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인터뷰]'유럽 첫 시즌' 엄지성이 찾은 해답은 "내 탓이오"

엄지성과의 인터뷰

1월 12일이었다. 사우스햄턴 세인트메리 스타디움에 있었다. 사우스햄턴과 스완지시티의 FA컵 3라운드 경기를 취재갔다. 엄지성(스완지시티)을 보기 위해서였다. 엄지성은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스완지시티는 프리미어리그팀인 사우스햄턴을 넘지 못했다. 0대3으로 패배했다.

경기가 끝나고 믹스트존으로 향했다. 엄지성이 팀 버스에 타기 위해 믹스트존으로 나왔다.

"엄지성 선수!"

힘차게 불렀다.

엄지성은 깜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자신을 취재하러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듯 했다.

"전화가 아니라 사람과 직접 얼굴을 마주보고 한국어를 쓰는 것은 한달 반 만인 거 같아요."

마음이 짠했다. 그 때 다짐했다. 올 시즌 중 한 번은 스완지로 가서 엄지성을 인터뷰하겠노라고.

지난 4월 21일 QPR 원정 경기 후 팬과 기념촬영을 하는 엄지성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았다. 스완지는 상당히 멀다. 영국에서도 서쪽으로 끝까지 가야 한다. 런던에서 차를 가지고 가면 편도로 4시간 정도 걸린다. 중간중간 다른 경기들도 챙겨야 했다. 한 번 스완지를 다녀오기가 쉽지 않았다. 미루고 미루다 4월 29일 스완지에 가기로 했다. 엄지성과 약속을 잡았다. 스완지시티는 리그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인터뷰 이후 엄지성은 5월 3일 열린 올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리그 3호골을 집어넣으며 시즌을 잘 마무리했다. 3골-3도움.

엄지성의 집에서 그를 만났다.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저 멀리 파도 소리를 들으며 엄지성과 마주했다.

-한 시즌이 거의 끝나갑니다. 해외에서의 첫 시즌 어땠나요?

▶진짜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다 경험한 것 같아요. 일단 언어부터 시작해서 스완지 구단 사람들과의 문화적인 차이라든지 그런 것도 좀 많이 경험을 한 것 같고요.

문화적 차이가 제일 큰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선후배나 코칭 스태프나 감독님한테 다가가기 좀 무섭거나 좀 불편한 그런 상황도 있을 수도 있는데요. 여기서는 모두가 친구 같고 가족 같은 그런 분위기가 한국보다는 큰 것 같아요. 그 부분이 저한테는 긍정적으로 다가왔어요. 선후배 문화가 크지 않다 보니까 그냥 다 친구처럼 할 수 있는 게 가장 편하고 좋았던 것 같아요.



스완지는 중소도시다. 24만명이 산다. 경상북도 경주시나 경기도 오산시 정도의 크기다. 영국에서도 낙후된 웨일스, 그 중에서도 서쪽 끄트머리에 있다. 별로 할 것이 없는 동네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서의 1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축구 외적으로는 기성용 선배님 말씀대로였어요.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곳이라고 문자를 보내주셨거든요. 진짜 맞는 것 같아요. 바다랑 골프장 밖에 없더라고요. 그래도 여기 골프장은 좋아요. 너무 저렴하고요. 스완지 구단에서도 선수들이 칠 수 있게 하는 곳이 있거든요. 바다보고, 골프치고 하면서 버틴 것 같아요.

엄지성은 지난해 8월 스완지시티로 이적했다. 첫 경기부터 풀타임이었다.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후 출전 시간이 줄어들었다. 선발로는 나섰지만 풀타임을 뛰지 못했다. 이후 리그 8경기에서 562분, 경기당 70분을 소화했다. 초반 적응기가 쉽지 않았다.

-초반 이야기를 해보죠. 초반에 쉽지 않았어요. 어려움도 많았는데요.

▶피지컬적인 부분이 컸어요. 체력, 체격 등 피지컬이 한국 선수들보다 월등하니까요. 진짜 적응이 안되더라고요. 저도 나름대로는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한국에서 좋았다고 생각했어요. 그걸로 여기까지 넘어왔는데요. 여기서는 그런 모습들을 보여줄 수 있는 신체적인 조건이 안되더라고요.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초반에 그렇게 느끼다보니까 계속 헤맸던 것 같아요. 어떻게 풀어나가야 될지를 잘 몰랐고요. 초반에는 많이 헤맸어요.


