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공지능(AI) 업계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반도체 수출통제 강화로 미국과의 기술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AI 연구자들은 자국 업체들이 효율성 측면에서 일부 진전을 이뤘지만 미국의 수출통제로 당분간은 미국을 따라잡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스타트업 즈푸AI 창업자 탕제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사실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일부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우리가 직면한 도전과 격차 역시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AI 칩 선두주자인 엔비디아는 차세대 플랫폼인 루빈을 공개하며 여러 미국 기업들이 고객이라고 밝혔지만 중국 AI 개발사는 단 한 곳도 언급하지 않았다.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일부 중국 기업들은 루빈 칩에 접근하기 위해 동남아와 중동 지역 데이터센터에서 컴퓨팅 파워를 임대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지난해 엔비디아의 블랙웰 시리즈 칩에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제3국에서 중국 기업들의 엔비디아 칩 사용은 차단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회 방법이 복잡해 소규모의 칩 사용에도 큰 불편이 동반된다.
알리바바의 AI 모델 큐원 개발을 총괄하는 저스틴 린은 향후 3~5년 내 중국 기업이 오픈AI나 앤트로픽 같은 기업을 뛰어넘을 가능성에 대해 “20% 이하”라고 답했다.
중국 기업들은 미국의 수출통제에 따라 최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을 확보할 수 없다. 또 삼성전자나 대만 TSMC와 같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가 아닌 성능이 낮은 수입 장비나 중국산 장비에 의존해 생산 능력을 늘려야 한다.
중국 기업들은 미국의 수출통제 시행 이후 최첨단 AI 개발 대신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에 주력하고 있다. 반면 미국 기업들은 최신 칩에 투자해 기술적 가능성을 넓히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린은 “오픈AI를 비롯한 미국 기업들은 막대한 연산 자원을 차세대 연구에 투입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력이 매우 제한적”이라며 “납기 수요를 맞추는 데에만 대부분의 자원이 소모된다”고 말했다.
UBS 애널리스트들은 지난해 중국 주요 기술 기업들의 AI 설비투자 규모가 약 570억달러에 달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미국 경쟁사들의 약 10분의1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딥시크와 같은 스타트업들이 제한된 자원을 활용해 고성능 모델을 개발한 만큼 일각에서는 중국 AI 기업들이 여러 제한 속에서도 기술적 발전을 이룰 것이라는 낙관론이 제기된다. 즈푸AI와 또 다른 AI 개발사인 미니맥스는 이달 홍콩에서 기업공개(IPO)를 통해 합산 10억달러 이상을 조달했다. 미니맥스의 주가는 공모가 대비 두 배 이상 상승했다.
베테랑 테크 투자자인 알리사 리는 “운영 환경이 더 어려워졌지만 투자자들은 기술적 추격이나 돌파구 가능성을 계속해서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며 “이러한 낙관론 자체가 중국 기업들이 보여준 혁신의 수준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딥시크는 약 1년 전 저비용의 고성능 AI 모델로 미국에서 주목을 받은 이후 AI 개발 효율을 높이는 기법들을 여러 차례 공개했다. 이달 초에는 효율성을 강화한 새로운 AI 학습법이 담긴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비영리 연구기관 에포크AI에 따르면 올해 딥시크와 알리바바가 개발한 모델들은 미국 최고 수준의 모델과의 격차를 최근 수년간의 평균치인 7개월에서 최소 4개월까지 줄였다. 중국의 주요 모델 상당수는 오픈소스로 제공돼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내려받아 수정할 수 있다. 이는 중국 기업들의 글로벌 인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됐고 폐쇄형인 최상위 미국 모델들과 대비된다.
다만 딥시크도 난관을 겪었다. 개발 과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해 새로운 주력 모델 개발 과정에서 화웨이와 다른 중국 업체의 저사양 칩을 사용해봤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 일부 학습 작업에 엔비디아 칩을 사용했다. 이후 성과를 거뒀고 향후 몇 주 안에 해당 모델을 공개할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화웨이와 여러 중국 칩 스타트업들은 제품 경쟁력을 강화했다. 실제로 즈푸AI는 화웨이 칩만 사용해 오픈소스 이미지 생성 모델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의 최첨단 칩에 비해서는 성능이 여전히 떨어진다.
중국 인터넷기업 텐센트의 야오순위 최고AI과학자는 “가장 큰 병목은 반도체 제조 능력”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해 오픈AI를 떠나 텐센트의 AI 사업을 이끌고 있다.
미국 정부는 최근 엔비디아가 중국에 H200 칩을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이 결정이 중국 기업들이 추격하는 결정적 변수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내 H200 수요가 높다고 밝혔지만 중국 기술 기업 관계자들은 이 칩이 루빈 시리즈보다 두 세대 뒤처져 있어 최첨단 AI 학습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중국 기업들은 H200 구매에 대한 중국 정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중국 당국은 자국산 첨단 반도체 개발과 생산을 통한 기술력 자립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중국 당국은 일부 기업에 고급 AI 연구 등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 H200 구매를 할 것을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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