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요리사’를 더욱 재미있게 만드는 7가지 관전 포인트!

[박선화 한신대 교수]
'흑백 요리사'의 찬란한 대조미(美)
미슐랭 쓰리스타 셰프와 백종원의 등장
패기와 선망으로 도전하는 흑수저 셰프
250여가지 요리와 화려한 고급 주방기기
"진정한 대결은 계급장 떼고 붙는 것"
"모든 대비는 조화로움으로 귀결"의 지혜

요즘은 만나는 이들마다 '흑백 요리사' 이야기다. SNS나 배달음식 리뷰도 이 프로의 심사위원 말투와 밈들이 유행 중이고, 넷플릭스 비영어권 순위 1위로 등극하며 한국인들이 요리 프로그램조차 “오징어 게임”수준으로 만들었다는 글도 올라온다.

최종 한 명의 우승자가 큰 상금을 획득하는 서바이벌 게임이지만, 잘 만든 예능프로의 장점들을 고루 갖춘데다 기존에 없던 파격성을 보여주기 때문인 듯하다. 경연에서 선보이는 250여 가지 요리의 감각적 자태는 물론, 참가자들도 놀란 고급 주방기기와 전문재료가 갖추어진 세련된 스튜디오도 감탄을 자아낸다.

넷플릭스의 '흑백 요리사' 포스터

"흑백 요리사"가 보인 7가지 대조미

하지만 이런 예능적 요소들을 넘어 내가 주목하는 점은 '흑백 요리사'라는 이름에 걸맞는 다양한 대비·대조 효과다.

첫 번째는 백수저와 흑수저로 대비되는 계급성이다. “요리 계급전쟁”이라는 카피가 보여주듯 이 프로의 기본 컨셉이기도 하다. 흑수저팀은 보통 흙수저라고 부르는 서민 계급을 뜻하고, 백수저팀은 성공하여 사회적 명성까지 얻은 금수저 계급을 뜻한다. 프로는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며 별로 부딪힐 일도 없는 이들을 한자리에 모아 경연을 하게 만든다. 국제대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원로부터 미슐랭이나 백악관의 국빈만찬 셰프, 각종 대회 수상자 같은 요식업계의 달인들이 주로 SNS를 기반으로 유명세를 얻고있는 혈기왕성한 신예들과 한판 승부를 벌이게 만든 것이다.

이 흥미로운 대결에서 참가자와 시청자 모두의 감성을 고양시키는 것은 무대 세트다. 먼저 도착한 흑수저 80명이 옹기종기 모여 “와! 저기 요즘 잘 나가는 셰프 누구도 왔네”, “내가 저 정도는 이길 수 있지”라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을 때, 이들 모두를 압도하는 무대형식으로 백수저들이 등장한다. 마치 인간계를 굽어보는 올림푸스 신전의 신(神)들 같다. 이토록 장엄한 등장 앞에서 방금까지 다소의 긴장과 흥분감에 쌓여있던 흑수저들은 순간 위축감을 갖게 되지만, 동시에 선망과 투지를 불태우기도 한다.

백수저 20명과 맞붙을 20명을 선발하기 위해 흑수저 80명이 1차 경연을 벌이는 장소도 비슷하다. 혼신의 힘을 다해 요리에 집중하는 흑수저들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백수저들의 자리는 더 높은 곳이다. 생사가 걸린 검투사들의 혈투를 한가롭게 바라보는 귀족들의 모습 같고, "오징어 게임"이나 콜로세움 등 떠오르는 장면이 많다.

최근 다양한 경연 프로그램이 기존의 권위적인 심사방식보다는 따뜻하고 소탈한 선배들이 낮은 곳에서 함께 하는 형식을 보이는 모습과는 매우 다르다.

무대는 이렇게 계급의 사다리의 정점에 있는 이들과 그곳에 닿으려는 이들의 모습을 직관적인 방식으로 전달한다.

