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 터지는 비눗방울처럼… 경쾌한 이별의 순간 [송지현의 자.독.추]

2025. 11. 14.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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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별의 순간을 이렇게 경쾌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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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소설집 '비눗방울 퐁'
편집자주
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 중 빛나는 하나를 골라내기란 어렵지요.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으로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송지현 작가가 청년들의 '자연스러운 독서 자세 추구'를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한국일보>를 통해 책을 추천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유리 작가의 첫 소설집 '브로콜리 펀치'를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소설이 좋기도 좋았지만, 뭐랄까, 그 모든 문장들이 놀라울 만큼 무해했기 때문이다. 이 험한 세상에…… 이래도 되나…… 작가님, 어디 가서 사기당하고 그러진 마세요……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몇 번이고 소설집을 다시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이유리의 무해함은 아무 일도 겪지 않은 사람의 순수한 무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모든 슬픔을 통과한 이가 세상과 화해하기 위해 택한 온도의 결과였다는 것을. 무해해 보이는 문장들은 사실 세상을 향한 다정함이었다. 상처받은 인물들을 다루면서도 결코 그들의 흉터를 과시하거나 불필요하게 사지로 내몰지 않는다. 이유리의 소설이 가진 윤리는 바로 그 점에 있다.

이번 소설집 '비눗방울 퐁'에서도 그 태도는 꾸준히 이어진다. '비눗방울 퐁' 속 대부분의 인물들은 이별을 겪었거나, 겪고 있다. 관계가 끝나고, 어떤 감정은 식고, 남겨진 사람은 자신을 추스른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비탄에 잠겨있기만 하지 않는다.

수록작인 '크로노스'에서 자매는 엄마의 기억과 조우하고, '그때는 그때 가서'에서는 애인과 헤어졌지만 배달 앱을 켜고 맛있는 것을 시켜 먹으며,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에서는 쓸모없는 것은 팔아버린다는 마음으로, '담금주의 맛'에서는 안 좋은 기억들은 모두 맛있는 술로 빚어지며, 표제작 '비눗방울 퐁'에서는 사라져버린 애인 때문에 우는 대신 찐 감자를 꾹꾹 씹어 삼킨다. '달리는 무릎'에서는 심지어 무릎에 살던 외계인과 이별하기도 하는데, 인사도 없이 떠나간 외계인을 원망하거나 그리워하는 대신 맥주를 생각하며 시원하게 달려나간다.

유일하게 이별과 거리가 멀어보이는 '퀸크랩'과 '보험과 야쿠르트'에서도 이별은 있다. 이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삶과 이별하는 중이다. 그들은 불안해하지만 결국 마지막엔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어린 시절에 들었던 돌림노래인 야쿠르트 송을 부르거나 죽어버린 킹크랩을 라면에 넣어 끓여 먹는다.

비눗방울 퐁·이유리 지음·민음사 발행·340쪽·1만5,000원

어떻게 이별의 순간을 이렇게 경쾌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그것은 이별의 순간이야말로 우리의 만남이 있었기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유리 작가는 이별의 순간을 눈부신 우리의 일상으로 끌어당긴다. 함께 먹었던 음식, 네 캔에 만 원하는 맥주, 조용한 아쿠아리움의 풍경, 바깥에서 어떤 고통과 수모를 겪든 서로가 있다면 견딜 수 있던 날들.

그날들을 생각하며 이별을 살아가는 이유리의 인물들은 결코 영웅적이지 않지만, 오히려 너무도 평범하고 사소하지만, 이유리 작가는 그 평범함 속에 살아남은 자의 품위를 담는다. 상실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그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게서 사라진, 사라진, 존재들은 기꺼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일상을 선물했던 존재들이다. 우리가 함께 지나왔던 그 찰나의 빛나는 일상처럼, 그러니까 마치 터지는 순간마저도 '퐁'하고 경쾌하게 반짝이는 비눗방울처럼 말이다.

송지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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