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를 찾아서] “대장암 완치율 세계 1위 한국, 외과의사 줄어 미래는 불안”

이정아 기자 2024. 10. 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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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용 세계대장항문학회 회장(삼성서울병원 암병원장)
“한국은 대장암 발생률 , 완치율 모두 세계 1위
외과 실력으로 개도국 외과의 양성 계획
외과의 줄어 10년 뒤 고난이 수술 못할 것”
지난 10일 서울시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서 만난 이우용 세계대장항문학회 회장(삼성서울병원 암병원장). 그는 "외과 전문의로서 한 사람을 살리고 한 가정에 행복을 되찾아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이정아 기자

한국은 대장암 발생률과 완치율이 모두 세계 1위다. 대장암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환자들이 생존하는 비율도 가장 높다. 20~30대에서 발생하는 ‘젊은 대장암’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 이들의 생존율 역시 높은 편이다. 국내에 복강경과 로봇 수술 등 고난이도 수술을 할 수 있는 외과의사가 많은 덕분이다.

하지만 외과와 산과 등 필수의료를 선택하는 의사가 점점 줄고 있다. 최근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이 길어지면서 필수 과를 포기하고 다른 과로 옮겨가는 의사도 늘었다. 지난달 8일부터 세계대장항문학회 회장을 맡은 이우용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장은 “고령사회가 되면서 대장암을 비롯한 외과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점점 늘고 있지만, 매년 배출되는 외과 전문의는 20년 사이 100여 명 줄었다”며 “필수 과 의사가 많아지려면 그들이 사명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의사 국가시험을 통과한 사람이 1999년~2019년 2772명에서 3115명으로 343명 늘었지만, 그 기간 신규 외과 전문의는 229명에서 126명으로 103명 줄었다. 이우용 원장은 “현재 50대 외과 의사들이 정년을 맞이하는 10여년 뒤에는 고난이도 수술을 받기가 어려워질 수 있을 것”이라며 우려했다. 다음은 이 원장과의 일문일답.

–한국이 ‘젊은 대장암’ 발생률 1위인 원인은.

“첫 번째 이유는 고령사회가 됐기 때문이다. 대장암은 원래 60~70대에 많이 발생하는 병이다. 과거엔 평균 수명이 60~70대였으니 대장암이 흔치 않았다. 지금은 90~100세까지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대장암 환자도 많아졌다.

두 번째 이유는 식습관의 급격한 변화다. 한국인은 과거 전통적으로 채식 위주 식사를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육식을 많이 하고 채식이 줄어들었다. 특히 젊은 층은 기름이 많은, 마블링이 잘 된 고기를 불에 바짝 구워 먹는 것을 좋아한다. 햄버거와 감자튀김 같이 고칼로리 서구 음식도 흔해졌다. 이 때문에 비만, 대사증후군이 늘면서 대장암 발생도 늘어났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내시경 검사가 잘 발달돼 있다. 검진율이 높은 만큼 병을 발견하는 비율 또한 높을 수 밖에 없다.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대장암을 진단받는 환자들이 최근 많아졌다고 볼 수 있다.”

–대장암 환자도 가장 많지만 생존률도 가장 높다.

“건강검진이 잘 이뤄지면서 대장암을 조기 진단할 가능성이 높다. 진단이 이르면 그만큼 치료도 빨리 시작할 수 있어 완치율이 높다. 한국은 복강경 수술이 표준화돼 있을 만큼 수술실력이 좋은 외과의사가 많다. 복강경 수술을 1년에 200~300건씩 시행하는 경험 많은 대장항문 외과의사가 많다. 미국이나 유럽 등 다른 국가는 대장암을 일반 외과의사가 수술하는 경우가 40% 이상이지만 우리나라는 대장암 전문 외과의가 수술하는 경우가 98% 이상이다. 특히 직장암은 수술에 숙련된 의사가 하는 것과 비숙련 의사가 하는 것에 차이가 많이 난다.

또한 한국은 외과와 내과, 소화기내과, 방사선종양학과, 병리과, 진단검사의학과 등 여러 과 의사들이 한 팀을 이뤄서 환자를 치료하는 다학제 진료가 잘 돼 있다. 해외에서는 A병원에서 암을 진단해 B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C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한 병원에서 진단과 수술, 치료를 다 받을 수 있다. 이런 강점들 때문에 국내에서는 대장암 환자의 완치율이 높다.”

–대장암 치료 동향은 예전에 비해 어떻게 달라졌는가.

“과거에는 배를 여는 개복수술로 대장암 조직을 절제했지만 지금은 작은 구명을 내고 내시경 기구를 넣고 하는 복강경수술이나 로봇수술을 많이 해 환자의 삶의 질이 좋아졌다. 또한 직장암 환자는 과거 수술 후 변주머니를 평생 차야 했다. 지금은 수술 전에 항암치료를 먼저 해서 암 크기를 줄여, 수술 후에도 직장의 상당 부분을 남길 수 있다. 또는 방사선 항암제 병합 치료만으로도 수술 없이 암이 없어지기도 한다. 그만큼 수술 부위가 작아 수술 후 환자의 삶의 질도 나아졌다고 볼 수 있다. 아직까지 대장암의 70~80%를 차지하는 비유전성 대장암에는 치료제가 나와있지 않아 그만큼 수술이 중요하다. 유전성 대장암은 도스탈리맙 같은 면역항암제가 나오면서 수술 없이 치료할 수 있다. ”

–국내 술기(수술 실력)뿐 아니라, 교육도 좋다고 들었다.

