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집이 많은데 내 집이 없는 이유

들어가며

책 《대한민국 돈의 역사》는 1945년 해방이후 부터 2023년 현재까지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사건으로 경제흐름을 설명해주고 있다.

플라자 합의, 3저 현상, 3고 현상, 부동산시장의 사이클, 증시의 붐과 폭락 등 단편적 기사로만 접했던 많은 일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는지 설명을 해주고 있어 한국 경제사의 개괄적인 흐름을 파악하기 좋은 책이다.

크게 한국 경제흐름, 주식흐름, 부동산흐름 3가지 파트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나에게 인상깊었던 목차 위주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자본주의 경제기반 마련 & 재벌 탄생

1945년 광복 이후 우리나라는 북한과 다른 길을 가며 80년이 지난 지금 하늘과 땅만큼의 경제적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같은 문화, 같은 민족임에도 이런 극단적인 차이는 재산권 보장에서 출발한다.

1949년 농지개혁(소유주가 직접 경작하지 않는 모든 토지 등을 재분배) 덕분에 소작농에서 자영농이 된 농촌 사람들이 늘고, 생산성이 향상되고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자, 내 새끼는 나처럼 살게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자녀 교육에 올인하였고 이는 경제 성장의 기반이 되었다.

1954년 적산매각(적산 : 조선총독부가 보유한 토지와 기업체)은 전쟁 직후라 매우 저렴하게 매각되었고 15년간 분할납부 및 은행의 특혜대출 활용 등으로 재벌이 탄생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압구정현대아파트

1964년부터 시작된 베트남 전쟁 참전은 한국 경제 성장의 기폭제 역할하면서 1966~1970년 연 11.1%, 1971~1975년 연 22.6% 폭발적인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60년대 초반 이후 일자리 중심으로 인구 유입이 폭발하면서 주택난이 발생하였고 신도시가 필요했다. (서울인구 1949년 143만명, 1960년 244만명, 1970년 552만명, 2020년 1,000만 명으로 인구의 50% 돌파)

한국 전쟁의 경험으로 한강 이남인 강남개발이 시작되었다. 강남개발의 기대로 신사동 일대 땅값이 평당 200원에서 1년 뒤 3,000원으로 15배 상승했다.

1966년 반포에서 삼성동에 이르는 800만 평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강북 시민을 이주시키기 위해 경기고와 숙명여고 등 명문학교를 강남으로 이전시켰다. 당시 강남 개발이 가능했던 또다른 '공유 수면(물에 잠겼다 가뭄에 뭍이 되는 주인없는 땅 )매립'덕분이었다.

60년대 후반 강남은 "남편없이 살아도 장화없이는 못 산다"할 정도로 홍수에 시달리던 지역이었다. 현대건설은 압구정 일대 제방 및 매립 공사를 진행하고 해당 지역은 곧바로 택지로 변경되어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세워졌다. 현재 우리나라 최고 부촌인 압구정과 반포가 공유수면 매립으로 만들어졌다.

압구정동은 개발 이전에는 주변이 대부분 과수원과 채소밭이었다. 아파트 단지로 지정됐던 압구정동도 한강변 모래밭으로 현대건설이 경부고속도로를 공사하면서 외국에서 수입한 장비를 보관하기 위해 공유수면을 매립하여 확보해 두었던 땅이었다. 하지만 제3한강교가 놓이면서 압구정 일대는 강남의 노른자위 땅으로 부상했다. 이곳에 시공사인 현대건설 이름이 붙은 대규모 민영아파트인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1,2차 단지가 입주했을 무렵에는 교통이 불편하고 기반시설이 부족한데다 홍보도 잘되지 않아 별로 인기가 없었다.그러나 현대건설이라는 브랜드와 강남 아파트 열기를 타고 고소득 중산층들과 상류층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7차 단지까지 입주가 끝난 압구정 현대는 이미 ‘명품’ 아파트로 명성을 떨쳤다. 1977년에는 현대그룹 계열 직원에게 공급하기 위해 건립한 아파트를 사회 고위층에게 특혜 분양하는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이 특혜분양 사건이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이다.