-초반에 그래도 꾸준히 선발로는 나섰어요.

▶초반에 루크 윌리엄스 감독님 계셨을 때는 경기를 많이 뛰었지만 빨리 교체아웃되곤 했어요,. 많이 뛰어야 60분 70분 이렇게 뛰었었는데요. 그때는 또 제가 직접적으로 감독님한테 출전 시간 이런 거를 물어보진 못하잖아요.

솔직히 선수가 감독님한테 왜 이거밖에 안 뛰냐 이런 말을 못하잖아요. 그런데 이유라도 알고 싶은 거예요. 나중에 시간 지나서 지인 통해서 들었을 때 제가 한국에서 6개월 하고 시즌을 치르는 거기 때문에 부상 예방 차원에서 그랬다라고는 하더라고요. 그래도 선수 입장에서는 경기를 많이 출전하는 게 당연히 원하는 거기 때문에 조금 아쉬웠어요.

시즌 중에 감독님이 바뀌고 나서도(앨런 시한) 솔직하게 말해서 처음에는 제가 밀렸었어요. 제 자리에서 공격 포인트를 많이 올리는 선수(마일스 퍼트-해리스)가 있었어요. 그 때 코치님과 미팅을 가졌는데요. 공격 포인트를 쌓아야 경기를 뛸 수 있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더라고요.

2024년 10월 6일 A대표팀 경기를 위해 한국으로 가기에 앞서 만난 엄지성과 배준호

쉽지 않은 시간이 계속 됐다. 여기에 불운까지 찾아왔다. 부상이었다. 2024년 10월 엄지성은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9월 A매치에 이어 다시 한 번 홍명보 감독의 신임을 받았다. 그런데 뜻밖에 부상이 찾아왔다. 10월 A매치를 제대로 뛰지 못하고 대표팀에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팀에서도 뛰지 못했다. 어려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대표팀 갔을 때 좋았다가 다쳤잖아요. 위기였을 것 같아요.

▶제 기억으로는 그때 퍼포먼스가 또 올라오고 괜찮았었던 시기였어요. K리그에 있을 때도 그랬던 것 같아요. 몸이 좋거나 퍼포먼스가 좋았을 때 항상 부상이 왔어요. 그때 역시 똑같이 부상이 오더라고요. 퍼포먼스나 몸이 올라왔을 때 부상이요. 그러고 나서 이제 두 달 정도의 복귀 시간이 걸렸는데 그러고 나서도 확실히 경기력이나 몸이나 이런 게 올라오는데 너무 오래 걸리더라고요. 그 시기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경기도 선발로 출전하는 횟수도 적었고 시간 자체도 적었고 그렇다고 그 짧은 시간 안에서 제가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 시절이 시기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엄지성의 말대로 어려운 시기였다. 10월부터 11월말까지 엄지성은 재활에 전념했다. 11월 30일 팀에 복귀, 경기에 나섰다. 그러나 말한 대로 주전 경쟁은 쉽지 않았다. 여기에 공격 포인트가 나오지 않으면서 자신감도 떨어졌다. 이 시기 사우스햄턴에서 만났던 것이다. 그 때가 가장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지난번에 FA컵 사우스햄턴 원정 갔을 때 인터뷰했잖아요. 그 때 한달 반만에 한국말을 했다며 이야기한 것이 기억에 남아요.

▶출근해도 한국 사람은 아무도 없고요. 훈련하고 퇴근하면 집에는 또 아무도 없잖아요. 말을 하려면 전화밖에 없고요. 한국에 전화하려면 시차 때문에 쉽지 않았어요. 퇴근하면 한국에 잘 시간이어서요. 그때가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경기도 못 뛰거나 지거나 잘 못하면은 또 그거대로 힘들었고요. 또 다음 날 쉬는 날인데 편하게 쉬지도 못하고 참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 같아요.

