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폭행한 남자와 결혼했다…” 재판까지 했는데 결국 부부가 된 충무로 대표 여배우

1960년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한 배우 남정임은 윤정희, 문희와 함께 ‘1세대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릴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화려했던 전성기 뒤에는 첫 결혼의 실패와 연인을 둘러싼 폭행 사건, 재혼까지 이어진 복잡한 개인사가 있었다.

1960년대 충무로 대표 스타

남정임은 1965년 KBS 공채 탤런트로 선발된 뒤 영화 ‘유정’의 여주인공에 발탁되며 본격적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이후 ‘분녀’, ‘만선’, ‘학사기생’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빠르게 정상급 배우로 올라섰다. 1969년에는 ‘분녀’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문희·윤정희와 함께 당대 영화계를 대표하는 트로이카로 자리 잡았다.

첫 결혼 3년 만에 별거와 이혼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던 남정임은 1971년 재일교포 사업가 임방광과 결혼하며 영화계를 떠났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않았고 1974년부터 별거에 들어갔다. 이후 1976년 연예계에 복귀하며 영화와 드라마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결국 첫 번째 결혼은 이혼으로 마무리됐다.

연인과의 폭행 사건으로 방송출연 정지까지

복귀 이후 남정임은 당시 교제하던 남성과 관련된 폭행 사건에 휘말렸다. 당시 보도와 후대 기록에는 남정임이 사건의 가해자를 친오빠라고 설명했다가 실제 관계가 알려지면서 큰 논란을 겪었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이후 그는 ‘스캔들 메이커’라는 이유로 1977년 1년간 방송 출연 정지 처분까지 받았다. 다만 당시 사건의 세부 경위는 오래된 보도와 회고에 의존하는 부분이 있어 단정적으로 재구성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재판 진행 중이던 연인과 결국 재혼

더욱 놀라움을 안긴 것은 이후의 선택이었다. 후대 기록에 따르면 해당 사건과 관련한 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남정임은 연인 노승주와의 결혼을 결정했고, 결국 1978년 재혼했다. 이후 두 사람은 가정을 꾸렸고 남정임은 영화 ‘웃음소리’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연예계를 떠났다. 지인들의 회고에는 두 사람이 결혼 후 비교적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이어갔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남정임은 이후 유방암 투병 끝에 1992년 세상을 떠났다. 짧은 생애 동안 약 360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사의 한 시대를 이끌었고, 파란만장했던 개인사와 별개로 1세대 트로이카를 대표한 배우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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