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배우면 책 많이 읽을까?”…문해력 논란에 ‘한자교육’ 꺼내든 교육위

양철민 기자 2026. 4. 1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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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교육 강화 검토에 논란…“학습 우선순위부터 따져야”
“국어 어휘 70%가 한자어라도 이미 한글화”…효과 물음표
‘가격’ 한자어 ‘가(價)’와 ‘격(格)’ 몰라도 직관으로 의미파악 가능
대학생 72% “한글과 한자 섞이면 오히려 의사소통 효율↓”
챗GPT 생성 이미지

국가교육위원회가 학생들의 문해력 제고를 위해 교과서에 ‘한자 병기’를 포함한 한자 교육 강화를 검토중이다. 반면 학부모와 교육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자교육이 정말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김경회 국교위 문해력 특별위원장은 이달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67차 회의에서 “(위원회 활동이) 주로 독서, 글쓰기, 어휘력 관련 논의에 초점이 맞춰질 것 같지만 한자 교육 문제가 논란이 될 것 같다”며 “한자 교육 문제를 충분히 개방적으로 논의하되 확정되기 전에 학생과 학부모에게 혼란을 주는 일은 없게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교위 문해력 특별위의 결정에 따라 한문 교육이 필수가 될 수 있는 셈이다.

교육계에서는 당연히 한자 교육을 시키는 것이 시키지 않는 것 보다는 낫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모든 교육이 어떤 형태로든 학생에게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실제 ‘한자 교육을 시키는 것이 안 시키는 것 보다 낫다’라는 주장에서 ‘한자 교육’이 들어간 자리에 스페인어, 코딩, 라틴어, 줄넘기와 같은 단어를 넣어도 관련 주장이 성립한다. 결국 한자 교육의 효용성에 대한 논의가 아닌 교육과정 커리큘럼의 ‘우선 순위’에 무게중심을 둔 한자 교육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1일 김대희 원광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작성한 ‘한자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 재고’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한글에 한자를 병기할 경우 의사소통 효율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의사소통의 효율성을 생각했을 때 기호 표현과 기호 의미가 1대 1 대응 관계를 형성했을 때 의미해석 측면에서 가장 효율적”이라며 “반면 한자를 사용하게 될 경우 하나의 의미에 대한 다른 철자 체계 설정으로 기호 표현이 2개가 되며, 텍스트의 의미를 분명하게 하려는 목적이 오히려 의사소통을 비효율적으로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라틴어처럼 철자의 유사성이라도 존재하면 다행이겠지만 한글과 한자는 그렇지도 않다”며 “기호 표현에 대한 학습을 강조하는 한자 교육은 학습 부담을 가중시킨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한국어 어휘의 70% 이상이 한자어로 돼 있다’며 한자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설득력에도 물음표를 제기한다. 보고서는 “국어 어휘의 70%나 되는 한자어는 모두 한글화돼 사용 중인데다 언중의 언어생활에 자리를 잡아 의사소통 도구로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며 “국어 어휘의 70% 이상이 한자어라는 이유로 한자를 공부해야 한다는 주장은 한자 교육 당위성을 뒷받침하기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영미권의 라틴어 교육을 예시로 들며, 한자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하지만 이 또한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기 힘들다. 우선 라틴어는 미국의 사립 고등학교 등 일부에서만 선택과목 형태로 교습이 이뤄져 필수가 아니다. 특히 영어 단어의 80%는 라틴어에서 파생된데다 영어와 라틴어는 형태나 의미가 유사해 교습에 따른 부담이 적다. 반면 국어와 한자는 의미적 관계만 성립될 뿐, 한글과 한자의 표기법이 완전히 다르다. 이와 관련해 보고서는 한자 교육은 한글과는 전혀 다른 문자 체계에 대한 학습이기 때문에 모국어 학습이라 볼 수 없다”거나 “‘국어의 70%는 한자어’라는 주장은 한자를 대신할 한글이라는 기호 체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보고서는 한자 교육의 효과에 대한 세간의 주장 또한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아 반론의 여지가 많다고 주장한다. 보고서는 세간에서 주장하는 한자 교육의 효과인 △어휘력과 언어 사용 능력 신장 △지능 계발과 사고력, 표현력 신장 △상상력, 창의력, 분석력, 논리력, 종합력 향상 △감성 고양 및 인성 배양 △유용한 교육적 경험으로 평생학습 시 기여 등에 대해 “이같은 주장의 근거는 대부분이 개념적이고 관념적인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며 평가 절하한다. 무엇보다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요소는 언어의 어원에 관한 지식이 아닌 ‘언어적 직관’이라는 것이 보고서의 주장이다.