왼쪽이 엄지성의 통역 김지명씨. 사진출처=엄지성 인스타그램

스완지시티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엄지성의 가능성을 보고 영입했다. 그를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구단 차원에서 통역을 채용했다. 당시 스완지시티의 '한국어 통역' 채용 공고는 영국 내 한인들에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꽤 많은 이들이 이 자리에 지원했다. 빡빡한 경쟁을 뚫고 엄지성과 동갑내기인 김지명씨가 구단 통역으로 채용됐다. 특히 김지명씨는 가족들이 모두 스완지에 살고 있었다. 김지명씨는 엄지성에게 통역이자,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주었다.

-통역인 (김)지명씨의 역할이 컸나봐요.

▶제가 잘할 수 있게 되고 좋은 자신감을 찾게 된 것은 지명이가 오고 나서부터예요. 구단 선수들하고 스태프들, 감독님하고도 더 소통이 원활하게 되니까 선수들이 먼저 다가오더라고요. 전에는 제가 영어를 잘 못하다 보니까 안 다가오고 이렇게 좀 어색한 사이였었는데요. 오고 나서는 선수들이 먼저 장난도 치고 다가오고 해서 더 좋게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소통이 더욱 좋아지고 난 후 선수들의 공통된 반응이 있을 것 같아요.

▶선수들이 그러더라고요. 제가 이렇게 많이 웃는 사람인 줄 몰랐다는 거예요. 저희가 이야기하면서 웃고 있다는 거예요. 그게 선수들이 제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예요.

생활이 안정되자 엄지성은 날아올랐다. 3월 8일 미들즈브러와의 홈경기에서 영국 무대 데뷔골을 쏘아올렸다. 상승세를 탔다. 시즌 끝까지 펼친 11경기에서 3골-1도움을 기록했다. 엄지성은 해답을 찾았다.

-어떤 해답이 나오던가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정말 시간이 약이었던 것 같아요. 계속 그냥 부딪히고 실패하고 경험하다 보니까 어느 시점에는 좋은 순간들이 오더라고요.

사실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누구 탓을 할 게 없더라고요. 왜냐하면 제가 운동장에서 뛰었고 제가 골이나 포인트를 못 올려서 경기를 못 뛴거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서 환경이나 누구를 탓하지 않고 저 자신을 탓했어요. 그러면서 멘탈도 자연스럽게 강해졌고요. 그러다 보니까 포기하지 않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또 저한테 기회가 생기더라고요. 경쟁했던 그 선수가 운이 좋지 않게 다쳤어요. 그대로 시즌 아웃이 됐고요. 제가 그 자리에 들어가서 또 기회를 받았아요. 다행히 잘 잡아가지고 좋은 상황이 왔던 것 같아요.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또한 피지컬적인 부분은 제가 향상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았던 것 같아요. 기술적으로든지 볼을 차는 거나 그런 공격적인 상황에서 크로스나 1대1 돌파 슈팅 이런 거를 원래 장점으로 가지고 있었는데요. 초반 제가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피지컬적인 부분들에 의해서 압도당하다 보니까 자신감이 진짜 많이 떨어졌었어요.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저 혼자 터득한 것 같아요. 경기장에서 안 되다 보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해봐야지 라고 생각했어요. 자연스럽게 시간 지나서 보니까 그런 좋은 장면들을 제가 계속해서 만들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당시에는 주변에서 누가 말을 해도 사실 위로도 안 되고 동기부여도 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냥 시간이 약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그 경험을 통해서 힘든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좋은 상황이 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어려운 시간들이 엄지성 선수를 조금 더 단단하게 해준 거 같아요.

▶저도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요. 원래 지명이랑 장난식으로 얘기하지만 처음에 왔을 때보다 지금 멘탈이 훨씬 좋아졌다고 얘기해주더라고요. 저도 느껴지고요.

다른 사람들이 한 말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이 사람이 저를 칭찬하든 욕하든 그거에 제가 휘말리지 않으려고요. 그냥 하던 대로 잘하면 잘 하는 대로 똑같이 일관성 있게 하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광주 FC 이정효 감독님께서 가장 강조하신 부분도 잘할 때나 못할 때나 똑같이 일관성 있게 하라고 하신 것이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해외 생활하면서요.

