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지게미의 변신] (1)술 빚고 남은 10%, 어떻게 써야 할까

박준하 기자 2025. 6. 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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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전체 양의 3~10%가량 발생
과거엔 사카린 타서 먹던 술밥
식약처, 2020년부터 주류서 제외
가공이나 판매 이전보다 쉬워져
가축 사료 등 활용 가능성 높아
전통주를 빚고 남는 찌꺼기인 술지게미(주박)는 대부분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환경 문제와 자원순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 부산물이 가축 사료, 기능성 식품, 화장품 원료 등 산업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버려지던 술지게미가 어떻게 산업과 정책, 농업과 환경을 잇는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고 그 가능성을 4회에 걸쳐 짚어본다.
새참을 먹으며 막걸리를 마시는 농민의 모습. 농민신문DB
지금의 중년과 노년층은 ‘술지게미’하면 집에 막걸리를 배달하다 얻어 먹는 달달한 술밥으로 기억할 것이다. 술지게미는 쌀, 물, 누룩으로 전통주를 빚고 술을 짜낸 후 남는 찌꺼기다. 발효를 통해 만들어진 술을 짜내고 나면 곡물과 효모, 미생물, 단백질, 아미노산, 식이섬유 등이 섞인 고형물이 생긴다. 술 빚는 과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전체 술의 3~10%가량이 술지게미로 남는다.
사카린 타먹던 부산물, ‘술지게미’
술지게미는 막걸리를 짜내고 남는 부산물이다. 이미지투데이
과거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술지게미를 식용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은 여기에 사카린을 타서 단맛을 더해 간식처럼 먹었다. 황석영의 소설 ‘모랫말 아이들’에서는 흑설탕을 친 술지게미를 먹고 주인공이 얼큰하게 취하는 장면이 있다. 1982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만화 ‘맹꽁이 서당’에서도 학동들이 술지게미를 얻어 먹고 헤롱거리자 훈장님이 “술지게미는 돼지나 먹는거다”라며 크게 혼내는 모습이 나온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콩나물무침이나 나물무침에 섞어 먹기도 했고, 농촌에서는 돼지 사료로 쓰기도 했다. 

하지만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식문화가 다양해지면서 술지게미의 식용 활용은 점차 줄어들었다. 맥주와 희석식 소주로 전통주 시장 자체가 위축되면서 부산물에 대한 관심도 함께 사라졌다. 그 결과 지금은 대부분의 양조장에서는 술지게미를 단순 폐기물로 처리하거나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해 버리고 있다. 

영세한 양조장 많아 수거·보관 어려워
수분을 뺀 술지게미. 게티이미지뱅크
술지게미가 오래토록 활용되지 못한 이유는 단순히 식문화의 향상만은 아니다. 술지게미는 2020년 이전까지는 소량의 알코올이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술’로 분류돼 가공이나 판매가 어려웠다. 주세법에 따라 주세 30%, 교육세 10%, 부가가치세 10%를 내고 정해진 유통 경로를 따라야 했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2020년부터 ‘ 탁주 등의 주류(주정제외) 제조 시 생성되는 주박(술지게미)은 음료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경우 주세법 제3조에 따른 주류에 해당하지 아니함’으로 정리하면서 식품으로서 활용 범위가 넓어졌다.

물론 아직도 자원화 확산엔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 가장 큰 장애물은 수거와 보관의 번거로움이다. 술지게미는 수분 함량이 높아 빠르게 부패하고, 소량 다품종 생산이 많은 전통주 업계 특성상 보관과 유통 효율이 떨어진다. 또 전국에 흩어져 있는 소규모 양조장이 개별적으로 처리하기에는 경제성과 지속가능성이 낮다.

서울 마포구의 한 양조장 대표는 “술지게미가 아깝다는 의견은 많지만 나오는 양이 많지 않아 따로 수거해가는 업체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종종 수육 삶기 전에 숙성용으로 사용하는 등 개별적인 사용 외에는 산업적인 활용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2차 자원으로 거듭나…가축 사료로 활용
술지게미를 사료화하는 업무협약을 맺은 칠백주조. 칠백주조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술지게미의 활용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환경 문제와 자원 순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술지게미의 잠재력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산업계와 농업 현장에서는 가축 사료, 비료, 식품 원료, 화장품 소재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2차 자원’으로 보고 있다. 향후 공동 수거 시스템 구축, 저장·가공 기술 개발, 민관 협력 체계 정비 등이 이뤄진다면 술지게미는 지역 경제와 환경을 잇는 핵심 자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기후위기가 화두로 떠오른 상황에서 자원순환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실제로 올해초 경북 칠곡 칠백주조는 한우농가인 와랑농장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칠백주조에서 발생하는 술지게미를 가축 사료로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칠백주조에 따르면 대략 전체 술 생산량의 5~10%가 술지게미로 나온다. 걸쭉한 술지게미를 통에 담아 한우농가에 전달하면 그곳에서 발효해 가축에게 공급하는 방식이다. 현재 와랑농가의 한우 500마리는 술지게미를 발효한 사료를 먹으며 성장하고 있다.

김현한 칠백주조 대표는 “술지게미는 영양분이 풍부해 버리기 아까워서 인근 한우농가와 업무협약을 맺게 됐다”며 “한우농가 발효 사료, 참외농사의 거름 등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설명했다.

해외 연구에서도 발효 과정에서 유산균이 활성화된 술지게미가 가축의 장 건강에 도움을 주고, 섬유질이 풍부해 사료로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이외에도 일부 양조장은 술지게미를 건조해 비료 원료로 활용하거나, 피부에 좋은 유효 성분을 추출해 기능성 화장품 소재로 전환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이대형 경기도농업기술원 박사는 “술지게미 활용에 대한 논의는 공감대를 이루고 있지만 꾸준한 연구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전통주가 많은 관심을 받는 만큼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관련 정책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준하 기자(전통주 소믈리에) jun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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