“맞는다. 현재 대장암 관련 세계적인 학회가 세 곳이 있다. 미국대장항문학회와 유럽대장항문학회, 그리고 이번에 내가 회장을 맡은 세계대장항문학회다. 앞서 두 곳이 의학적으로 발전된 곳에서 학술적인 부분을 이끌고 있다면, 세계대장항문학회는 아프리카와 중동, 동남아 등 저소득 국가들이 학문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즉, 대장항문외과 분야에서 전 세계 교육과 화합에 취지를 더 두고 있다. 81국에서 대장항문외과 교수인 전문의 450여 명이 회원이다. 앞으로 더 많은 회원국과 회원을 모을 예정이다.

한국은 특히 대한대장암학회 교육시스템이 잘 돼 있다. 이것을 세계에 접목시켜서 대장암 치료 수준을 높이려고 한다. 저소득 국가에서 세미나 교육을 할 때 우리가 공동 주최로 심포지엄을 열거나 강연도 할 것이다. 내년에는 인도와 모로코에서 할 계획이다. 이런 곳에서 세미나를 열면 주변 국가에서 회원 의사들이 모일 수 있어서 의미가 크다. 또한 저소득 국가 의사들을 6개월~1년 동안 교육하는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이우용 세계대장항문학회 회장(삼성서울병원 암병원장)이 수술을 집도하고 있는 모습./삼성서울병원

–반면 국내에서 외과의가 급감하고 있어 심히 우려된다.

“큰 걱정이다. 내가 의대생이던 1900년대에는 약 2500명이 의대를 졸업해 그중 160명 정도가 외과 전문의가 됐다. 그런데 지금은 배출하는 의사는 3500명으로 늘었지만, 외과 전문의는 120명대로 줄었다. 의사는 1000명 늘었는데 외과 의사는 100명 이상 줄은 셈이다. 의사를 무작정 늘린다고 외과 의사가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외과가 인기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 자체가 수술이 많고 힘들고 의료 사고가 일어나면 소송 당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외과의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왔는데, 의정 갈등이 길어지면서 그 사명감마저 잃어버린 사람이 많아졌다. 전국 응급실에서 이뤄지는 처치의 60%가 외과의 담당이다. 외과가 무너지면 전국 응급실의 60%가 무너진다는 얘기다. 엄청난 대란이 발생할 거다. 지역의료도 이와 마찬가지다. 외과 의사는 여러 명이 집단적으로 모여서 응급환자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외과 의사가 줄면서 팀으로 환자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이 무너지면 지역의료는 점점 무너질 것이다.”

–앞으로도 외과 의사가 더 줄어들까.

“특히 걱정인 점은 사회가 고령화함에 따라 암환자, 응급환자, 장기이식환자 등 고난이도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는 점점 늘어날 텐데 외과 의사는 급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대처하지 않으면 10년 뒤쯤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당장 내년도 걱정이다. 지금은 전공의들이 다 떠났더라도 병원에 전문의가 되고 세부 전공을 공부하며 진료하는 전임의가 많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1~2년 계약직이다. 현재 상태에서 올해 일하던 전임의가 내년에 떠나버린다면 지금보다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 외과 의사가 늘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가적, 사회적으로 외과 의사가 사명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자부심을 가지고 최소한의 대우를 받으면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필수의료가 발전하면 의사들이 좋은 게 아니다. 그만큼 국민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혜택을 보는 것이다.

또한 의료사고로 인한 사법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어느 의사도 자기 환자를 일부러 나쁘게 만드는 의사는 없다. 하지만 그 과실에 대해 일일이 법적 책임을 묻는다면 어떤 의사도 외과를 하지 못할 것이다. 환자를 위해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안 좋아도 법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한국은 형사 처벌률이 몇 백 배나 높다. 가령 미국은 수가(보험이 정한 진료비)가 높기 때문에 소송비 보험으로 의료사고를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는 수가가 낮아서 이에 대한 해결이 안 된다. 수가를 병원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정상화하는 것도 해결책 중 하나다.”

–후배 의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의사로서 필수 과를 하는 것이 굉장히 보람 있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그런 보람이 있다. 한 사람을 살렸다, 한 가정에 다시 행복을 되찾아줬다는 그런 보람. 예전에 의사가 되려고 결심했을 때 ‘내가 왜 의사를 하려고 했나’를 다시금 생각해보길 바란다. 의사다운 의사가 돼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가. 그렇다면 외과를 비롯한 필수과로 많이 와주셨으면 좋겠다.”

이우용 세계대장항문학회 회장(삼성서울병원 암병원장)이 국제 학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삼성서울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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