당시 강남을 비롯한 경부고속도로 주택 및 토지를 매입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재력가 등 일부에 국한되었다.


압구정현대아파트는 현대그룹 직원에게 공급하기 위해 지었지만 사회 고위층에게 특혜 분양한 사건으로 이슈가 되었고 처음부터 부자들이 모여사는 곳이었다. 권력형 비리와 경제발전, 차원을 달리하는 신도시 개발이 현재 강남의 시작이었다.

주식시장의 봄날

1972년 8.3사채 동결조치(연이율 40% 이상의 사채를 은행 대출금리 수준(16.2%)로 인하하고 3년간 갚지 않아도 되며 이후 5년에 걸쳐 분할 상환)로 수출 대기업은 기사회생의 기회를 얻었다.

1970년대 1차 석유위기(중동 산유국 감산)로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이 있었음에도 사채동결조치로 기업의 이자부담 감소로 공격적인 투자가 이루어졌고 1973년부터 시작된 중동건설 수주 덕분에 1973년 한국 경제는 14.9% 성장하였다.

1972년부터 1978년까지 정부의 상장 촉진정책에 편승해 부실기업들이 대거 상장했고, 대박을 꿈꾸는 투자자가 대거 유입되면서 주가가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수준의 버블이 형성되었다.

큰 손의 차익을 실현을 위한 주식 매도가 일어나며 거품이 순식같이 꺼졌다. 1977년 주식시장의 고점은 178포인트였으나 1980년에 100포인트로 빠졌고 건설업종 지수는 고점대비 1/4수준으로 떨어졌다.

정부의 증시 부양 정책과 우량 기업의 상장 그리고 저금리 환경이 만나 강력한 주가 상승이 발생하더라도 금리가 상승하며 통화 공급이 줄어들고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부실기업이 상장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부동산 폭등(1980년대 후반 부동산)

부동산이 10년 주기로 급등락을 보이는 이유는 부동산은 이동이 어렵고, 공급과 입주의 시차때문이다.

경기가 나빠지면 부동산 부양책으로 '분양가 통제 완화, 양도세 인하'를 꺼낸다. 1979년 2차 석유위기로 경기가 급격히 나빠지자 1980년~1981년 경기부양책을 제시했다.

1980년대 초중반 주택공급 부족& 1985년 3저 호황(저금리, 원약세, 저유가)으로 경기가 좋아지자 주택가격은 급등하였다.

특히 전세가 상승(1986년~1990년 전국 주택 매매가격 47%상승 전세가 82%상승)하며 매매가를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였다.(한국 주택시장의 특장 : 전세가격이 급등하면서 갭투자를 촉발해 매매가 상승)

당시 전세가 급등원인은 주택공급부족, 임대차기간 연장(1년에서 2년)으로 2020년과 판박이였다. 이때에도 집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 간의 격차가 벌어졌다.

"이렇게 집이 많은데 내가 살 곳이 없다."

저금리, 공급부족 그리고 강력한 매수열기로 주택 가격 급등하자, 대규모 주택공급을 추진하고 강력한 부동산 안정 대책을 꺼내들었다. 1989년 이후 3저 호황이 끝나고, 국민 주택 200만호 건설 과정에서 강력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였다. 심지어 시장 금리 상승까지 이어져 주택 가격급등이 멈추었다.

외환위기(1990년대)

1996년 반도체 산업이 무너지면서 한국 경제는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종금사(종합금융사: 외화조달부터 대출, 예금업무까지 금융업무 대부분 취급할 수 있는 일종의 금융백화점)를 통해 해외에서 빌린 돈의 60%는 만기 1년미만의 단기 외채였다.