두 번째는 도전자와 응전자의 대비다. 오디션 전성시대의 대부분의 프로들이 '숨은 재능 발굴' 프로젝트로 무명인들 간의 경합에 가깝다. 예외적으로 “나는 가수다”가 가왕들의 진검 승부를 보여주었지만 이는 유명인들 간의 경합이었다. 하지만 흑백요리사는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계급구도에 연륜과 패기의 격돌이라는 레이어를 추가하며 신선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이로 인해 시청자들은 혈기 넘치는 청년들의 도전을 응원하는 마음이 드는 것과 동시에, 이겨도 본전이고 지면 수치스러울 상황의 선배나 스승들이 몸사리지 않고 합을 겨루는 모습에 또 다른 응원을 보내게 된다. 대한민국 최고의 중식(中食) 대가와 맞붙어 승기를 쥔 젊은 셰프가 보여주는 존경의 태도나, 그런 후배를 보며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고 격려하는 모습도 왠지 뭉클하다. 세대간의 갈등이 격화되는 시대에 흔히 보기 어려운 모습이라 그런가보다.

'장사 천재' 백종원과 미슐랭 쓰리스타 셰프 안성재(오른쪽).

무협지 보는 듯한 매력

세 번째는 유명인과 무명인이다. 흑수저들은 이름이 아닌 닉네임으로 참가하고 관문을 통과해야 백수저들처럼 자신의 이름을 걸 수 있다. 유명과 무명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만들면서도, 진정한 대결은 계급장 떼고 붙는 것임을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네 번째는 넓이와 깊이의 대비다. 최고의 셰프들이 참가한 경연을 심사하는 이가 어떤 인물일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공개된 이들은대한민국의 유일한 미슐랭 쓰리스타 셰프 안성재씨와 요식업계의 대부로 불리는 백종원씨다. 두 사람의 캐릭터도 극명하게 대비된다. '장사 천재'라 불리는 백종원씨는 음식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섭렵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반면 '셰프들의 셰프'라 불리는 안성재씨는 '파인다이닝'이라는 최고급 요리 분야에 평생을 몰두해 온 엘리트 셰프로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가진 인물이다. 제작진의 기획력에 감탄하는 한편,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심사에 임하는 두 사람의 모습도 재미 요소다.

다섯 번째. 고급성과 대중성의 대비도 흥미롭다. 같은 흑수저 도전자라 해도 고급요리 분야에 종사하는 셰프들과 대중음식 분야 셰프들의 분위기나 태도는 차이가 있다. '사관학교'라 할만한 엄격한 교육기관이나 레스토랑에서 정교하고 각잡힌 훈련을 받아온 이들은 명문대 모범생 같은 자부심이 느껴진다. 반면 요리 만화를 보며 조리법을 연구하고, 철가방 배달 노동자의 삶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온 이들은 조심스러운 듯해도 야성(野性)이 느껴진다.

각 문파의 고수·스승들과 삶의 이력이 다른 강호의 신예들이 겨루는 모습이 무협지를 보는 느낌인데, 이 프로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여섯 번째는 미니멈과 맥시멈의 대비다. 최고의 손맛으로 유명한 중년 백수저와 재능 넘치는 젊은 흑수저가 대결하며 선보인 한식은 지극히 대조적이다. 주어진 재료를 이용해 젊은 여성 셰프는 의욕만큼 화려한 요리를, 중견 여성 셰프는 단촐하고 소박한 요리를 만들었다. '곰탕 한그릇'이 승리했다. 젊은 셰프는 자신이 아직 덜어냄의 미학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얘기한다. 모든 영역의 고수는 덜어냄과 빼기의 달인이다.

