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김지미, 네 번의 결혼보다 더 놀라운 인생 반전... 근황은?

‘동양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 불린 단 한 사람, 김지미. 18세에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한 그녀는 34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했고, 그 중 235편이 멜로드라마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멜로 여왕’이라는 수식어는 아깝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이 반세기 넘게 회자되는 이유는 단순히 연기의 경력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영화만을 위해 산 여자”, 그리고 “자신의 삶을 당당히 살아낸 여자”라는 독보적인 서사 덕분이죠.

김지미는 단 한 번도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았고, 평생 광고 출연을 고사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내 이름은 영화가 만들어 준 것, 함부로 팔 수 없다.” 당대 최고 출연료를 받으며 영화계를 이끌던 그녀는, 자신을 철저히 ‘영화의 얼굴’로 지켜냈습니다. 바야흐로 한국 영화의 중흥기였던 1960~70년대, 그녀는 일 년에 30편 이상 영화를 찍으며 영화계를 실질적으로 움직인 유일무이한 여배우였죠.

화려했던 스크린 뒤에는 누구보다 치열했던 삶이 있었습니다. 연상의 감독 홍성기와 결혼하며 첫 번째 삶의 전환점을 맞이했고, 그 뒤로 배우 최무룡, 가수 나훈아, 의사 이종구까지… 네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었습니다. 그때마다 세상은 그녀의 사생활에 열광했지만, 그녀는 흔들림 없이 말했습니다. “남자는 다 어린애예요. 여자들이 감싸줘야 사는 존재들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단 한 번도 자신을 희생하거나 꺾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대를 앞서간 여성으로, 때로는 연인보다도 더 강한 의지로 남자들을 도왔습니다. 최무룡이 감독으로 데뷔할 수 있었던 것도, 영화 15편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사실 그녀의 헌신 덕분이었죠.

그녀의 연기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깊어졌습니다. <잡초>, <토지>, <길소뜸> 같은 영화에서 보여준 깊은 내면 연기는 단순한 미모의 여배우라는 편견을 깨고 ‘진짜 배우 김지미’를 증명했습니다. 나훈아와의 동거 시절엔 영화계를 떠나 음식점을 운영하며 여느 여성처럼 평범한 일상을 택했지만, 다시 돌아와선 <티켓> 같은 사회 고발극으로 충격적인 변신을 보여주기도 했죠. 심지어 삭발까지 감행하며 여성영화제작자로서도 길을 개척했습니다.

지금 그녀는 미국 LA에서 손주들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말합니다. “배우에게 은퇴는 없어요. 언제든 좋은 작품이 나오면 돌아갈 준비는 돼 있어요.” 끝까지 꼿꼿하게, 여전히 48kg의 체중을 유지하며 살고 있는 김지미. 그런 그녀를 보며 우리는 한 사람의 삶이 한 시대의 문화가 될 수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습니다.

화려했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던 삶, 사랑했지만 종속되지 않았던 여배우. 김지미는 오늘도 ‘살아 있는 전설’로 우리 곁에 머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