엄지성이 광주를 떠나기 전, 광주 팬들은 엄지성을 응원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출처=엄지성 인스타그

자연스럽게 광주FC 이야기로 넘어갔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우선 광주의 ACL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광주의 ACL이 아쉽게 됐어요. 8강전에서 알 힐랄에게 대패했어요.

▶감독님에게 승패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인터뷰에서는 우승해서 클럽하우스나 훈련장을 짓는 게 목표라고 말씀하셨는지만요.

저는 유럽 무대를 지금 경험해보고 있으니까 느끼는 게 있었어요. K리그에 있을 때는 이 정도의 수준인지는 솔직히 몰랐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영상으로만 봤지 직접 경험을 해보지 못했으니까요. 직접 와서 경험을 해보니까 프리미어리그가 얼마나 큰 무대고 진짜로 하늘의 별 따기인지 더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ACL에서 광주과 사우디 알 힐랄과 하는 것도 봤는데요. 경기 뛴 형들이 더 많이 느꼈을 것 같아요. 세계의 벽은 높구나라는 거를 크게 느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좋은 경험이 됐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K리그 팀들 중에 챔피언스리그 올라가서 그런 세계적인 선수들하고 할 수 있는 기회가 누구나 갖는 게 아니기 때문이니까요. 그 경험도 한번 가서 직접 들어보고 싶어요.


-광주에서 2024년 시즌 6개월을 뛰고 스완지로 와서 1년을 뛰었습니다. 1년 6개월. 너무 긴 시간이었어요. 힘들었을 것 같아요.

▶솔직히 몸은 안 힘든데 멘탈이, 정신적으로가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왜냐하면 몸은 휴식이나 이렇게 쉬는 날이 많다 보니까 잘 쉬면 되는데요. 경기를 잘 못하거나 경기에 나서지 못하거나 이럴 때 그때는 멘탈이 회복이 안 되더라고요. 또 경기를 못 뛰거나 이랬을 때는 돌아가서 또 훈련을 하고 경기를 해야 되는데 또 못 뛰겠구나라는 그 생각 때문에 초반에는 힘들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못 뛰는 데는 뭐 이유가 있겠지. 내가 뛰려면 골이나 어시스트를 해야 뛸 수 있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하다 보니까 운이 좋게 또 기회가 와서 잘 잡은 것 같아요.

-용병 생활입니다. K리그에 있을 때 용병생활을 하는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K리그 광주에 있을 때 외국인 선수들을 정말 리스펙 한다는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어떤 선수들은 가족이나 여자친구와 함께 넘어와서 생활하는 선수도 있지만요. 다른 선수들은 혼자 넘어와서 생활하는 선수들도 있잖아요. 그것을 제가 와서 직접 경험을 해보니까 진짜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당시에는 제가 경험을 해보지 못했으니까 그 정도일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진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대단한 것 같아요. 지금 한국에서 용병 선수들이 참 대단한 것 같아요.

광주 시절 엄지성. 사진출처=엄지성 인스타그램

-K리그에서 3시즌 반을 뛰었습니다. 그리고 챔피언십으로 왔어요. K리그도 충분히 경험했고, 챔피언십도 한 시즌을 뛰었어요. 차이점이 있다면요?

▶일단 한국 선수들이 더 조직적이고 좀 깔끔하게 축구를 더 잘 하는 것 같아요. 근데 와서 느꼈는데요. 한국 축구의 그런 장점을 여기서는 피지컬적인 부분으로 압도하잖아요. 그래서 한국 축구의 장점을 못 보여주게 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제가 직접 뛰어보니까요. 저도 한국에서 이런 좋은 장면들을 많이 만들었었는데 와서 그런 장면들을 못 만드니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또 다른 점이 있다면 템포가 훨씬 빠른 것 같아요. 공수 전환같은 거요. 한국에서는 공격을 하다가 수비 전환은 빨라요. 다만 수비를 하다가 공격할 때 힘드니까 템포 조절해서 공격하는 팀들이 있어요. 좀 쉬잖아요. 호흡하고요.

