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완벽했던 준중형 디자인" GM대우가 출시한 최고의 차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드문드문 보였었는데 세월이 세월인 만큼 무지개 다리를 건넌 친구들이 많은 차. 그나마 멀쩡한 차들은 중동이나 중앙아시아 등지로 몽땅 수출되면서 지금은 도로 위에서 이 차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GM 대우 체제로 개편된 이후에도 회사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SUV 윈스톰이 불어오는 SUV 훈풍에 힘입어 준수한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다양한 라인업으로 무장한 라세티와 신차 토스카 등 주력 세단 라인업이 주춤하면서 GM대우 경영진의 고심은 점점 깊어져 갔어요.

설상가상 2008년 금융위기가 심화되면서 모기업 전체가 위태로운 상황이었고, GM 역시 회사를 살리기 위해 수많은 브랜드와 신차 프로젝트를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이 비교적 최근에 인수된 GM 대우는 다행히 매각이나 폐기가 아닌 소형차 생산과 신차 개발 능력을 인정받아 구조 조정의 칼바람 속에서 살아남았죠. 이런 분위기 속에 출시된 2세대 '라세티 프리미어'는 어깨가 무거운 신차로서 경영진의 기대와 많은 소비자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차였습니다.

GM대우가 주도하고 독일 '오펠'이 참여해 개발된 라세티 프리미어는 GM의 자원을 십분 활용해 개발된 신차인 만큼 때깔부터 남달랐습니다.

앞서 출시된 기아 포르테가 직선의 단순함을 내세우며 날렵하고 경쾌한 느낌을 추구했다면, 이쪽은 직선의 단순함을 철갑을 두른 듯 견고하고 다부진 인상으로 풀어낸 느낌이었습니다. 전작의 수수한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두툼한 선과 면을 앞세운 강렬한 디자인에 경쟁차들을 압도하는 몸집까지 갖추면서 차급 이상으로 듬직해 보였어요.

아기 맹수를 연상케 하는 전면부는 펜더를 타고 올라가는 눈꼬리로 개성을 더했고,두툼한 크롬 라디에이터 그릴과 익숙한 범퍼 디자인으로 다른 라인업과 패밀리룩을 이뤘습니다.

오히려 GM대우 그릴이 생소하게 느껴지시는 분들이 있으실 텐데요. 이때는 GM대우 브랜드 이미지가 썩 좋지 않다 보니 수출형 '쉐보레'나 '홀덴' 그릴로 바꾸는 드레스업이 국룰로 자리잡은 시기였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온전한 라세티 프리미어를 찾아보기 힘들죠. 아마 라프보다 '홀덴 크루즈'가 더 많을 거예요.

측면은 전형적인 3박스 세단 스타일이었던 전작과 달리 완만하게 떨어지는 쿠페 스타일의 루프 라인을 갖추고 있고요. 차체 대비 좁은 면적의 유리창과 대형 알루미늄 휠이 조화를 이루며 수입차 못지않은 꽉 찬 느낌을 만들어 냈습니다.

휠하우스가 넉넉해 17인치가 적정 사이즈로 보일 정도였어요. 뒷모습은 두꺼운 크롬바와 디퓨저 형상을 더한 범퍼로 심심하지 않게 마무리했지만 차 크기에 비해 거대해 보이는 리어램프는 호불호가 갈렸습니다.

실패한 전작을 답습할 필요는 없었겠죠. 라세티 프리미어는 '이름 빼고 다 바꿨다'는 말처럼 라세티라는 이름만 가져왔을 뿐 전작과는 아예 다른 차라고 봐도 될 정도로 파격적으로 달라졌습니다.

세대 교체를 이룬 아반떼가 물에 퉁퉁 불은 듯한 디자인으로 붕어라는 놀림을 받고 있었는데요. 강인하고 멋진 디자인을 내세운 라세티 프리미어는 여리여리하고 가벼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경쟁체들과 대비되며 젊은 남성 소비자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유튜버 'CARGUY 아재라이드' 출연으로 유명해진 김태완 디자이너의 손을 거친 모델이죠. 멋들어진 외관이 전시장으로 이끌었다면 실내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세대교체란 이런 것이다'를 외치는 듯한 실내는 전작의 좌우대칭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탑승객을 둥글게 감싸는 '랩 어라운드' 형태로 디자인해 안정감이 돋보였죠. 금속 장식과 은은한 푸른색 조명을 사용해 도시적이면서 미래지향적인 분위기를 뽐냈습니다.

