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이 '이런 사람'에게 요가를 추천하는 의외의 이유

조회수 2022. 9. 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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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 마지막 날까지 결코 하지 않을 운동이 단 하나 있다면,

그건 요가였다.

아무리 덜떨어져도 성실하게만 하면 중간은 갈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으로는 중간만큼만 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 뭐든지 중간만큼 하는 게 가장 어려운 법이다.

한동안은 하루도 빼먹지 않고 수련했다. 지금도 일 때문에 시간을 타협할 수 없는 하루 정도를 제외하면 일주일이 요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4개월째다. (...) 앞 동작까지 제대로 했는데 다치는게 무서워서 다음 동작을 대충 뭉개는 순간 사라 코너와 눈이 마주치면 마음이 참담하다. 무엇보다 모멸감이 든다.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왜 세계는 우리가 실수할때만 주목하는가. 


아무래도 요가는 너무, 뭐랄까, 지나치게 정적으로 보였다.

여자만의 전유물처럼 보였다. 문 앞에 개와 남자는 출입 금지라고 쓰여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유연해야 할 수 있는운동이었다. 유연하지 않은 몸으로 40년 넘게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란 ‘유연하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끊임없는 자기 확신을 기반으로 기능하기 마련이다. 


요가란 내게 의도하지 않은 사건이었다.

유연하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내가 왜 요가를 하나. 병이 다 나으면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아마 산티아고 순례길을 열 번 걷고 나면 요가를 했을까. 잘 모르겠다. 요가란 내게 의도하지 않은 사건이었다. 

처음에는 아는 형이 같이 가자고 지겹게 졸라대서 구경이나 해볼까 싶어 따 라갔다. 거기 아는 동생까지 붙어 엉겁결에 셋이 함께 등록했다. 뭐가 무슨 수업인지도 모르고 그냥 아무거나 선택했다. 그 아무거나가 아쉬탕가였다. 힘들어봤자 다리나 조금찢고 말겠지. 

그리고 그날 나는 내가 지난 몇 년간 흘린 걸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땀을 한 시간 만에 줄줄 쏟아내고는 발뒤꿈치까지 탈탈 털려서 침대 위에 고꾸라졌다. 자는내내 세상이 탈수기처럼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형과 동생은 사라졌다. 나만 남았다


누군가가 믿을 만하고 성실한 사람인가 확인해보려면 같이 요가를 해라.

앞서도 말했지만 성실하지 않다는 건 내게 가장 큰 불명예다. 아무리 덜떨어져도 인사 잘하고 성실하면 중간은 간다.정작 어릴 때 들었을 때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가 삶을통해 신뢰하게 된 명제다. 대개 인사성과 성실함은 관료적이고 수직적인 사회에서나 빛을 발하는 덕목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건 가장 끔찍한 오해들 가운데 하나다. 


가진 것이 없을 때 다른 무엇보다 몸을 이기는 경험을 쌓아나가자.

가진 것이없을 때 저 두 가지는 가장 믿을 만한 칼과 방패가 된다. 타인을 가늠하는 데도, 나를 무장하는 데도 좋은 요령이다. 형편이 좋은 집에서 태어난 청년들은 이기는 경험을 쌓는일이 비교적 수월하다. 스스로 형편이 불리하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무엇보다 몸을 이기는 경험을 쌓아나가자. 


출발선이 다르니 몸을 이기는 경험을 대신 쌓는 것이다.

출발선이 다르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몸을 이기는 경험을 대신 쌓는 것이다. 이기는 경험을 쌓는다는 건 언제 힘을 주고 뺐는지, 언제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는지 근육의 쓰임과 호흡의 감각을 기억해내는 것과 같다. 지는 것에만 익숙해지면뭐가 진짜 이기는 거고 지는 건지조차 구분이 어려워진다.

되는 놈만 늘 되는 이유가 그런 것이다. 이겨본 사람만이 다시 이길 수 있고, 지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서른 살 이후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걸 시도해본 기억이 없다면

대개 그렇다. 음악도 들었던 것만 듣고 운동도 했던 것만 하며 사람도 만나던 사람만 만난다. 내가 잘할수 있는 것만 열심히 했다. 요가는 해보지 않았던 것이고 잘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내게 요가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그만둘 수 없었고, 그래서 열심히 한다. 이길 때의 기분을 오랜만에 느끼면서 그동안 쌓아왔던 경험치가 바닥을 드러내고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다시 시작할 때다.

책소개. <살고 싶다는 농담> 죽음과의 사투 끝에 삶으로 돌아온 작가 허지웅의 에세이. 깊은 절망에서 나와 아직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를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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