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토요타 마스터 드라이버 나루세 히로무는 도요다 아키오에게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레이스 출전을 제안한다. 가주 레이싱 앞세워 중고차로 출전하는 수고도 마다치 않았다. 성능 검증할 최고의 환경이란 믿음 때문이다. 또한, 스스로 문제 해결하는 인재 양성할 기회였다. 나루세는 세상을 떴지만, 자동차의 ‘맛’을 만드는 여정은 현재진행형이다.
글 김기범 편집장(ceo@roadtest.kr)
사진 토요타자동차
글 김기범 편집장(ceo@roadtest.kr)
사진 토요타자동차
토요타와 뉘르부르크링의 만남

“이 순간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신 분이 있을 거예요.” 6월 22일, 독일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 레이스를 완주한 ‘모리조’의 소감이었다. 모리조는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회장의 부캐릭터. 올해 ‘아데아체 라베놀 24시 뉘르부르크링(ADAC RAVENOL 24h Nürburgring)’ 취재는 토요타와 뉘르부르크링의 특별한 관계를 가까이서 보고 느낄 기회였다.
도요다 아키오와 고(故) 나루세 히로무(成瀬弘)의 인연을 되짚어볼 기회이기도 했다. 모리조가 말한 그 분이다. 둘의 관계는 토요타의 제품 개발 및 모터스포츠 활동을 아우른 철학의 뿌리다. 오늘날 토요타는 도요다 아키오 회장 중심으로, 나루세 히로무를 신앙(信仰)처럼 추종하는 분위기.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그 시작과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요다 아키오와 고(故) 나루세 히로무(成瀬弘)의 인연을 되짚어볼 기회이기도 했다. 모리조가 말한 그 분이다. 둘의 관계는 토요타의 제품 개발 및 모터스포츠 활동을 아우른 철학의 뿌리다. 오늘날 토요타는 도요다 아키오 회장 중심으로, 나루세 히로무를 신앙(信仰)처럼 추종하는 분위기.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그 시작과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루세 히로무는 토요타의 전 ‘마스터 드라이버(Master Driver)’다. 그는 1942년 일본 오사카에서 4형제의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목탄 자동차에 관심 많던 그는 1963년 토요타자동차공업에 입사했다. 기술부 차량 실험과 임시직이었다. 같은 해 치른 제1회 일본 그랑프리를 계기로, 토요타가 만든 레이스 부서(제7 기술부)의 정비사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토요타 정비사 가운데 소위 ‘성골(聖骨)’은 ‘토요타 공업학원(トヨタ工業学園)’ 출신. 1938년 토요타시에 문을 연 직업훈련학교다. 대개 졸업 후 토요타의 생산직으로 입사한다. 이곳 출신 가운데는 전무나 부사장 등 토요타 임원까지 오른 이들도 있다. 반면 나루세 히로무는 일반 자동차 정비 전문학교 출신. 승진의 한계가 있는 ‘진골(眞骨)’이었다.
그런데 종종 현장 찾던 도요다 에이지 전무의 눈에 띄어 반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토요타 2000GT와 세븐(7) 레이스 활동을 맡아 제2회 일본 ‘캔암(Can-Am)’ 우승에 공헌했다. 1973년 그는 모터스포츠 활동을 원하는 스위스의 토요타 딜러로 파견 근무에 나섰다. 이때 뉘르부르크링에서 차량개발 및 인재육성을 하는 독일차 제조사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는다.
당시 토요타 정비사 가운데 소위 ‘성골(聖骨)’은 ‘토요타 공업학원(トヨタ工業学園)’ 출신. 1938년 토요타시에 문을 연 직업훈련학교다. 대개 졸업 후 토요타의 생산직으로 입사한다. 이곳 출신 가운데는 전무나 부사장 등 토요타 임원까지 오른 이들도 있다. 반면 나루세 히로무는 일반 자동차 정비 전문학교 출신. 승진의 한계가 있는 ‘진골(眞骨)’이었다.
그런데 종종 현장 찾던 도요다 에이지 전무의 눈에 띄어 반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토요타 2000GT와 세븐(7) 레이스 활동을 맡아 제2회 일본 ‘캔암(Can-Am)’ 우승에 공헌했다. 1973년 그는 모터스포츠 활동을 원하는 스위스의 토요타 딜러로 파견 근무에 나섰다. 이때 뉘르부르크링에서 차량개발 및 인재육성을 하는 독일차 제조사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는다.
서로 도움이 필요했던 두 남자

