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터 창간 19주년 특별기획
국내 제약바이오사들의 글로벌 신약 개발 경쟁력을 분석합니다.

"단편적인 개선이 아닌 퍼스트 무버로서 바이오 생태계를 고려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3일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상근부회장은 <블로터>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바이오 산업 정책의 현주소를 직접적으로 진단한 말이다. 1982년 한국유전공학연구조합으로 출발한 한국바이오협회는 오늘날 우리나라 바이오 산업을 대표하는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이 부회장은 과거 한 바이오텍을 이끌었던 기업인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넓은 시각에서 업계 전반의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한국바이오협회 상근부회장직을 맡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호황기를 맞았던 바이오 산업은 엔데믹 선언 이후 '비상상황'에 돌입해 있다. 치료제·백신 수요가 급감하면서 매출 성장세가 꺾였고, 글로벌 자본시장의 긴축 기조 속에 투자가 위축되자 신약개발 기업들의 자금조달 환경도 급속히 경색됐다. '돈맥경화'가 임상 지연이나 연구개발 실패 우려로 이어지면서 업계 전반의 위기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업들은 생존해법으로 해외무대 진출을 모색하고 있으며, 글로벌 파트너십 확보와 투자 연계가 새로운 돌파구로 부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승규 부회장은 업계를 대표 단체의 대외 커뮤니케이션 중심축으로서 기업들의 고충과 발전방향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규제 혁신+장기적 투자 환경 조성 필요

먼저 현재 업계의 가장 큰 문제로 '규제'와 '자금조달 구조'를 언급했다. 이 부회장은 "글로벌 스탠다드와 맞지 않는 제도는 기업들이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긴 개발 기간에 비해 투자 환경이 제한적인 점도 큰 제약"이라며 "결국 규제와 금융 시스템이 글로벌 수준에 맞게 개선돼야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보면, 훌륭한 기술을 갖고도 이 장벽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는 기업들이 많다"며 "그 장면을 떠올리면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가 얼마나 무거운지 절실히 느끼게 된다"고 부연했다.
정부의 '바이오 홀대'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바이오는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안보, 경제, 보건을 동시에 아우르는 국가 전략 산업"이라며 "그럼에도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사실은 업계에 큰 실망을 준다"고 지적했다. 또 "이는 단순히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미래 성장동력을 놓칠 수 있다는 의미이기에 정부가 다시 바이오를 국가 전략의 핵심 축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바이오 산업이 국가 전략 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정책 측면에서 '퍼스트 무버로서 생태계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단편적인 개선이 아니라 규제 혁신과 장기적 투자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면서 "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개선하고 단기성과에 치우치기보다는 긴 개발 기간을 감당할 수 있는 정책금융과 세제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이 목소리를 현장에서 들을 때마다 정책이 기업의 발걸음을 가볍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절실히 느낀다"며 "이 두 가지가 뒷받침돼야 바이오가 진정한 국가 전략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목소리가 업계 전반에 자리 잡은 원인으로는 정부의 상반된 태도가 지목된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국정기획위원회가 바이오 산업 관련 활동에서 미흡한 모습을 보여왔다는 점에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국정위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대신해 국정과제를 수립하고 실행계획을 짜는 역할을 맡아왔다. 하지만 활동기간 60일 동안 국정위가 바이오를 언급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인공지능(AI), 방위, 에너지 등 다른 주요 산업들과 대비를 이룬다. 이재명 정부는 'ABCDEF' 6대 전략 산업 중 하나로 바이오(B)를 지정했다.
현장 수요 기반 글로벌 매칭 강화

정체기를 뚫기 위해 기업들이 나라밖으로 눈을 돌린 가운데, 한국바이오협회는 글로벌 진출 지원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부회장은 "협회가 기여한 가장 큰 부분으로는 단순 톱다운식 프로그램이 아닌 국내외 업계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전개하며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 바이오 기업의 존재감을 키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들이 해외 네트워크를 이어가고 협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꾸준히 마련했다"며 "얼리스테이지부터 기업들을 지원하며 지금까지의 협회의 경험을 기반으로 K바이오의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국바이오협회는 22년간 글로벌 최대 바이오 행사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바이오USA)에서 한국관을 운영하며 기업들의 홍보·전시뿐 아니라 기업설명(IR) 피칭 기회를 마련하고, 파트너링·네트워킹 지원에 힘써왔다. 또 '코리아 바이오텍 파트너십'(KBTP)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 기업의 글로벌 전시 참여, 파트너링, 전 세계 바이오 산업 관계자 간 교류 기회 등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매년 1월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JPM)' 기간에 맞춰 한국 바이오 기업들의 글로벌 IR 피칭 행사와 더불어 '코리아 나이트' 네트워킹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한국바이오협회는 이 행사에서 매년 참석인원이 증가하고 있으며 해외 참석자 비율 또한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판단한다. 또 이 자리를 통해 국내 기업이 해외 벤처 캐피털(VC) 및 빅파마와 직접 연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글로벌 진출 기회의 모색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6회째를 맞이한 '바이오플러스-인터펙스 코리아'(BIX)를 통해서다. 그는 "BIX는 국내에서 해외 네트워크를 직접 연결해주는 장으로, 글로벌 진출을 준비하는 기업들에 의미 있는 성과를 주고 있다"며 "참가자는 작년 기준 1만명을 넘어서는 등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글로벌 기업들의 전시 참여와 후원사들 또한 증가하고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BIX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바이오 컨벤션을 넘어 전 세계로 확장해갈 것"이라고 포부를 드러냈다.
해외 진출 넘어 '아시아 바이오 허브' 도약

한국바이오협회의 시선은 '글로벌 진출' 그 너머로 향해 있다. 앞으로는 바이오 기업들의 글로벌 진출 지원을 넘어 우리나라가 아시아 바이오 허브로 도약하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이 부회장은 "앞으로는 글로벌 파트너들이 한국을 찾도록 만드는 전략에 집중하려 한다"며 "단순히 기업을 해외로 보내는 것을 넘어 한국을 아시아 바이오 허브로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구체적으로는 '만남의 장'을 우리나라로 가져오겠다는 의지를 표출했다. 그는 "이를 위해 미주·유럽 시장 중심의 행사들을 아시아로 가져오려 한다"며 "그 첫 시작으로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이스트웨스트 바이오파마 써밋'(EW 써밋)을 내년 3월 우리나라에서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이러한 국제행사의 개최를 통해 글로벌 VC들을 초청하고 해외 국가기관·기업들과 직접 교류함으로써 투자시장 성장의 중심이 되고자 한다"며 "기업이 해외로 나가기 전부터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가 그리는 그림"이라고 부연했다.
이 부회장은 향후 10년간 K바이오 글로벌 진출의 핵심이 될 세 가지 키워드로 '신뢰, 연결, 지속성'을 꼽았다. 그는 "기술력뿐 아니라 데이터, 규제준수, 윤리까지 국제사회에서 신뢰받아야 한다"며 "국가, 기업, 투자자 간 협력으로 시너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봤다. 이어 "단발적·일시적 성과에 머물지 않고 꾸준히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이어가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 세 가지가 함께할 때 K바이오는 더 큰 도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퍼스트 무버'로의 도약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인터뷰를 끝맺었다. 이 부회장은 "바이오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산업이자 국가 미래를 지탱할 중요한 성장동력"이라며 "K바이오는 팔로워로서 성과를 많이 내왔지만 이제는 퍼스트 무버로 나아가도록 많은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한국바이오협회도 업계와 정부·사회를 잇는 가교로서 더 많은 기업이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앞으로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K바이오의 성장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라고 다짐했다.
이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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