상훈·노희찬·최윤호 사장은 삼성전자가 지난 2017년 인수한 미국의 전장(자동차 전자 부품) 전문 기업 하만(Harman)의 인수 이후에 하만의 이사진에도 참여했다.

이상훈 사장은 하만 인수 직후 윤부근 부회장과 함께 하만의 이사를 맡았다. 그는 회사의 사업 및 재무 상황에 대해 파악하고 삼성전자와의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한 작업을 했다. 삼성전자는 이상훈 사장 이후에도 노희찬 사장과 최윤호 사장을 차례로 하만의 이사에 앉혔다. 새롭게 인수한 회사의 재무 상황을 빠르게 안정화시키고 삼성전자의 식구로 맞아들이기 위해서는 CFO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박학규의 넥스트 스텝은?

현재 삼성전자의 경영지원실장은 박학규 사장이다.

박 사장은 2022년 3월부터 경영지원실장을 맡고 있어 올해로 임기 2년째를 맞았다. 그는 경영지원실장을 지내고 삼성그룹 계열사 CEO로 이동한 앞선 경영지원실장들과 지금까지 유사한 경력을 보여주고 있다. 박 사장은 삼성 구조조정본부 재무팀과 전략기획실을 거쳐 미래전략실에서 경영지원팀장을 지냈다. 이후 삼성전자의 자회사이자 삼성그룹의 IT서비스 계열사인 삼성SDS에서 사업운영총괄을 맡았다.

이후 삼성전자로 돌아온 그는 DS(반도체·디스플레이) 부문과 DX(모바일과 가전 등 완제품)부문에서 각각 경영지원실장을 역임했다. 삼성전자와 미래전략실에서 근무한 이후 계열사로 이동하면, 그 이후에 다시 삼성전자로 돌아가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박 사장은 삼성SDS에서 사업운영총괄 경험을 쌓은 후 삼성전자로 다시 돌아가 DS 부문과 DX 부문의 경영지원실을 이끌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런 가운데 그가 경영지원실장 임기를 마치면 삼성전자에서 쌓은 재무 전문성과 조직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주요 계열사 CEO로 이동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최근 삼성전자의 실적이 과거에 비해 저조한 것은 경영지원실장으로서 CFO의 역할을 하고 있는 박 사장에게 부담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2년 하반기부터 전세계에 본격적으로 불어닥친 반도체 경기 불황을 비켜가지 못했다. 회사는 2022년 연결기준 매출 302조원, 영업이익 43조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8%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6% 감소했다. 회사 영업이익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DS부문의 부진이 뼈아팠다. 실적부진은 2023년 상반기까지 이어졌다. 회사의 2023년 연결기준 상반기 누적 매출은 약 124조원, 영업이익은 약 1조원으로 각각 전년 반기 대비 20%, 95%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하반기에는 고객사들이 보유한 메모리 반도체 재고가 줄어들며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아직은 수요 회복 속도가 더디다는 지적이 반도체 업계 곳곳에서 들리고 있어 반도체 경기 회복을 낙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프리미엄 스마트폰과 TV에 대한 수요도 감소해 삼성전자 DX부문의 MX(모바일) 사업부와 VD·가전 사업도 매출 감소를 피하지 못했다.

이에 반도체·스마트폰·TV를 앞세워 글로벌 IT(정보기술) 시장을 주도하던 삼성전자의 '글로벌 리더' 위상이 흔들린다는 위기론도 제기됐다. 과거에는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글로벌 IT 시장에서 경쟁자들을 따돌렸지만 글로벌 경기 둔화 앞에서는 결국 경쟁자들과 크게 다를바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글로벌 경기 둔화와 회사의 실적 부진은 삼성전자의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있는 박 사장에게 커다란 도전 과제로 꼽힌다. 삼성전자의 경영지원실장은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꼭 필요한 곳에 투자가 이뤄지도록 자금의 흐름을 관리하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삼성전자의 경영지원 관련 요직을 두루 거쳐 이재용 회장의 두터운 신뢰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사장은 이 회장이 2022년 화성과 천안 사업장 등을 둘러보며 현장경영을 펼칠때 이 회장을 곁에서 수행했다. 또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초기였던 2020년 5월 이 회장의 중국 시안공장 출장에도 동행하며 현장 경영에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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