1979년 토요타는 ‘본사 고속(高速) 드라이버 교육’ 제도를 도입한다. 그 결과 차량 시험과에 근무하던 나루세 히로무는 사내 최고 단계인 ‘특A’ 테스트 드라이버 교육을 담당했다. 토요타는 300여 명의 테스트 드라이버 중 최상위권 9명을 ‘탑건’으로 임명했다. 나루세 히로무는 이들 정예 멤버를 진두지휘하는 교관. 바로 ‘마스터 드라이버(Master Driver)’다.
그는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의 주행 경험을 널리 인정받았다. 현지에서 그를 ‘뉘르 마이스터’라고 부를 정도다. 폭넓고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토요타 역대 스포츠카의 ‘맛’을 빚어 왔다. 2000GT(1965년)를 비롯해 셀리카(1970년), 스프린터 토레노(1983년), MR-2(1984년), 수프라(1993년), 알테자(1998년), MR-S(1999년) 등이 대표작이다.
그는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의 주행 경험을 널리 인정받았다. 현지에서 그를 ‘뉘르 마이스터’라고 부를 정도다. 폭넓고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토요타 역대 스포츠카의 ‘맛’을 빚어 왔다. 2000GT(1965년)를 비롯해 셀리카(1970년), 스프린터 토레노(1983년), MR-2(1984년), 수프라(1993년), 알테자(1998년), MR-S(1999년) 등이 대표작이다.

2002년 나루세 히로무는 훗날 자신의 철학을 가슴 깊이 이해하고, 마스터 드라이버 자리를 이어받을 남자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도요다 아키오였다. 1984년 입사해 경리부와 재무부, 생산조사부, 토요타와 GM이 설립한 미국 ‘NUMMI(New United Motor Manufacturing)’ 공장, 미국 현지법인 부사장을 거쳐 아시아 본부장(상무)으로 부임한 참이었다.
그런데 둘의 첫 만남은 결코 화기애애하지 않았다. 나루세가 도요다에게 직언을 쏟아낸 까닭이다. “운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 같은 입장이라면 차에 대해 함부로 말해선 안 됩니다. 우리 테스트 드라이버들은 더 나은 차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배울 마음이 있다면, 제가 운전을 가르쳐드리지요.”
마침 둘은 서로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루세는 회사가 ‘운전의 맛’ 좇는 기능직 의견에 더 관심 갖기를 원했다. 특히 토요타 개발부는 ‘하얀 거탑’으로 불릴 만큼 도도하기로 유명했다. 도요다는 자동차에 대한 전문성이 아쉬웠다. 할아버지 기이치로(豊田喜一郞)나 삼촌 에이지(豊田英二)처럼 도쿄제국대학(현 동경대) 기계공학과 출신 엔지니어가 아닌 탓이었다.
그런데 둘의 첫 만남은 결코 화기애애하지 않았다. 나루세가 도요다에게 직언을 쏟아낸 까닭이다. “운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 같은 입장이라면 차에 대해 함부로 말해선 안 됩니다. 우리 테스트 드라이버들은 더 나은 차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배울 마음이 있다면, 제가 운전을 가르쳐드리지요.”
마침 둘은 서로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루세는 회사가 ‘운전의 맛’ 좇는 기능직 의견에 더 관심 갖기를 원했다. 특히 토요타 개발부는 ‘하얀 거탑’으로 불릴 만큼 도도하기로 유명했다. 도요다는 자동차에 대한 전문성이 아쉬웠다. 할아버지 기이치로(豊田喜一郞)나 삼촌 에이지(豊田英二)처럼 도쿄제국대학(현 동경대) 기계공학과 출신 엔지니어가 아닌 탓이었다.
자동차의 ‘맛’을 만들어가는 과정

