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중증외상센터' 원작자 "'히어로' 백강혁 보다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등 전쟁이 한창인 곳을 누비며 환자들을 살린 외과 전문의가 유명무실한 중증외상팀에 부임한다. "싸가지가 없어"라는 병원장의 말처럼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천재 의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한다. 미세하게 파열돼 보이지 않는 혈관을 단숨에 찾아내고, 날아다니는 헬리콥터 안에서도 응급수술로 환자를 살려낸다. 지난달 24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증외상센터' 속 백강혁(주지훈)에 대한 이야기다.

'중증외상센터'(극본 최태강·연출 이도윤)가 천재적인 실력으로 마치 히어로처럼 사람들을 살리는 '신의 손' 백강혁의 활약에 힘입어 공개와 동시에 대한민국 시리즈 1위, 넷플릭스 비영어권 TV쇼 1위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유명무실한 중증외상팀을 보유한 대학병원에 부임한 백강혁은 어떤 상황에도 굴복하지 않는다. 골든타임을 사수하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백강혁은 시청자들에게 유쾌하고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 작품은 이비인후과 전문의인 한산이가 작가(본명 이낙준)가 쓴 웹소설 '중중외상센터: 골든아워'를 원작으로 한다. 웹소설은 웹툰으로도 만들어졌고, 드라마로 제작됐다. '한산이씨'의 성에서 따온 필명 한산이가로 활동하는 그는 생과 사를 오가는 극한의 공간인 중증외상센터 응급실을 무대로 절대적인 실력을 지닌 주인공을 통해 현실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10일 서면 인터뷰로 만난 작가는 작품의 집필 배경과 현 의료 시스템에 대한 견해 등을 밝혔다. 백강혁을 현실에 없는 인물처럼 그린 이유도 상세하게 설명했다.

● "백강혁, 현실에 있다면 존경스럽겠지만..."
앞서 한산이가 작가는 아주대학병원 권역외상센터를 이끈 이국종 교수(현 국군대전병원)의 활약에서 모티프를 얻어 웹소설을 집필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골든아워'(이국종 교수의 에세이) 뿐만 아니라 당시 제 주변에 있던 외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지인들에게 몇 가지 궁금했던 점을 묻고 그들의 이야기를 적기 시작했다"고 돌이켰다.
"상황은 너무나 어렵고, 시스템 개선은 요원해 보였거든요. 이를 소설 안에서 타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지 저 하나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공감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고요."

중증외상팀을 바로잡으려는 백강혁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다. 바로 한명의 환자라도 살려내겠다는 사명감이다. '중증외상센터' 공개 이후 백강혁의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이국종 교수가 떠오른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실제 이 교수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중증외상 분야를 세상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고, 전국 거점에 권역외상센터가 설립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원작과 드라마에는 석해균 선장과 북한군 병사 오창성씨 등을 수술해 살린 이국종 교수와 관련된 실화를 떠올리게 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지난 2011년 아라비아해 인근에서 소말리아 해적에 의해 피랍된 화물선을 구출하기 위해 우리 군이 펼친 '아덴만 여명작전'에서 부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이국종 교수가 살리면서 외상치료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집중된 바 있다. 드라마에서 백강혁은 남수단에서 반군의 공격으로 총상을 입은 군인 이현종 대위의 응급수술을 위해 현지로 날아가 가까스로 그를 살린다. 이국종 교수의 실화를 반영한 내용이다.

"우리 사회에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사회가 잘 굴러가게끔 하시는 분들이 너무나 많이 계세요. 자본주의 사회에 그런 사람이 어딨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계신다는 걸 알고 있어요. 다만 잘 모를 뿐이죠. 그걸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이 바로 인상 깊은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여론의 관심을 끌고 더 나아가 여론이 바뀌기도 합니다. 실제로 시스템이 개선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쓴 에피소드입니다."
'중증외상센터'는 실제 의료 시스템의 문제도 조명한다. '환자를 살릴수록 적자가 발생한다'는 대사는 현 중증외상센터의 현실이다. 정부 지원금을 둘러싼 병원과의 갈등 속 예산 부족과 인력난에서 초인으로 그려지는 백강혁 또한 현실의 벽에 부딪히기도 한다. 한산이가 작가는 백강혁을 판타지적인 인물로 그린 이유에 대해 "결국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가 자기 자신을 희생해야만 굴러가는 시스템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서 "백강혁 같은 사람이 현실에 있다면 너무나 존경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의 삶을 보고도 (같은 길을)도전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에 결국 후대가 끊길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최근 정부 지원으로 중증외상 전문의를 육성해온 고려대구로병원 중증외상 전문의 수련센터가 지원 중단으로 문을 닫을 위기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시가 나서면서 운영 중단은 막았지만, 수련을 원하는 의사가 거의 없다는 고민은 현재 진행형이다.
한산이가 작가는 본인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닥터 프렌즈'에서 2023년 기준 351명이 외상외과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실제 외상외과 의사는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공개한 바 있다. 그는 "결국에는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며 "결국 이것을 개선하는 데에는 돈과 인력이 든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의사·작가·유튜버..."내 원동력은 불안"
한산이가 작가는 원작자로서 드라마의 뜨거운 인기에 감사한 마음을 거듭 밝혔다. 그는 "작품이 사랑받을 것이라고 '망상'을 하긴 했지만, 실제로 이렇게까지 인기가 있을 거란 기대는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원작이 나름대로 인기가 있었지만 웹소설계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은 아니었다. 감독님과 스태프 그리고 배우들이 말 그대로 원작을 초월하는 작품을 만들어 줬다"며 공을 돌렸다.
출연 배우들에게도 남다른 애정을 전했다. 실력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겸비한, 현실에 있지 않을 것 같은 백강혁을 소화한 주지훈에 대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지만 인간관계는 서툰 백강혁을 너무나 잘 살려줬다"고 치켜세웠다. 항문외과 펠로우로 백강혁에게 간택돼 '항문' '노예 1호'로 불린 양재원을 연기한 추영우는 "어리버리하지만 결국, 백강혁 밑에서 하나의 칼잡이로 자라나는 모습을 잘 보여줬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영은 백강혁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유일한 내부 인물로서의 역할을, 윤경호는 사랑스러운 '유림핑' '쁘띠유림'의 모습을 너무나 잘 보여줬어요. 정재광 또한 천재 마취과 의사의 모습을 제가 생각했던 모습보다 더 잘 나타냈죠. 모두 감사드릴뿐입니다."
그는 이비인후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의사지만 현재는 작가로서의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각종 의학 정보 등을 제공하는 '닥터프렌즈'를 운영하는 인기 유튜버이기도 하다. 닥터프렌즈는 11일 기준 구독자 130만명을 보유하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뭔가 하나를 똑 부러지게 하는 게 없다"고 털어놨다.

"'내가 이것만 해도 되나'라는 불안감이 있어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있어요. 이를테면 검 하나보다는 쌍검, 삼검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죠. 결국 제 추진력은 불안인 것 같습니다. 불안을 원동력 삼아 지금까지 오지 않았나 싶어요."
어렸을 때부터 무협과 판타지 장르를 좋아했다는 한산이가 작가는 "아이디만 만들면 바로 글을 써서 올릴 수 있지 않나. 그렇게 도전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다"면서 "지금은 제가 잘 아는 의학이라는 소재를 무협과 판타지와 엮고 있지만, 언젠가는 진짜 무협, 판타지에 도전할 생각"이라며 작가로서의 각오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