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현의 청춘만화

프로 입단 후 세 번째 수술을 했던 윤도현이 새로운 출발선에서 9월을 보내고 있다. /김여울 기자

사실 내가 쓰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게 아니었다.

처음 윤도현에게 인터뷰를 요청할 때, 머릿속에 있던 칼럼의 구성은 사뭇 달랐다.

유난했던 올 시즌 KIA 타이거즈의 부상. ‘부상’에 초점을 맞춰 부상으로 떠났다가 부상으로 다시 기회를 얻은 윤도현과 KIA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윤도현과 대화를 하면서 그의 다양한 표정의 얼굴을 보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깨달음처럼 밀려 들어왔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10대의 어린 선수에게 쏟아진 관심과 기대가 그저 신나고, 빛나는 것만은 아니었을 거라는 걸.

워낙 많은 이들을 만나고, 누구나 알만한 스타 선수들과 지내다 보니 가끔 간과하는 게 있다.

프로라는 무거운 수식어 때문에 잊고 있지만, 내가 그라운드에서 만나는 많은 이들이 이제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한 20대의 어린 청년이다.

<KIA 타이거즈 제공>

돌아온 윤도현은 첫 경기에서 ‘왜 윤도현인가’를 보여줬다.

2일 한화 류현진을 상대로 부상 복귀전을 치른 그는 첫 타석에서 우전 안타를 기록했다.

그리고 두 번째 타석에서는 아예 담장을 넘겼다.

아쉬웠던 수비는 논외로 두고 윤도현은 기다렸다는 듯 방망이를 휘둘렀다.

“감이 좋지는 않다”면서도 윤도현은 매 경기 안타를 기록하면서 결과를 만들어가고 있다.

윤도현은 “다행히 결과가 잘 나왔는데, 감이 좋지는 않다. 하루하루 어떻게든 결과 내자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며 “타격 밸런스가 안 돌아왔다. 연습 때 타이밍도 살짝 안 맞고, 드라이브 걸린 타구도 많이 나온다. 연습때는 거의 안 나와야 한다. 아직 감이 안 올라왔다. 하지만 연습과 시합은 다르다. 연습 때 안맞아도, 시합 때 할 수 있다. 감이 안 좋을 때 1~2개씩 치는 게 좋은 타자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결과는 내는 부분은 괜찮은 것 같다. 1군은 무조건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일단은 계획대로 생각대로 시즌이 끝나기 전에 1군에 돌아올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윤도현은 스스로에게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잊고 싶었던 부상 악몽이었다. 윤도현은 당시 부상을 당한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주자가 1루에 나가면 더블플레이 때문에 교체된다고 했었다. 1·3루가 돼서 바뀌었는데 덕아웃에 들어와서 보니까 손가락이 안 움직였다. 설마 이 정도에 부러지겠냐는 생각을 했다. 타박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병원에서 부러졌다고 했다”며 “공교롭게도 그날 내가 도핑을 해야했다. 부상 소식을 듣고 도핑 테스트를 하고 집에 가는 데 서러웠다”고 우울했던 부상날을 떠올렸다.

이어 “올해 안에 복귀할 거라는 장담을 하지 못했다. 병원에서 시즌 아웃 가능성도 이야기했다. 신경 끝부분이라 예민하다고 했다. 그런데 학교 후배 중에 삼성 류승민이 있는데 비슷하게 엄지손가락을 다쳐 수술을 했다. 6주 만에 복귀했다고 그래서 시즌 안에 돌아간다고 마음먹고 있었다”고 말했다.

마음은 먹었지만 냉정한 상황을 생각하면 복귀 스케줄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목표 같기도 했다.

뼈가 붙는데 1달, 재활에 1달 그리고 다시 기술 훈련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당장 감이 올라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하지만 타고난 타격 덕분에 윤도현의 복귀 시계가 빠르게 돌아갔다.

윤도현은 “기술 훈련할 때 티배팅, 배팅, 캐치볼하면서 속도가 좀 빨라졌다. 기술 단계에서 3주 정도 이야기를 했는데 1~2주로 당겼다. 몸상태가 잘 올라왔다. 욕심으로 8월 마지막에 경기에 복귀해서 확대 엔트리로 1군에 간다고 마음 먹었는데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다시 또 먼 길을 돌아서 1군으로 온 윤도현은 기다림의 시간 동안 또 다른 배움의 시간을 보냈다.

윤도현은 “몸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파악한 것 같다. 생각하지도 못한 부상인데 내가 못 해서 나온 부상이다. (수비를) 잘하는 사람은 그런 상황도 발생 안 했을 것 같다. 또 하나 배웠다. 그런데 이제 그만 배워도 될 것 같다”고 웃었다.