조리사 자격증 소지자였던 나루세는 테스트를 종종 요리에 비유했다. “테스트 드라이버는 다양한 차종의 특성이 품은 맛을 충분히 끌어올리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의 양념’이라고도 표현했는데, 1,000분의 1G처럼 훈련된 프로만 느끼는 사소한 균형으로도 달라질 수 있다. 재료 자체가 좋지 않으면, 맛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소재부터 중요시했다.
또한, 요리의 세계에서는 최종 맛을 결정하는 총 요리장이 있다. 덕분에 다수결 같은 타협 또는 절충안이나 아마추어 손님의 목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원칙을 지켜갈 수 있다. 나루세는 토요타도 제대로 된 맛을 결정할 수 있는 책임자(마이스터)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결국 실력으로 테스트 드라이버의 꼭짓점까지 오른 뒤 기꺼이 그 책임을 짊어졌다.
나루세는 최고의 지식과 실적 갖춘 미캐닉이었다. 하지만 데이터나 이론보다 실천과 경험을 더 중시했다.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섬세한 감각을 좇기 위해서다. 레이싱에 참가하는 이유도 명백했다. 한정된 시간과 도구로 문제 해결 경험을 쌓아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였다. 그는 특히 시물레이션으로 디지털 설계한 차를 혐오했다.
또한, 요리의 세계에서는 최종 맛을 결정하는 총 요리장이 있다. 덕분에 다수결 같은 타협 또는 절충안이나 아마추어 손님의 목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원칙을 지켜갈 수 있다. 나루세는 토요타도 제대로 된 맛을 결정할 수 있는 책임자(마이스터)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결국 실력으로 테스트 드라이버의 꼭짓점까지 오른 뒤 기꺼이 그 책임을 짊어졌다.
나루세는 최고의 지식과 실적 갖춘 미캐닉이었다. 하지만 데이터나 이론보다 실천과 경험을 더 중시했다.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섬세한 감각을 좇기 위해서다. 레이싱에 참가하는 이유도 명백했다. 한정된 시간과 도구로 문제 해결 경험을 쌓아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였다. 그는 특히 시물레이션으로 디지털 설계한 차를 혐오했다.

한편, 나루세의 제안을 수락한 도요다는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매달 한 번 시즈오카현 후쿠로이시의 야마하 테스트 코스로 나갔다. 시속 200㎞ 주행 중 급제동, 전복된 차에서 탈출 등 긴급 상황 대처법을 배우며 2년 동안 기초를 다졌다. 다음은 나루세가 모는 차의 꽁무니 바짝 쫓기. 브레이크 등이 들어오면 제동하고, 간격이 벌어지면 가속하는 식이었다.
말수 적고 대쪽 같은 심성의 나루세에게 창업 3세라고 특별한 대접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가 훈련시킨 정예 드라이버들을 사내에서는 ‘N팀’이라고 불렀다. 팀원끼리 모의 레이스할 때면, 다들 도요다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달렸다. 아직 그의 실력을 믿지 못한 까닭이었다. 하지만 도요다는 좌절하지 않았다. 대학 시절 필드하키로 다진 체력과 정신력으로 버텼다.
말수 적고 대쪽 같은 심성의 나루세에게 창업 3세라고 특별한 대접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가 훈련시킨 정예 드라이버들을 사내에서는 ‘N팀’이라고 불렀다. 팀원끼리 모의 레이스할 때면, 다들 도요다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달렸다. 아직 그의 실력을 믿지 못한 까닭이었다. 하지만 도요다는 좌절하지 않았다. 대학 시절 필드하키로 다진 체력과 정신력으로 버텼다.
경영자가 아닌, 드라이버로서 출전

그렇게 5년이 지났다. 어느덧 팀원들이 도요다 차에 바짝 붙어 달리기 시작했다. 비로소 그를 신뢰한다는 뜻이었다. 도요다 자신도 변화를 느꼈다. 운전 실력과 비례해 차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 보람과 성취감 느낀 나날들이었다. 2007년, 나루세는 도요다에게 파격 제안을 한다. 독일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 출전이었다. 경영자가 아닌, 레이서로서.
그러나 공식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본사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예산과 인력 투입을 꺼렸다. 도요다 아키오 역시 부담을 느꼈다. 그래서 예명을 쓰기로 했다. 그게 ‘모리조’다. 2005년 아이치 만국 박람회의 공식 마스코트 이름이다. 팀 이름은 도요다 아키오가 1998년부터 운영 중이던 중고차 및 신차 정보 네트워크의 이름 ‘가주(GAZOO)’로 결정했다.
그러나 공식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본사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예산과 인력 투입을 꺼렸다. 도요다 아키오 역시 부담을 느꼈다. 그래서 예명을 쓰기로 했다. 그게 ‘모리조’다. 2005년 아이치 만국 박람회의 공식 마스코트 이름이다. 팀 이름은 도요다 아키오가 1998년부터 운영 중이던 중고차 및 신차 정보 네트워크의 이름 ‘가주(GAZOO)’로 결정했다.


