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보호구역에서 열리는 낚시대회…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주도에서 해양 레저 활동을 즐겨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곳이 있습니다. 2000년 천연기념물 제421호로 지정된 제주도 서귀포시 문섬·범섬 천연보호구역입니다.
이곳은 빼어난 경관을 자랑합니다. 섬을 두르고 있는 주상절리대, 파도를 맞으며 생긴 깎아지른 절벽과 동굴 등은 자연이 빚어낸 조각 작품입니다.
두 무인도는 일반인 출입이 엄격히 통제됩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도 지정돼, 보전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또 해양생태계 및 해양경관 등을 특별히 보전할 가치가 있는 '해양보호구역'으로도 지정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국가지정문화재 문섬과 범섬에서 이번 주말, 전국 팔도에서 200명이 모이는 제주도지사배 전국 낚시대회가 열립니다. 천연기념물에서 해마다 열리는 이 바다낚시 대회를 둘러싸고 "낚시가 허용된 구역이라 문제없다"는 입장과 "대회 개최로 적절하지 않은 장소"라는 주장이 맞부딪치고 있습니다.
■ 천연기념물에서 도지사배 전국 낚시대회?…관리 담당은 '어리둥절'
제주도지사배 낚시대회는 제주도 낚시협회가 주최합니다. 제주도에서 2012년부터 보조사업으로 대회 개최비 절반을 지원해 왔습니다. 코로나19 사태 기간을 제외하고 해마다 열렸습니다. 올해는 도비 2천500만 원이 지원됐습니다.
행사 포스터에는 참가비 1인당 10만 원, 선착순으로 200명을 모집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대회 주최 측은 "선수와 임원진 등을 포함해 300명가량 참가하는 행사"라고 밝혔습니다.
대회는 문섬과 범섬을 비롯해 섶섬, 새섬, 지귀도 등 5개 섬에서 나눠 진행됩니다. 어종별로 대물을 낚는 강태공을 위한 수백만 원 상당 상금도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천연기념물 관리를 맡고 있는 국가유산청은 이 대회 개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유산청으로부터 문섬·범섬 관리를 위임받은 세계유산본부는 "낚시대회 주최 측으로부터 문섬·범섬 천연보호구역 내에서 행사를 연다는 사실을 알리거나 협의를 요청하는 등 사전에 따로 연락받은 게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해양보호구역을 관리하는 제주도 해양산업과 관계자 역시 "매년 예산은 지원하지만, 대회 개최와 관련해 제주도에 결정권이 있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 문섬·범섬 낚시대회 개최 두고 "불법은 아니라서…"
문섬과 범섬 갯바위에서 낚시하는 행위는 2024년 10월 현재 불법은 아닙니다. 국가유산청이 지난해 4월 고시를 통해 문섬·범섬 천연보호구역 출입 공개 제한 지역을 섬 지역(육상)으로만 한정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국가유산청은 2021년 12월 8일 고시를 통해 출입 공개 제한 지역을 섬 지역에서 해역부까지 확대했습니다. 그러나 "생업에 지장이 간다"는 민원이 빗발치자, 제주도와 협의 끝에 환경 보호를 조건으로 섬 지역만 출입을 통제하는 것으로 고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희귀 자생 식물 등이 자라고 있는 섬 지역은 국가유산청 허가 없이 드나들 수 없지만, 해안가 갯바위로는 선박이 접근하거나 배에서 내려 걸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국가유산청 고시가 완화되면서 섬 지역을 제외한 단순 입도나 갯바위 낚시에 대해 행정기관에서 제지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신고·허가 사항도 아닐뿐더러, 입도 인원 제한과 같은 규정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번 낚시대회 역시 별도의 허가나 신고 없었지만 법적으로 문제는 없습니다.
"지난해 문섬·범섬 일대 출입 규제가 완화되면서 대회 장소로 정한 게 아니냐는 KBS 질문에 제주도낚시협회 관계자는 "그렇지 않다. 문섬과 범섬을 포함해 서귀포 섬에서 해마다 해오던 낚시대회"라며 "평일 문섬·범섬 갯바위 낚시객 수와 비교해도, 참가 규모가 그렇게 크진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갯바위 낚시로 인한 훼손이나 환경 오염은 없다고 보지만, 행정기관 측이 우려하는 문제가 없도록 갯바위 환경 정화 활동을 하는 등 대회를 관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보호 못 하는' 보호구역?…"페이퍼 파크 되지 말아야"
그러나 수백 명 단위 인원이 참가하는 큰 낚시대회가, 그것도 천연보호구역에서 열리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국가유산청이 문섬·범섬의 해역부 출입을 '보호를 전제로' 허락해 준 것이지, 천연보호구역 지정이 해제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연보호구역에서 열리는 대규모 행사가 미칠 영향이 어느 정도일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해양환경단체는 각종 보호구역 지정만 해두고 관리에는 손을 놓은, 이른바 '페이퍼 파크'가 되어선 안 된다고 꼬집었습니다.
윤상훈 해양과학시민센터 '파란' 전문위원은 "문화재 보존 기본 원칙은 원형 유지다. 문섬·범섬 출입 제한 규제 완화도 국가유산청에서 예외적으로 풀어준 것"이라며 "관례상 그렇게 해 왔다는 이유로,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들어가서 낚시대회까지 열게 하는 건 관리 부서의 책임 방기"라고 문화재를 바라보는 인식 수준에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국가유산청과 세계유산본부도 뒤늦게 이 같은 천연보호구역에서 열리는 대규모 행사에 대한 보완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세계유산본부 관계자는 "앞으로도 이와 같은 행사가 있을 때는 사전에 주최 측과 협의를 거쳐, 천연기념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인지 판단한 후에 진행 여부를 정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인간이 무심코 남긴 흔적으로 인해 해양 생물이 고통당하는 일은 전 세계 바다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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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소영 기자 (missionalis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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