여기 와서 경기를 뛰는데 '아 이쯤 되면 이제 템포 조절하면서 저 호흡 좀 해야 지'하는데 공격을 또 나가야 돼요. 그러다가 호흡이 위에까지 올라와 있는데 또 수비를 해야 되고 또 수비하면서 호흡이 이만큼 올라와 있는데 또 공격을 나가야 되는, 왔다 갔다 고강도 스프린트 이런 게 엄청 많더라고요.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여기 와서 그리고 광주에서는 그런 축구를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까요. 광주에서는 공을 소유하고 점유하는 스타일의 축구를 하다가 갑자기 그런 고강도의 스프린트 영역으로 오니까 초반에는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드리기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체력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에요. 시간이 지나고 적응이 되다 보니까 이제 그 정도의 강도나 이런 거에는 지금 완전히 적응이 돼 있는 것 같아요.

사진출처=엄지성 인스타그램

엄지성은 3일 경기를 끝으로 시즌을 끝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6월 말까지 휴가를 받았다.

-이제 시즌이 끝나고 한국으로 갑니다. 뭘 가장 하고 싶나요?

▶사실 먹고 싶은 것은 크게 없어요. 여기서도 지명이 집에서 지명이네 어머니, 아버님이랑 맨날 저녁을 먹어요. 한국 음식이 생각 안 날 정도로 맛있게 배부르고 먹어서요. 음식에 대한 것은 없고요.

드라이브하면서 노래 듣고 맛집 찾아다니고 카페에 가고요. 영국 오기 전에 쉴 때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했던 것들을 여기 오니까 할 수 없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가서 하고 싶어요.


-집은 익산이잖아요. 그래도 광주에서도 오래 지냈는데요. 광주 가서 어떤 계획이 있나요?

▶따로 숙소를 얻어야겠지요. 아니면 광주 형들에게 재워달라고 해야겠어요.

-광주 숙소 가서 이정효 감독님께 재워달라고 해봐요.

▶내쫓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웃음)


인터뷰를 마치기 전 엄지성에게 목표를 물었다.

-다음 시즌은 승격을 위해 진검 승부를 벌여봐야 할 것 같은데요.

▶초반에는 진짜 확실히 유럽 무대는 빡세구나 힘들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항상 했었는데요. 게임 뛸 때도 제가 골을 넣을 것 같은 그런 자신감이나 기대가 저 자신한테 없었어요. 시즌 중간에서부터 이제 막바지로 가면서 이제는 기대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시즌이 거의 마무리가 됐는데 다행히 챔피언십 무대에 좀 적응을 한 것 같아서 내년 시즌에는 더 잘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있는 상황인 것 같아요. 프리시즌 때 잘 준비하고 부상 없이 하다 보면은 또 올해처럼 올해 마지막처럼 좀 좋은 순간이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 준비할 생각입니다.

-엄지성 선수의 목표는 뭘까요. 프리미어리그도 가야하고, 챔피언스리그도 뛰어보고 싶을 거 같고요.

▶저는 큰 목표보다는 지금 가까운 목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큰 목표를 정해놓고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 이제 노력을 하다 보면 가까이는 가겠지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작은 목표를 작진 않지만 가까운 목표를 설정하고 나서 좀 그런 성취감을 동기부여 삼아서 좀 움직이는 스타일이어서요. 지금 당장에서는 또 내년에 있을 리그 챔피언십 리그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인터뷰를 끝냈다. 이후 '오프 더 레코드'로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사실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경력만 쌓아도 부와 명예가 보장되는 코스로 갈 수 있었다. 광주에 있다가 더 큰 국내 구단으로 이적하고, 아시아권으로 이적하는 코스. 이를 따르면 부와 명예 그리고 편안한 삶이 주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엄지성은 그러지 않았다. 갑자기 이역만리 시골 동네에 왔다.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낯선 곳에서 홀로 고군분투했다. 어려운 시간을 견디고, 주변에 도움을 주는 이가 생기면서 스스로를 강인하게 단련시키게 됐다. 그리고 이제 날아오를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엄지성은 분명 날아오를 것이다. 조만간 백조의 동네 스완지에서 수려한 백조처럼 날아올라 유럽 무대라는 창공을 멋지게 날아다닐 것이다.

그의 비상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