‘가주 레이싱’의 시작이었다. 당시 토요타는 F1에 집중하고 있었다. F1 부품은 최고 수준의 정밀성을 요한다. 양산차와 비용과 기술이 아득히 차이 난다. 반면, 나루세와 도요다는 보다 실용적인 모터스포츠를 원했다. 양산차 개발과 밀접한 연결고리 갖춘 레이스를 노렸다. 양산차 기반 30여 개 클래스의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 레이스가 제격이었다.
가주 레이싱팀의 첫 출전 준비는 우여곡절의 연속. 크루는 초짜 일반 직원이 대부분으로, 인원이 독일 개인팀보다 적었다. 경주차도 알아서 구해야 했다. 군마현의 중고차 매장에서 구입해 개조한 토요타 알테자 RS200 두 대로 출전했다. 연습은 개발명 A80의 4세대 구형 수프라로 했다. 세계 톱클래스 자동차 회사의 위상과 거리가 멀었다. 동호회 수준이었다.
2007년 6월 10일 오후 3시, 전날부터 거꾸로 돌던 시계가 멈췄다.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 레이스의 공식 종료였다. 시작부터 악몽 같았다. 폭우로 트랙엔 흙탕물이 흘렀다. 팬 캠프엔 벼락이 떨어져 부상자가 나왔다. 결국 출발을 두 시간 가까이 늦췄다. 밤에는 안개로 다시 6시간 정도 레이스가 멈췄다. 다행히 가주 레이싱팀은 가까스로 완주에 성공했다.
가주 레이싱팀의 첫 출전 준비는 우여곡절의 연속. 크루는 초짜 일반 직원이 대부분으로, 인원이 독일 개인팀보다 적었다. 경주차도 알아서 구해야 했다. 군마현의 중고차 매장에서 구입해 개조한 토요타 알테자 RS200 두 대로 출전했다. 연습은 개발명 A80의 4세대 구형 수프라로 했다. 세계 톱클래스 자동차 회사의 위상과 거리가 멀었다. 동호회 수준이었다.
2007년 6월 10일 오후 3시, 전날부터 거꾸로 돌던 시계가 멈췄다.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 레이스의 공식 종료였다. 시작부터 악몽 같았다. 폭우로 트랙엔 흙탕물이 흘렀다. 팬 캠프엔 벼락이 떨어져 부상자가 나왔다. 결국 출발을 두 시간 가까이 늦췄다. 밤에는 안개로 다시 6시간 정도 레이스가 멈췄다. 다행히 가주 레이싱팀은 가까스로 완주에 성공했다.
신차 투입해 성능검증 기회로 활용

그런데 알아주는 이가 드물었다.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 탓이다. 오히려 폭스바겐 5세대 골프가 10위, 현대 쿠페 V6(투스카니 엘리사)가 13위로 들어왔다는 소식이 화제를 모았다. 도요다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의 도전을 회사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지원은커녕 무시하는 상황 때문에 좌절에 빠졌죠. 심지어 단종된 중고차로 출전을 했고요.”
이후 가주 레이싱의 활동은 서서히 회사의 이해와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덕분에 해를 거듭날수록 규모를 확대했다. 가주 레이싱의 도전 첫 해 목표는 ‘완주’. 반면 2008년 테마는 ‘차의 맛 찾기’였다. 개발 중이던 렉서스 LFA와 판매 중인 IS250의 부품 교체 및 셋업을 통한 성능 검증을 꾀했다. 레이스 참가 통한 차량 개발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 셈이다.
2009~2010년엔 LFA 두 대로 출전해 각각 한 대가 완주했다. 2011년부터는 ‘속도’에 집중했다. 그 결과 빠른 경주차를 상징하는 식별등인 ‘블루 플래시(Blue flash)’를 처음 거머쥐었다. 2012년엔 LFA 한 대와 86 양산 버전 두 대로 참가했다. LFA는 공력 성능 개선, 86은 두 가지 세팅으로 데이터를 수집했다. 두 차종 모두 클래스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가주 레이싱의 활동은 서서히 회사의 이해와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덕분에 해를 거듭날수록 규모를 확대했다. 가주 레이싱의 도전 첫 해 목표는 ‘완주’. 반면 2008년 테마는 ‘차의 맛 찾기’였다. 개발 중이던 렉서스 LFA와 판매 중인 IS250의 부품 교체 및 셋업을 통한 성능 검증을 꾀했다. 레이스 참가 통한 차량 개발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 셈이다.
2009~2010년엔 LFA 두 대로 출전해 각각 한 대가 완주했다. 2011년부터는 ‘속도’에 집중했다. 그 결과 빠른 경주차를 상징하는 식별등인 ‘블루 플래시(Blue flash)’를 처음 거머쥐었다. 2012년엔 LFA 한 대와 86 양산 버전 두 대로 참가했다. LFA는 공력 성능 개선, 86은 두 가지 세팅으로 데이터를 수집했다. 두 차종 모두 클래스 우승을 차지했다.