마지막 대비는 리더십과 팔로우십이다. 단체전은 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목표를 정확히 하고 필요한 순간에 순발력을 발휘하는 리더도 있고, 팀원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귀를 기울이는 부드러운 리더도 있다. 반면 필요할 때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팀원들에 휘둘리거나 위기에 멘탈이 먼저 무너지는 이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다양한 성향의 리더 밑에서 현명하고 신중하게 대처하며 리더십을 보완하는 사람도 있고, 분란과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다. "흑백요리사"의 단체전도 개인의 역량이나 유명세와 상관없이 구성원들이 보여주는 리더십과 팔로우십으로 팬심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 모든 대비들이 결국은 조화로움으로 귀결되는 것도 프로에서 얻을 수 있는 미덕(美德)이다.

파인다이닝을 수련해 온 출전자 중 하나는 대중업소 중심의 활동을 해온 백종원 심사자가 자신의 요리를 이해못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그에게 더 많은 점수를 준 것은 백종원 씨였다. 반면 안성재 심사자는 고급 음식을 더 높이 평가할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급식요리사의 식판 앞에서 행복해하며 감정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넷플릭스의 '흑백 요리사' 포스터

"이 무대 세트는 철거되겠지만..."

보여지는 이미지와 달리 미슐랭 쓰리스타 심사자는 어렵게 삶을 개척해 온 사람이고, 소탈한 모습의 심사자는 유복한 환경과 탁월한 사업수완으로 세상의 거의 모든 음식을 경험한 사람이다. 어떤 요리를 내놓아도 이름과 재료를 알고 있는 모습에 백수저들조차 놀랄 정도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깨닫게 하고, 넓이든 깊이든 제대로 된 학습을 하는 이들은 결국 같은 곳에서 만난다는 것. 백수저든 흑수저든 고급성이든 대중성이든 최고가 된다는 것은 지독할만큼 반복된 훈련을 통해 몸으로 체득한 테크닉과 새로움에 도전하는 창의성 모두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인생에서 운(運)이란 늘 중요하고 맛의 영역에 정답도 없기에 경연에서 떨어질 수도 있지만, 이러한 내공을 보인 이들은 기억에 남아 새로운 기회를 얻을 확률이 높다. 독특한 개성으로 상당수의 미식 팬을 보유한 셰프는 “결국 이 세트는 철거될 것이며, 자신이 질 수도 있지만 1년쯤 인터넷을 안보면 된다”고 담담하게 얘기한다. 자신의 일과 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 무대는 허구일 뿐임을 자각한 이의 지혜다. 중요한 것은 함께 할 때 시장의 파이가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곤란할 수 있는 상황들을 감수하고 출연을 결심한 이들의 용단으로 침체한 요식업계에 도움이 된다면, 그들의 역할은 충분했다고 볼 수 있다. 8~10회가 요리 승부만이 아닌 사업기획과 고객소통 능력, 역할수행 능력까지 보여주는 이유이기도 할 것인데, 개인의 호불호를 떠나 베테랑들이 가진 강점을 다시 보게 된다. 여기에

냉정한 비즈니스업계의 현실, 그러나 어떤 실패는 새로운 도전일 수 있음도 함께 전달하는 촘촘한 기획력을 보여준다.

아직 결승전이 남아 있지만 1~10회차까지 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엄격한 심사자나 최고의 셰프들도 진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절로 행복한 미소를 보인다는 점이다. 백악관 국빈만찬 셰프가 접시를 핥아먹을 정도로 훌륭한 안성재 무림 맹주의 음식 맛이 궁금하고, 또 다른 미소를 선사할 신진 영걸은 누구일지도 궁금해진다. 복잡한 듯 하지만 삶은 단순한 것 같다. 누구에게나 힘든 삶에 잠시나마 휴식을 제공하는 최고의 선물은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이다.


필자인 박선화는 LG전자와 LG U+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고 커뮤니케이션하는 일을 했다. 업무를 통해 마케팅이 심리학임을 깨닫고, 이후 이와 관련된 공부를 하며 소통에 관한 책을 쓰고 강의도 하고 있다. 현재는 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에 재직중이다. 전공과 관심분야가 다양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