'듀얼 콕핏'으로 명명된 이 패밀리룩은 이후 등장한 신형 라인업에 두루 적용됐죠. 고리타분한 우드그레인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고, 도어트림과 대시보드를 폭넓게 감싼 인조가죽 만큼은 차급 이상의 고급감을 선사했어요.

스포티한 디자인의 스티어링 휠은 엄지가 닿는 곳에 버튼을 마련해 조작 편의성이 좋았고, 너머에 자리한 실린더 타입 계기판은 연비 계산 기능을 넣은 트립 컴퓨터까지 갖춰 보기에도, 기능면으로도 훌륭했습니다.

보통 센터페시아 상부와 하단 콘솔이 명확하게 나뉘는 것이 보편적인 데 반해 기어레버까지 Y자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센터페시아가 신선했고요. 최상단에 단색의 LCD 모니터를 넣어 오디오 및 공조정보를 함께 표기해줍니다.

자연스레 자리잡은 사각형 스타트 버튼, 온도와 풍량 조절 다이얼 안쪽에 열선시트 버튼을 넣는 등 눈에 거슬리지 않는 깔끔한 디자인을 위한 디테일이 돋보였어요. 넉넉해진 휠 베이스로 뒷좌석 공간은 여전히 쾌적했지만 뒷좌석 암레스트는 결국 'GM'당해 버렸는데요.

전작에도 있었던 분리형 헤드레스트, 실용적인 뒷좌석 폴딩 대신 스키 쓰루를 넣는 등 나사 하나 풀린 듯한 패키징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왜 때문인지 공식 사진에는 있었던 내비게이션이 누락된 채 출시되어 볼멘소리가 나왔었는데요. 어차피 순정 내비게이션 퀄리티야 불 보듯 뻔하니 별 도움은 안 됐겠지만요. 하지만 있는데 선택을 안 하는 거랑 아예 선택 조차 못하는 건 느낌이 좀 다르죠. 애프터마켓 장인들이 말끔하게 해결해주기는 했지만요.

소재의 질감과 버튼의 조작감에서 차급의 한계가 느껴졌지만 이를 세련된 디자인으로 커버했고요. 덕분에 십 수 년이 지난 지금 봐도 동시대 차들과 비교해 구식 느낌이 별로 안 나죠. 여기서 더 나아진 게 없다는 게 문제지만요.

사활을 걸고 만든 차 답게 디자인 뿐 아니라 파워트레인에서도 앞서 나갔는데요. 앞서 토스카를 통해 중형차 자동변속기의 다단화를 제시했던 GM대우는 내친김에 준중형차인 라세티 프리미어에 까지 '6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해 신기술 부분에서 확실히 앞선 모습을 보여줬어요.

물론 숫자가 높은 게 무조건 우세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자동차 세계인데요. 중형차 마저 4단 자동변속기가 주류이던 시점에 이러한 파격적인 사양은 강력한 세일즈 포인트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신의 주행에서는 체감이 크지 않았지만, 항속 주행 시 확실한 이점이 있었기 때문에 경쟁사에게는 꽤나 큰 골칫거리였을 거예요.

여기에 오펠 기술진의 풍부한 노하우가 반영된 하체 세팅으로 동급에서 가장 안정적인 주행 성능을 뽐냈고, 특히 고속주행 안정성이 단연 돋보였어요. '고장력 강판'의 적용 비율을 높이면서 다부진 외관에 걸맞는 안전성까지 갖췄죠.

다만 강력한 무기였던 이 6단 자동변속기가 도리어 발목을 잡았습니다. '1세대 하이드로매틱 6단 자동변속기' 일명 '보령 미션' 특유의 부족한 만듦새로 원하는 타이밍에 변속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저속 주행 시 불쾌한 변속 충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오너들이 불편을 겪는 사례가 속출했습니다.