2013년에는 성능을 GT3 클래스 수준까지 끌어올린 LFA와 무게를 줄이면서 엔진은 개선한 86으로 출전했다. 하지만 예선에서 충돌로 86 한 대가 리타이어했다. 악천후로 결승도 9시간 만에 중단했다. 가혹한 경주 치르며 스피드는 입증했지만, 불안정한 핸들링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균형이 ‘더 좋은 차 만들기’의 핵심이란 사실을 절실히 깨달은 계기였다.
이후 가주 레이싱은 LFA 이외에도 렉서스 RC와 LC, 토요타 C-HR 등을 투입해 다양한 분야에 걸쳐 성능을 검증하고 개량했다. 2019년엔 모리조가 5세대로 진화한 GR 수프라를 몰고 출전해 클래스 3위로 완주했다. 그 사이 또 다른 변화도 있었다. 2009년 도요다 아키오가 사장으로 취임했다. 2016년부터 가주 레이싱은 ‘토요타’ 이름을 앞세워 출전했다.
이후 가주 레이싱은 LFA 이외에도 렉서스 RC와 LC, 토요타 C-HR 등을 투입해 다양한 분야에 걸쳐 성능을 검증하고 개량했다. 2019년엔 모리조가 5세대로 진화한 GR 수프라를 몰고 출전해 클래스 3위로 완주했다. 그 사이 또 다른 변화도 있었다. 2009년 도요다 아키오가 사장으로 취임했다. 2016년부터 가주 레이싱은 ‘토요타’ 이름을 앞세워 출전했다.
‘더 좋은 차 만들기’ 위한 전면개혁



2000년대 초반, 토요타는 여러 스포츠카를 단종시켰다. 2002년 수프라, 2005년 알테자, 2007년 MR-S가 차례로 자취를 감췄다. 토요타는 해외 판매 증대를 통해 사업 확장을 노렸다. ‘잘 팔리고 돈 잘 버는’ 차종에 집중했다. 그 결과 마니아들이 열광했던 차종이 사라졌다. 그런데 ‘맛’의 중요성 깨우친 CEO가 등장하며 기존 전략에 획기적 변화가 생겼다.
도요다 아키오는 2010년 도쿄오토살롱에서 새로운 전략을 선언했다. ‘스포츠카의 부활’이었다. 같은 해 렉서스 LFA를 시작으로, 2012년 토요타 86, 2019년 GR 수프라가 뒤를 이어 데뷔했다. 또한, 지역과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차종으로 개발 우선순위를 뒀다. 덕분에 토요타의 기함 센추리는 21년, 준중형 버스 코스터는 24년 만에 환골탈태할 수 있었다.
도요다 아키오는 2010년 도쿄오토살롱에서 새로운 전략을 선언했다. ‘스포츠카의 부활’이었다. 같은 해 렉서스 LFA를 시작으로, 2012년 토요타 86, 2019년 GR 수프라가 뒤를 이어 데뷔했다. 또한, 지역과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차종으로 개발 우선순위를 뒀다. 덕분에 토요타의 기함 센추리는 21년, 준중형 버스 코스터는 24년 만에 환골탈태할 수 있었다.

2012년 4월, 토요타는 ‘TNGA(Toyota Global New Architecture)’ 도입을 알렸다. 특정 플랫폼이 아닌, 필요한 여러 기능을 독립된 패키지로 만들어 공유하는 설계 사상이다. TNGA-K, e-TNGA 등 차급과 장르, 파워트레인에 따라 특정 플랫폼으로 가지를 친다. TNGA를 도입하면서 토요타와 렉서스 차종은 기본기와 운전재미를 눈에 띄게 개선했다.