보고서는 ‘한자교육 시 문자의 표현과 의미가 1대 1로 대응하지 않는 경우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에도 반박한다. 문자나 음성을 통한 의사소통 모두 어휘의 뜻이나 문법 규칙과 같은 언어적 지식뿐만 아니라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맥락이 중요 요소로 작용한다는 이유에서다.

한자 특유의 ‘다의성’에 따른 해석 문제 또한 언어 사용자의 직관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예들 들어 ‘가격(價格)’을 구성하는 낱글자인 ‘가(價)’는 ‘값, 수, 값있다’의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격(格)’ 또한 ‘격식, 지위, 인격, 과녁, 바로잡다, 겨루다, 대적하다, 치다, 때리다’ 등의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반면 ‘값’이라는 의미와 ‘격식’이라는 의미를 선택·결합해 ‘가격(價格)’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한자를 모르는 이들 또한 언어적 직관만으로 가능하다.

‘학생(學生), 학교(學校), 학용품(學用品)’ 등의 어휘 또한 ‘배울 학(學)’이라는 글자를 배우기 이전에 형성한 언어적 직관으로 충분히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보고서는 “한자어의 의미는 한자를 학습함으로써 길러진다기 보다는 한자어, 고유어, 외래어 여부에 상관없이 ‘한글화된 기호’에 대한 ‘한글화된 의미’ 구조로 우선 학습된다”고 지적한다.

보고서는 또 ‘가용 어휘가 늘어날수록 글 이해력이 상승한다’는 주장이 ‘한자 교육의 필요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국어 교육에서 이야기하는 어휘 교육은 우리말로 쓰인 낱말에 대한 의미를 파악하는 교육이지, 한자라는 문자 체계에 대한 교육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한글화된 한자어 교육은 어휘 교육일 수 있지만 한자의 음과 훈에 대한 교육은 어휘 교육이라 보기 어렵다”며 “국어 교육에서 말하는 어휘 교육은 하나의 덩어리로 굳어져 일상적으로 쓰는 어휘의 의미 파악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어 “‘가격’을 ‘가’와 ‘격’으로 쪼개서 가르치지는 않는 것처럼 한자 교육에서 말하는 어휘 교육과 국어 교육에서 말하는 어휘 교육은 성격상 차이가 분명하다”며 “한국어 낱글자가 가진 의미의 확장성을 고려해 어휘 교육 측면에서 한자 학습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학계에서 한자어를 보는 관점은 국어 체계에서 접근하는 것과 한문 체계에서 접근하는 것으로 나뉜다. 국어 체계에서 한자어는 고유어·외래어와 함께 국어 어휘의 한 갈래로, 한자로 표기 가능한 우리말 단어로서의 기능만 담당한다. 한문 체계로 본다면 한자어는 한자·고사성어와 함께 한문 문법으로 이루어진 단어, 구, 문장의 기능을 포함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한자를 읽고 쓰는 교육은 ‘국어 교육’으로 보기 힘들다는 뜻이다.

글을 읽을 때 힘들이지 않고 빠르고 정확하게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읽기 유창성’이라 할 때, 한자 사용이 오히려 읽기를 방해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보고서에서 인용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학생 100명에게 한자와 한글이 혼용된 문구를 제시할 경우, 응답자의 72%가 “한자 때문에 글을 읽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답했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한자 표기는 독자의 정보 처리 속도를 느리게 할 뿐만 아니라 글의 내용 이해 보다는 글자 해독에 더 많은 집중을 하게 한다”며 “이는 한자가 읽기 과정에서 인지 작용이나 독서 태도 측면에서 심각한 장애를 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어느 나라든 어원에 대한 교육을 강제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낮아진 한자의 위상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한자는 한글 사용 전 음성언어를 표현하는 문자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지만 조선 말기부터 한글이 일상화 된데 이어 해방 이후 한글 전용 정책이 시행되며 한자는 하나의 언어 기호로서 도구적 성격만을 갖게 됐다.

특히 한자, 한문은 5000년가량 언중들의 언어생활을 지배해 온 반면 한글은 창제된 지 500년이 넘었지만 언어적 역할을 부여받은 기간은 100년 남짓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보고서는 언중의 언어 의식이 한글과 한자의 경계에 놓여 있다고 지적한다. 보고서는 “한글로 기호화된 어휘를 한자로 다시 학습하는 것은 어원에 대한 학습”이라며 “어원에 대한 교육은 학습자 선택의 문제이지 당위성 문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에서는 한글 사용 역사가 짧기 때문에 언중의 언어 의식 속에 한자 교육에 대한 잔상이 남아 있는 것”이라며 “이러한 잔상이 한자 교육의 당위성을 무의식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양철민 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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