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표 침해’ 알면서 또 침해, 첫 ‘징벌적 손배’ 인정…판결문 보니

배지현 2024. 10.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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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KBS는 영유아 과자를 만드는 중소기업 아이밀이 몇 년째 사용하던 상품 이름을 같은 업계 굴지의 기업, 일동후디스에 빼앗기다시피 했다는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관련 기사] 상표 침해 인정됐지만…끝없는 소송전에 피해 업체 고사 (KBS 뉴스9, 2023.12.11)

당시 아이밀은 민사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일동후디스의 상표 침해를 인정받았고, 일동후디스 측이 이에 불복했었는데요.

지난달 말, 항소심에서도 아이밀이 재차 승소하며 일동후디스의 상표 침해가 인정됐습니다.

특히 이번 판결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한 상표 침해 소송으로는 최초로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데요.

1심에서 책정됐던 손해배상액 5억 원보다 높은 금액인 손해배상액 7억 원이 항소심에서 인정됐습니다.

KBS가 아이밀과 일동후디스 간 항소심 판결문을 단독 입수해 자세한 내막을 뜯어봤습니다.

■ "1심서 침해 인정됐는데"…긴 소송전에 피해업체 고사 위기도

일동후디스 측의 상표권 침해는 지난 2018년부터 시작됐습니다.

아이밀이 2012년 '아이밀' 상표를 출원한 뒤 영유아 과자를 판매해 오고 있었는데, 6년 뒤 일동후디스가 기존 '아기밀'에서 식약처 고시로 인해 상표명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밀'이라는 상품 이름을 똑같이 쓴 겁니다.

6년간 직원들과 함께 개발하고 판매해 온 상품이 하루아침에 '대기업 짝퉁' 취급을 받으면서 매출은 급감했습니다.

결국 아이밀은 3년간의 특허법원 소송을 통해 2021년 6월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되면서 일동후디스의 상표 침해를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지난해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5억 원의 손해배상 금액도 인정됐습니다.

하지만 일동후디스 측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지난해 말까지도 SNS나 온라인상에서는 여전히 침해 상표를 소비자들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항소심과 더불어 지난한 법정 다툼은 계속됐고, 그사이 피해 업체는 고사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6일, 특허법원(제25부)의 항소심 판단이 나온 겁니다.

■ 항소심도 아이밀 승…'징벌적 손해배상' 인정돼

KBS가 입수한 항소심 판결문에서는 위와 같은 사정이 반영돼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인정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가 피고와 동종의 영업을 하고 있다고 볼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상표권 침해에 의해 영업상의 손해를 입었음이 사실상 추정된다'며 상표권 침해를 인정하고, 손해배상의 책임이 발생하는 점도 인정했습니다.

특히 '침해인 줄 알면서도 상표 침해를 한 기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2배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니까 일동후디스가 등록한 '아이밀' 상표가 무효로 확정된 2021년 6월 12일을 기점으로, 이후에 발생한 침해에 대해선 "고의적인 침해"로 보고 2배로 그 손해를 인정한 겁니다.

총 7억 원 손해배상액 = [5억 원] + [1억 원 × 2(징벌적 손해배상)]

*2021.6.12 / 일동후디스 등록상표 '아이밀' 무효 판결 대법원 확정
5억 원 = 상표 침해 시작(2018.1)~무효 확정일(2021.6.12) 전까지의 손해액 인정
1억 원 =무효 확정일(2021.6.12)~추가 침해일(2023.12.31)까지의 손해액 인정

또 재판부는 "피고(일동후디스)는 매년 1,000억 이상의 매출을 거두는 식품업계에 잘 알려진 선도기업"이라면서 "식품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축적된 자본력을 바탕으로 온라인 검색어 '아이밀'을 손쉽게 장악해 원고(아이밀)의 사업 기회를 봉쇄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상표 무효 확정일 이후에도 침해 상표의 SNS상 광고를 삭제하지 않은 점 등을 언급하며 "피고의 피해 구제 노력이 충분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도 덧붙였습니다.

■ 국감 출석 앞두고 극적 합의…판결 의미는?

이 지난한 갈등과 관련해 국회에서도 일동후디스(주) 이준수 대표와 아이밀 김해용 대표가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습니다.

당초 오늘(8일) 증인 출석이 예정돼 있었지만, 출석을 하루 앞둔 어제(7일) 양측은 소송 분쟁을 마무리하는 이행합의서를 체결했습니다.

정진욱 의원실에 따르면 합의서에는 ▲일동후디스의 사과 ▲손해배상금 7억 9600여만원 즉시 지급 ▲추가배상금 2억 원 즉시 지급 ▲상고 포기 등의 내용이 담긴 거로 알려졌습니다.

합의를 통해 7년여 간의 법적 분쟁은 마무리가 됐지만, 이번 특허법원의 2심 판결은 짚어볼 만합니다.

지난 2020년 상표 침해와 관련해 신설된 징벌적 손해배상의 근거 규정에 따르면,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액을 정할 수 있습니다.

[상표법 제110조(손해액의 추정 등) / 제7항]
법원은 고의로 상표권자 또는 전용 사용권자의 등록상표와 동일·유사한 상표를 그 지정 상품과 동일·유사한 상품에 사용하여 상표권 또는 전용사용권을 침해한 자에 대하여 제109조에도 불구하고 제1항부터 제6항까지의 규정에 따라 손해로 인정된 금액의 3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배상액을 정할 수 있다.

그런데 통상 1억~2억 원 정도로 손해액이 책정됐던 기존 상표권 침해 판례들에 비해 다소 큰 액수의 손해액이 인정됐고, 그와 더불어 징벌적 손해배상의 적용도 2배까지 넓게 인정됐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례를 세웠다는 겁니다.

이번 판결은 작은 기업이라 할지라도 그 상표권에 대한 재산적 가치가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줬습니다.

특히 악의적인 침해에 대해선 법원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폭넓게 인정해 피해 중소기업의 실질적인 피해 복구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피해 중소기업들에도 힘이 되어줄 수 있는 판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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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현 기자 (vetera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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