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회 총무로 10년 3000만원 지켰는데.." 새 회장이 꺼낸 말에 결단했다

남의 돈을 맡아 관리하는 일은 아무리 잘해도 칭찬받기 어렵습니다. 한 푼만 어긋나도 의심을 받고, 오래 맡을수록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묵묵히 지켜 온 사람이 한순간에 도둑으로 몰리면 그 억울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대전 서구에 사는 이영숙 씨는 올해 예순일곱입니다. 30년 동안 초등학교 행정실에서 회계를 맡아 일하다 명예퇴직했습니다. 퇴직하던 해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했고, 그 이듬해부터 아파트 부녀회 총무를 맡았습니다.

부녀회 통장에는 해마다 여는 바자회 수익과 재활용품을 팔아 모은 돈이 들어왔습니다. 그 돈으로 봄에는 경로잔치를 열고, 겨울에는 김장 김치를 담가 혼자 사는 어르신들께 나누었습니다. 해마다 졸업하는 단지 안 아이들에게 작은 장학금도 건넸습니다.

영숙 씨는 학교에서 일하던 습관대로 장부를 꼼꼼히 썼습니다. 단돈 천 원을 써도 영수증을 받아 날짜순으로 붙였고, 한 달에 한 번은 들어오고 나간 돈을 정리해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붙였습니다. 그렇게 쌓인 장부가 10년 동안 열 권이 되었습니다.

처음 맡았을 때 100만 원도 안 되던 부녀회 통장은 10년 사이 3,000만 원이 넘게 불어났습니다. 바자회 날이면 새벽부터 부침개를 부치고, 재활용품 수거 날이면 허리를 숙여 상자를 묶은 덕분이었습니다. 영숙 씨는 그 돈을 단지 사람들의 돈이라고 생각하며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년 전, 단지에 새로 이사 온 최 씨가 부녀회장이 되었습니다. 쉰 중반의 최 회장은 말솜씨가 좋고 사람을 잘 모았습니다. 처음에는 영숙 씨도 젊은 회장이 와서 부녀회에 활기가 돈다며 반가워했습니다.

그런데 최 회장은 부녀회 체크카드를 자기가 들고 다니겠다고 했습니다. "행사 준비할 때마다 총무님께 카드를 받으러 가기가 번거로워서요." 영숙 씨는 내키지 않았지만 회장의 말이라 카드를 건넸습니다. 대신 영수증은 꼭 챙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뒤로 카드 내역에는 한정식집, 백화점, 꽃집에서 쓴 돈이 하나둘 찍혔습니다. 영숙 씨가 영수증을 달라고 하면 최 회장은 "나중에 한꺼번에 드릴게요" 하며 웃어넘겼습니다. 영숙 씨는 그때마다 장부에 날짜와 금액을 적고, 옆에 '회장 사용, 영수증 미제출'이라고 빨간 글씨로 써 두었습니다.

영수증을 달라는 문자도 날짜를 적어 가며 세 번이나 보냈습니다. 최 회장의 답장은 늘 "네네, 챙길게요" 한마디였습니다. 1년 동안 그렇게 영수증 없이 나간 돈이 280만 원이 넘었습니다.

올여름, 최 회장은 임원 회의에서 뜻밖의 안건을 꺼냈습니다. 부녀회 돈 1,000만 원으로 임원들이 일본 연수를 다녀오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동안 고생했잖아요. 다른 단지 부녀회는 다 이렇게 해요." 몇몇 임원들은 솔깃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영숙 씨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이 돈은 단지 사람들이 모아 준 돈이에요. 경로잔치하고 김장 나눔하고 아이들 장학금에 쓰기로 한 돈입니다. 쓰려면 입주민 총회에서 정해야 해요." 회의실 안이 순식간에 싸늘해졌습니다.

며칠 뒤 다시 열린 회의에서 최 회장이 입을 열었습니다. "총무님이 10년 동안 혼자 통장을 관리했는데, 장부가 맞는지 누가 확인해 봤어요? 요즘 부녀회 횡령 사건도 많던데요." 영숙 씨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다른 임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았습니다.

그날 밤부터 단지 단톡방에는 이상한 말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부녀회 통장에서 수백만 원이 비었다더라', '총무가 10년이나 붙들고 안 내놓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놀이터 앞을 지날 때면 몇몇 이웃이 영숙 씨를 보고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습니다.