이어 그는 “이제는 마음이 편해졌다. 어릴 때부터 계획을 세우고 ‘몇년 차 안에 어떤 모습을 보이겠다’, ‘자리 잡겠다’, ‘몇 개의 홈런을 치겠다’이런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그냥 실패한 것이다. 실패했으니까 마음 편히 순리대로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 1경기 1경기 편한 마음으로 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KIA 타이거즈 제공>

윤도현은 자신에게 엄격한 선수다. 옆에서 걱정할 정도 쉴 틈 없이 운동을 하고, 운동만 했다.

윤도현에게는 그게 당연한 일상이었다.

성공이라는 머릿속에 그려놓은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재능은 있지만 경험은 부족한 선수에게 노력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자신을 몰아붙였던 윤도현은 결국 실패를 인정했다. 계획했던 길을 원하는 시간에 걷지 못했지만 그 노력까지 실패했다는 것은 아니다.

성공이라는 것은 원하는 모습으로만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어떤 게 성공이라고 꼭집어 기준을 말할 수도 없다.

실패를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하게 윤도현은 더 넓은 시야로 또 다른 길을 보고 걸어갈 수 있게 됐다.

윤도현은 “(스스로에게 가하는) 채찍을 줄이고 훈련량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줄였다. 그게 확실히 시합을 하는데 좋은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웨이트도 많이 하고 열심히 했는데 그게 내 컨디션인 줄 알았다. 그런데 피곤한 것이었다”며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몸상태를 우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하게 윤도현 스타일을 버린 것은 아니다. 그동안의 과정을 봤을 때 타협할 수 없는 자신만의 것은 있다.

윤도현은 “많은 분이 좋게 평가해 주시니까 그에 맞는 결과를 내는 게 당연하다. 그런 압박감이 있어야 성장한다고 느낀다. ‘한 타석 못치면 어때’라고 생각하기 보다 못 치면 나를 몰아 붙여야 결과가 나는 스타일인 것 같다. 선배님들이 그렇게 하면 144경기 다 못한다고 혼자 힘들다고 이야기하셨는데 힘들더라도 결과를 내야 할 것 같다. 경험도 쌓으면서 배우겠다”고 말했다.

시원하게 돌아가는 방망이에 비해 아직은 수비와 주루에서 세밀함이 떨어진다.

주목받았던 이름의 무게에 비해 윤도현의 경험은 적다.

신인 첫 캠프에서부터 ‘리틀 김하성’으로 윤도현의 이름이 화제가 됐다. 캠프에서 보여주는 남다른 타격에 사람들은 윤도현의 이름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부상이라는 벽에 막혀 윤도현은 이름에 비해 성공의 경험도, 실패의 경험도 많이 쌓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이름의 무게가 지난 4년 윤도현의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윤도현은 “처음에는 부담도 있고 눈치도 많이 봤다. 기사를 통해서도 나를 많이 높여주시고, 팬분들도 높게 봐주셨다. 코치님, 감독님도 내 실력을 높게 평가해 주셨다. 내가 그 정도는 아닌데, 들통이 날까 봐 걱정이 됐다. 감독님께서 에러 해도 괜찮고, 삼진 먹어도 괜찮다고 하셔도 나는 걱정을 했다. 에러할까 봐 삼진 먹을까 봐 더 힘들게 했던 것 같다”며 “지금은 오자마자 기회를 주시고, 못하는 모습도 많이 보였는데 계속 기회 주시니까 걱정 없이 해야겠다는 생각이다”고 이야기했다.

어린 선수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빛났던 조명이었다. 그 뒤에 어둠을 미처 알지 못했다.

윤도현은 “기대만 많이 받았는데 보여준 것은 없다. 기대와 동시에 의문을 품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올해 남은 경기 결과를 내더라도 반짝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몇 경기 안 되니까 큰 의미를 안 두는데 내 자신한테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냉정하게 말하면 윤도현의 2025시즌은 실패했다. 다시 또 부상을 당했고, 풀타임을 뛰면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의 시간을 또 놓쳤다.

하지만 실패를 인정하면서 윤도현은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원점에서 두려움, 부담감을 덜고 다시 도전해 볼 수 있게 됐다.

다시 경험한 실패의 경험이, 기억하기 싫은 수술의 아픈 기억이 윤도현의 진짜 시작을 위한, 진짜 성공을 위한 복선이면 좋겠다.

<KIA 타이거즈 제공>

우린 멋진 나이지만
아직 어린아이라
빠르게 밀려오는 여정이
두렵게만 느껴질 때가 있다

지나면 아련한 만화
그래서 찬란한
우리가 기다린 미래도 우릴 기다릴까
분명한 건 지금보다 환하게
빛날 거야 아직 서막일 뿐야



이무진의 ‘청춘만화’.

김호령의 등장곡이지만 윤도현의 이야기 같기도 했다. 윤도현의 청춘만화, 지금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