2.0, 2.5L 엔진을 얹은 토스카에서는 그 문제가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애매한 성능의 1.6L 엔진에 끼워 넣다 보니 궁합이 맞지 않았던 것이죠. 또 고장력 강판을 적용하면서 늘어난 몸무게는 고스란히 가속감과 연비에서 불리하게 작용했고, 상대적으로 가볍고 경쾌한 경쟁차들과 비교되며, '굼뜨다'는 이미지를 얻었어요.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는데요. 비교적 최근에 1.6L 모델을 직접 운전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문짝만 여닫아도 동급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묵직하고 든든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죠. 관리가 잘 된 차도 아니었지만 저속에서 바보스러운 미션을 제외하면 엔진이나 하체 컨디션이 참 좋았습니다. 같은 해 생산된 아반떼에서 느껴졌던 '헐거움'이 없어서 깜짝 놀랐어요.

오너들이 그토록 강조하던 '내구성'이 체감되더라고요. 보통 신차일 때는 웬만하면 다 좋은데 이제 '그 상태를 얼마만큼 오래 유지하느냐'가 내구성의 핵심이죠.

이 부분은 확실히 출고되고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 그 빛을 발하는 것 같아요. 빈약한 출력의 아쉬움은 이듬해 추가 된 '디젤 모델'이 속 시원히 풀어줬습니다.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2.0L 디젤 엔진'이 올라갔는데 너프된 엔진을 탑재했던 이전과 달리 중형 세단 토스카, 중형 SUV 윈스톰에 탑재된 엔진에 컴팩트한 라세티 프리미어에 그대로 넣었어요.

빈약한 출력으로 지적받던 가솔린 모델에 비해 월등히 높은 출력, 두 배가 넘는 토크가 수입차 못지 않은 탄탄한 기본기와 시너지를 일으켜 그야말로 차가 날아다녔습니다.

6단 수동변속기, 마찬가지로 보령산 6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렸지만 다행히 말썽을 일으키지는 않았어요. 우렁찬 엔진음과 하위 트림의 전용 알루미늄 휠을 제외하면 겉모습에서의 차이는 없었습니다.

라세티 프리미어 디젤, 줄여서 '라프디'는 운전의 재미와 경제성, 세단의 실용성까지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 탄탄한 매니아층을 결성했죠.

가성비 좋은 '입문용 펀카'로 소소한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다만 '흠잡을 곳 없는 최고의 차'라는 인터넷에서의 압도적인 찬사와 달리 실제 국내 판매량은 동급 중 가장 저조했기 때문에 '인터넷 슈퍼카'라는 칭호를 얻은 모델이기도 했죠.

중형차가 아른거리는 가격과 높은 배기량 때문에 구매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집 다음가는 값비싼 재산을 들이면서도 시승 한 번 하지 않은 채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우리나라 자동차 구매 문화도 분명 한몫 했을 거에요.

이후 가솔린 모델도 1.8L 엔진과 '랙타입 전자식 스티어링 시스템'을 적용한 '라세티 프리미어 ID' 모델이 새롭게 추가되며 보다 나은 주행 성능을 제공했는데요.

위와 비슷한 이유로 소수의 오너들만 만족하며 타는 차가 됐죠. 2010년 말 출시된 2011년형 모델부터는 뒷좌석 분리형 헤드레스트, 6:4 분할 폴딩 시트가 돌아왔고, 동급 유일하게 크루즈 컨트롤을 갖추면서 드디어 '닉값'을 하게 됐습니다.

혹평 받았던 1.6L 엔진의 출력을 끌어올리고 개선된 자동변속기를 탑재해 주력 모델의 상품성을 보강했는데요. 하지만 그사이 등장한 '차세대 아반떼' 만만했던 SM3마저 신형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던 탓에 판매량은 제자리 걸음이었죠.

본격적으로 생산된 2009년 국내 누적 판매량은 '4만 4천여 대' 잇달아 내놓은 경쟁사의 신형 모델에 밀려 꼴찌에 머물렀지만 해외에서 강한 GM대우답게 수출 시장에서는 여전히 잘 나갔죠.

내수도 직접 모델에 비하면 판매량이 500% 가까이 상승하는 등 부진하던 GM대우 전체 판매량을 견인하는 효자 차종으로 등극했습니다.

이후에는 다들 아시다시피 GM대우 브랜드가 역사 너머로 사라지고, 쉐보레로 새 단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비넥타이를 맨 모델로 변경됐죠.

멜론머스크의 이용허락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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