영숙 씨는 며칠 동안 밥이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그냥 총무 그만두고 신경 끄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영숙 씨는 이대로 물러나면 10년 동안의 땀이 도둑질로 남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숙 씨는 장롱 위에서 장부 열 권을 꺼내 식탁 위에 펼쳤습니다.

다음 날 영숙 씨는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입주자대표회의에 정식으로 감사를 요청했습니다. "제 장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봐 주세요. 그리고 그 결과를 입주민 총회에서 공개해 주세요." 관리소장은 영숙 씨가 내민 장부 열 권과 영수증철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관리소장은 영숙 씨에게 물었습니다. "총무님, 이렇게까지 하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이웃끼리 얼굴 붉히게 될 텐데요." 영숙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제 이름이 걸린 일입니다. 덮고 넘어가면 그 말이 평생 저를 따라다닐 거예요."

감사는 한 달 동안 이어졌습니다. 입주자대표회의 감사 두 사람이 10년 치 장부와 통장 거래 내역을 한 줄 한 줄 맞춰 보았습니다. 영숙 씨가 관리한 돈은 10년 동안 단 십 원도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감사들은 "학교 행정실 장부보다 더 정확하다"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맞지 않는 돈은 딱 한 곳에서 나왔습니다. 최 회장이 체크카드로 쓰고 영수증을 내지 않은 280만 원이었습니다. 장부 옆에 빨간 글씨로 적어 둔 날짜와 금액, 그리고 영수증을 달라고 보낸 문자 세 통이 그대로 증거가 되었습니다.

가을 입주민 총회 날, 감사 결과가 강당 화면에 띄워졌습니다. 최 회장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행사 준비하느라 쓴 돈"이라고 둘러댔지만, 한정식집과 백화점 사용 내역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강당 안의 시선이 모두 최 회장에게로 쏠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영숙 씨가 일어섰습니다. "저는 10년 동안 이 돈을 제 돈처럼 아끼지 않았습니다. 남의 돈이라서 제 돈보다 더 무겁게 지켰습니다. 오늘로 총무 자리를 내려놓겠습니다. 장부 열 권은 다음 총무님께 그대로 넘겨 드리겠습니다." 강당 안에 박수 소리가 길게 이어졌습니다.

최 회장은 그달 안에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쓴 돈 280만 원을 부녀회 통장에 돌려놓았습니다. 단톡방에 소문을 퍼뜨렸던 이웃 몇몇은 영숙 씨를 찾아와 고개를 숙였습니다. 영숙 씨는 "다 지난 일"이라며 그들의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총회에서는 부녀회 돈을 원래 정한 대로 쓰기로 다시 못 박았습니다. 김장철을 앞두고 혼자 사는 어르신 마흔 분께 드릴 김치를 담그기로 했고, 단지 아이 다섯 명에게 줄 장학금도 정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어르신들은 "총무 양반 덕분"이라며 영숙 씨의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총회가 끝난 다음 주, 영숙 씨는 함께 바자회를 준비하던 오랜 부녀회 식구들과 단지 앞 작은 식당에 갔습니다. 보글보글 끓는 순두부찌개 한 그릇에 공깃밥이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었습니다. 한 이웃이 숟가락을 들며 말했습니다. "형님 장부 아니었으면 우리 다 바보 될 뻔했어요." 영숙 씨는 웃으며 밥 한술을 떴습니다.

『장화홍련전』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세상을 떠난 자매의 원통함은 끝내 고을 사또 앞에서 밝혀집니다. 거짓은 한동안 사람들의 눈을 가릴 수 있어도, 진실은 결국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누군가를 의심하는 말은 쉽게 퍼지지만, 그 말을 이기는 것은 화가 아니라 차곡차곡 쌓아 둔 기록입니다. 남의 돈이나 공동의 일을 맡았다면 귀찮더라도 적고, 남기고, 확인받는 습관을 지켜 보세요. 그 기록이 언젠가 나를 지켜 주는 가장 든든한 증인이 됩니다.

올가을 영숙 씨는 남편과 함께 대청호 오백리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호숫가 산자락마다 단풍이 붉게 물들었고, 잔잔한 물 위로 오후 햇살이 은빛으로 반짝였습니다. 두 사람은 전망대 벤치에 나란히 앉아 해가 기울 때까지 호수를 바라보았습니다.

출처 : '장화홍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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