미 연준은 정책금리를 3%에서 6%로 인상했고 이는 달러강세, 대출이자 부담을 높였다. (정책금리 인상->예금금리 인상->대출이자 인상) 당시 한국은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보유하고 있던 달러를 외환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러나 외환 보유고가 고갈되었고 금융위기를 맞이했다.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여 외환 부족 사태를 해결하였지만 한국 경제는 고금리와 재정긴축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IMF 당시 많은 사람들이 실직하고 집값은 급락했고 부도나는 기업이 연일보도 되면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많았다. 취업시장에서 사기업에 대한 선호도는 낮아지고 취업은 힘들었고 공무원의 선호도가 엄청 높았던 그 시절이 생생하다.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2008년 가을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연쇄적인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적인 불황은 내수시장이 작은 우리나라와 같은 수출공업국에서 치명적이다. 내수시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막대한 생산설비를 보유하고 있고, 수출 제품 대부분이 경기민감 제품 및 자동차 등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한국에 기회이기도 했다. 한국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연구 개발에 투자하였고,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 또한 급등했다.(환율 급등은 수출기업의 경쟁력 개선) 한국경제는 미국경제와 동조화 현상을 보이며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당시 미국발 금융위기로 자본주의 경제가 끝나는 줄 알았다. 2008년 반토막 난 펀드 계좌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급속도로 식어버린 시장은 사이클을 그리며 또 회복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 대안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무시무시한 인플레이션을 목격하였다. 2020년~2021년 버블은 전세를 끼고 주택을 구입하는 갭 투자가 주도했고 그야말로 주식 및 부동산 등 자산은 폭등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부동산 버블은 2022년 금리상승, 정부의 강력한 규제와 수출부진으로 무너졌다. 탄탄한 기반없이 모래위에 쌓은 성처럼 부풀어 오른 거품은 잘나가던 시장도 환경이 달라지면 언제든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인구감소에 따른 집값 하락을 전망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인구 감소시대에도 대도시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는 이유는 대도시 인구는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른바 '클러스터 효과'때문이다.

클러스터는 교육 시설과 일자리, 연구소 등이 모두 모여있는 혁신의 중심지를 뜻한다. 서울은 2022년 세계 4위의 클러스터이다. 주택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움직이므로 절대 인구가 줄어들더라도 주택공급이 부족하고 일자리가 풍부한 곳, 특히 거대 클러스터로 인구가 집중될 때는 언제든지 집값이 오를 수 있다.

집값이 오르는 지역을 알아보려면 일자리가 어느 지역에서 많이 생기는지 항상 관심 가져야 한다. 

결론

'왜 부자는 계속 부자가 되나?' 포트폴리오의 차이에 있다.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일수록 은행 예금같은 무위험 자산에 올인한 반면, 부유한 이들은 주식이나 부동산 그리고 비상장 기업에 대한 지분 등 위험 자산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따라서 무조건 위험을 피하기 보다 '적당히 위험을 감수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그 방법으로 두가지를 제시한다.


1. 사이클을 활용한 투자

부동산 투자자라면 양도세를 인하하고 분양가 규제를 완화할 때 주택 매입에 나서는 것이다. 관심 지역을 자주 다니고, 정책변화에 따라 구매력있는 인구의 유입이 나타날 지역을 살펴보고 지하철을 비롯한 인프라의 변화가능성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식투자자라면 KOSPI200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 펀드 구입

2. 자산배분 투자

한국 주식과 미국 국채에 분산 투자하는 방법이다.

사이클을 이용한 투자자는 투자실패의 공포와 싸워야 하고 자산배분투자는 지루함과 싸워야 한다. 결국 답은 투자 공부밖에 없다.

벤버냉키의 21세기 통화정책을 읽다 대한민국 돈의 역사 출간 소식을 듣고 이 책을 먼저 읽기 시작하였다. 역사는 반복되며 그 안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이 너무 많다. 경기가 좋으면 주택가격이 상승하고 지나치게 과열되면 양도세, 분양가 등의 정책으로 상승을 억제하고 너무 가라앉으면 다시 부양하고 이런 과정이 되풀이 되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 임대기간 연장정책을 시행할 때 전세가가 폭등하면서 매매가를 밀어올렸던 1980년대 말과 2020년은 닮았다. 

돈의 역사는 반복된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면서 적당히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가 필요하고 어떤 주장이나 트렌드에 현혹되지 않기 위한 투자공부는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