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신세대’ 등장…“상속 대신 나와 배우자 위해 재산 쓸 것”

박성민 기자 2024. 10. 1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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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게티이미지.
최근 3년 사이 노인의 평균 소득과 자산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기보다 본인과 배우자를 위해 쓰겠다는 노인도 늘었다. ‘베이비붐(1955~1963년생) 세대’가 은퇴 후 대거 노년층에 편입되면서 자산과 교육 수준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서 달라진 가치관을 지닌 ‘신(新)노년층’이 등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건복지부가 16일 발표한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가구의 연소득은 2020년 평균 3027만 원에서 지난해 3469만 원으로 14.6% 증가했다. 또 같은 기간 금융 자산은 3213만 원에서 4912만 원으로 52.9%, 부동산 자산은 2억6183만 원에서 3억1817만 원으로 21.5% 늘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조사를 시작한 2008년 이후 노인 소득과 자산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으며 특히 금융 및 부동산 자산 증가 폭은 최근 3년이 가장 컸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노인도 늘었다. 소득 중 자녀 등이 주는 사적이전 소득 비중은 2008년 30.4%에서 8%로 급감했으며 같은 기간 근로 및 사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39%에서 53.8%로 늘었다. 1인 가구 비중은 32.8%로 13%포인트 늘어난 반면 자녀와 함께 사는 비중은 10.3%로 9.8%포인트 줄었다.

신노년층의 등장은 상속에 대한 가치관도 바꾸고 있다. ‘재산을 자신과 배우자를 위해 쓰겠다’는 응답은 24.2%로 2020년(17.4%)보다 6.8%포인트 늘었다. 반면 ‘장남에게 더 주겠다’는 비율은 13.3%에서 6.5%로 반 토막 났다. 임을기 복지부 노인정책국장은 “베이비붐 세대는 재산을 상속하기보다 본인들이 더 사용하고 대신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가치관을 가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조사는 3년 주기로 실시되는데 지난해는 9~11월 1만78명을 방문 면접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노인 1인가구 비율 32.8%… “부부에 비해 생활의 어려움 2배”

“자식들에게 손 벌리기 싫으니 뭐라도 해야죠.”

16일 오후 1시경. 서울 중구 무교동 음식문화거리 입구에서 광고 전단지를 나눠주던 박모 씨(70)는 “가정주부였는데 아이들을 다 키운 후 7년 전부터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남편과 함께 모은 재산이 없는 건 아니지만 수입이 있어야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노후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가 16일 발표한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선 박 씨처럼 노후에 일을 하면서 자녀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과거 세대에 비해 노인들의 소득·교육 수준이 높고 건강도 다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1인가구 비율도 늘어 자칫 돌봄사각지대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0명 중 4명은 ‘일하는 노인’

11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성행궁광장에서 열린 ‘노인일자리 채용한마당’을 찾은 어르신들이 구직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2023.10.11. 뉴시스
복지부가 지난해 9~11월 65세 이상 1만7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일을 하고 있다’는 비율은 39%에 달했다. 노인 10명 중 4명이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일하는 노인 비율은 2014년 28.9%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은퇴 후에도 돈을 버는 노인이 늘면서 노인가구의 연 소득은 2017년 2590만 원, 2020년 3027만 원, 2023년 3469만 원으로 6년 만에 33.9%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금융 및 부동산 자산 규모는 3억6729만 원으로 2020년 2억9396만 원에 비해 약 25% 증가했다.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비율도 늘었다. 스마트폰 보급율은 2020년 56.4%에서 지난해 76.6%로, 컴퓨터 보유율은 2020년 12.9%에서 지난해 20.6%로 증가했다.

전반적인 교육 수준도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고등학교 이상을 졸업한 비율은 2008년 첫 조사 때 17.2%에 불과했으나 지난해는 38.2%로 2배 이상이 됐다. 임을기 복지부 노인정책관은 “베이비붐(1955~1963년생) 세대가 은퇴하면서 가구소득 및 금융 및 부동산 자산이 일정 수준 이상이고 교육 수준도 높은 새로운 노년층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1인가구 돌봄 강화해야”

건강상태도 다소 개선됐다. 우울증상 비율은 2020년 13.5%에서 지난해 11.3%로 줄었고, 낙상사고 경험 비율은 같은 기간 7.2%에서 5.6%로 소폭 감소했다. 최근 한 달 동안 외래진료를 이용한 비율도 70.6%에서 68.8%로 줄었다.

스스로를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연령은 2020년 70.5세에서 지난해 71.6세로 1.1세 상승했다. 또 노인의 79.1%는 노인 기준을 묻자 ‘70세 이상’이라고 답했다. 김춘식 씨(87)는 “과거에 비해 노인이 많아진 만큼 노인 연령 기준을 75세 이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평균 자산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빈곤층 비율이 유지되고, 1인 가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1인 가구 비율은 32.8%로 2020년 조사 대비 13%포인트 증가했다. 그런데 1인가구의 경우 ‘건강하다’고 답한 비율이 34.2%로 부부가구(48.6%)에 비해 크게 낮았다. 또 우울감이나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비율도 많게는 2배 가량이나 됐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돌봄이 필요한 노인 1인가구 증가세가 가속화되는 상황”이라며 “가족 돌봄에 의지할 수 없는 경우가 늘어나는 만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돌봄 기능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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