2015년 4월에는 토요타 그룹의 모터스포츠 활동을 ‘가주 레이싱(GR)’으로 통합했다. 2017년 모터스포츠 차량 개발하던 토요타 가주 레이싱 컴퍼니를 재편해 ‘가주 레이싱 컴퍼니’도 설립했다. 2019년엔 GR 수프라를 출시했다. GR 브랜드 최초의 전용 모델이었다. 이후 2020년 GR 야리스, 2021년 GR 86, 2022년 GR 코롤라를 순차적으로 내놓았다.
2016년 4월엔 토요타 조직도 뼛속까지 바꿨다. 기존엔 기획설계와 생산기술, 생산으로 나눈 기능 중심. 반면 ‘신체제’는 전략에 따라 제품 중심으로 재편했다. 소형차·중대형차·고급차(렉서스)·상용차·선진기술개발(5~10년)·파워트레인·커넥티드의 7개 비즈니스 유닛이 단기 전략, 코퍼레이트 전략부와 미래창생센터(30년)의 헤드유닛은 장기 전략을 맡는다.
2016년 4월엔 토요타 조직도 뼛속까지 바꿨다. 기존엔 기획설계와 생산기술, 생산으로 나눈 기능 중심. 반면 ‘신체제’는 전략에 따라 제품 중심으로 재편했다. 소형차·중대형차·고급차(렉서스)·상용차·선진기술개발(5~10년)·파워트레인·커넥티드의 7개 비즈니스 유닛이 단기 전략, 코퍼레이트 전략부와 미래창생센터(30년)의 헤드유닛은 장기 전략을 맡는다.
사후 오히려 강해진 나루세의 영향

올해 토요타는 가주 루키 레이싱으로 6년 만에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 레이스에 돌아왔다. 모리조도 2019년 이후 처음 출전했다. 2020~2021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행사를 열지 않았고, 2022년엔 일본 국내 레이스와 겹쳐서 불참했다. 대신 2023~2024년 ‘뉘르부르크링 장거리 시리즈(NLS)’에 참가했다. 올해 뉘르부르크링 24시 복귀의 예고편이었다.
지난 6월 21일 오후 2시 30분(현지시간), 난 독일 뉘르부르크링 GP 슈트라세의 그리드 워크에서 모리조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 레이스 출발을 한 시간 반 앞둔 시점이었다. 오늘 기분이 어떤지 묻자 “날이 너무 뜨겁다(Hot)!”며 호쾌하게 웃었다. 아울러 “모두 안전하게 운전하고 웃으며 즐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6월 21일 오후 2시 30분(현지시간), 난 독일 뉘르부르크링 GP 슈트라세의 그리드 워크에서 모리조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 레이스 출발을 한 시간 반 앞둔 시점이었다. 오늘 기분이 어떤지 묻자 “날이 너무 뜨겁다(Hot)!”며 호쾌하게 웃었다. 아울러 “모두 안전하게 운전하고 웃으며 즐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모리조가 왠지 허전해 보였다. 뉘르부르크링으로 맺은 운명의 단짝이 더 이상 세상에 없는 까닭이다. 나루세는 2010년 6월 23일, 뉘르부르크링 인근에서 교통사고로 운명했다. 렉서스 LFA 뉘르부르크링 패키지를 테스트하던 중이었다. 토요타는 뉘르부르크 교외 공터에 일본과 독일 벚꽃 나무를 한 그루씩 심었다. 모리조가 경기 전 꼭 찾는 장소다.
생전 나루세는 타협 없는 완벽주의와 따뜻한 성품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사후 그의 어록과 철학은 팀에서 동기부여의 원동력이자 일치단결의 구심점으로 거듭났다. 히라타 야스오(平田泰男) 수석 미캐닉은 그의 호통을 생생히 기억한다. “엔지니어는 빨리 달리는데 집중하면 안 돼. 거동을 느껴 개선해야지. 결국 사람을 단련시키는 과정이야.”
생전 나루세는 타협 없는 완벽주의와 따뜻한 성품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사후 그의 어록과 철학은 팀에서 동기부여의 원동력이자 일치단결의 구심점으로 거듭났다. 히라타 야스오(平田泰男) 수석 미캐닉은 그의 호통을 생생히 기억한다. “엔지니어는 빨리 달리는데 집중하면 안 돼. 거동을 느껴 개선해야지. 결국 사람을 단련시키는 과정이야.”

올해도 뉘르부르크링의 24시간은 치열했다. 134대 중 88대만 완주했다. 토요타 가주 루키 레이싱의 GR 야리스는 클래스 1위, GR 수프라 GT4 Evo2는 클래스 4위로 완주했다. 경기 직후 모리조는 소중히 품은 액자 속 나루세를 언급했다. “함께 도전하고 싸우며 기쁨을 나눌 수 있었던 데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마침 다음날이, 나루세의 기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