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세상으로 떠난 쉐보레 카마로

이제 쉐보레 카마로를 놓아줄 때가 됐다. 그 동안 오랜 수명을 자랑하며 포드 머스탱과 함께 미국 '포니카'의 양대산맥(?)으로 군림했던 카마로가 이제 완전히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GM이 카마로 생산 라인을 완전히 닫아버렸으니, 다시 생산될 일도 없을 것이다. 먼 훗날 카마로라는 이름이 부활할 가능성은 있지만, 그 때는 2도어 스포츠카가 아니라 전기 크로스오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이제 카마로의 생애를 돌아보고 기념을 해 주자.

1세대(1967~1969)

포드 머스탱과 경쟁하기 위해 쉐보레는 다른 차의 플랫폼을 빌려 '포니카'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1965년에 머스탱이 연간 판매 목표 10만대를 4배나 초과 달성하는 것을 보았으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카마로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66년 가을로 이 때부터 8기통 엔진을 제공했다. 당연하지만 포드 머스탱과 경쟁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주로 판매한 것은 아마도 최고출력 380마력을 발휘했던 SS 396 모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딜러에 따라서 427 V8 엔진(무려 7ℓ 엔진)을 탑재한 카마로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단 69대만이 ZL1의 이름을 얻을 수 있었다. ZL1은 당시 드래그 레이스에서만 사용하던 알루미늄 V8 엔진을 탑재하고 507 마력을 발휘했는데, 엔진 가격이 카마로 기본 모델 가격하고 거의 동일했다.

카마로는 쉐보레 내에서 꽤 인상적인 판매 기록을 남겼고 성공도 거두었지만, 포드 머스탱은 카마로보다 더 많이 팔렸다. 그것 때문인지 카마로는 발 빠르게 2세대 모델을 준비하게 된다.

2세대(1970~1981)

아마도 역대 카마로 중에서 가장 파격적인 디자인을 적용한 모델이 아닐까 한다. 기본 모델인 Z28부터 다른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이 365마력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에어컨은 물론 미국의 고객들이 원하던 자동변속기도 선택할 수 있었다. 문제는 카마로가 풀 체인지를 단행해야 하는 시점에도 계속 대배기량 엔진을 고집했다는 점이다.

포드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1974년에 머스탱의 엔진 배기량을 줄였다. 힘이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머스탱은 카마로보다 두 배를 더 팔았다. 어쨌든 이 카마로는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겨우 주목을 받았다. 영화 '트랜스포머'를 통해서 말이다.

3세대(1982~1992)

2세대 카마로는 차체가 무거웠고 느렸으며, 연비도 좋지 않았다. 당시 일본 자동차들이 연비를 앞세워 미국 시장을 점령하면서, 카마로의 개발에도 비상이 걸렸다. 그래서 GM은 카마로를 대대적으로 변신시키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플랫폼을 도입하고 매끄러우면서도 공기역학을 고려한 디자인을 적용했으며, 실용적인 해치백으로의 변신은 물론 227kg의 경량화도 단행했다.

문제는 기본형 엔진의 출력이었다. 카마로 최초의 2.5ℓ 4기통 엔진은 최고출력이 91마력에 불과했다. 그나마 상위 모델이었던 Z28은 전자제어 분사를 통해 167마력을 발휘했지만, 수동변속기 버전을 고르면 엔진이 캬뷰레타로 바뀌었고 최고출력이 20마력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최고출력 218마력을 발휘하는 5.0ℓ 8기통 엔진은 1985년이 되어야 추가됐다.

지금에 와서 가장 인기가 높은 3세대 모델은 한정판인 1LE 패키지를 적용한 것이다. 브레이크와 서스펜션을 좀 더 성능이 높은 것으로 바꾸었고, 오일 쿨러를 탑재했다. 여기에 알루미늄으로 만든 드라이브샤프트와 강화된 리어 액슬도 넣었다. 일반 모델보다 소장 가치가 높다. 그리고 2세대에서 사라졌던 컨버터블이 부활했다.

4세대(1993~2002)

원래대로라면 카마로는 이 때 대폭 바뀔 예정이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카마로가 전통적인 형태의 뒷바퀴를 굴리는 자동차가 아니라 앞 바퀴를 굴리는 평범한 자동차가 될 뻔했다는 것이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GM의 시도는 충돌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실패로 끝났고, 기존 차체를 유지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대신 차체를 대대적으로 개량했다. 앞 바퀴 서스펜션은 모두 바꾸었고, 랙 앤 피니언 스티어링과 ABS를 도입했다. 그리고 새로 만든 강력한 8기통 엔진도 도입했다. 제일 강력한 모델은 1998년에 등장했던 LS1 8기통 모델로, 당시 판매하던 콜벳의 엔진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판매 간섭을 막기 위해 최고출력이 350마력에서 309마력으로 떨어졌지만, 당시 포드 머스탱 코브라와 겨루기에는 충분했다.

이 차는 실내 디자인과 거대한 에어백을 탑재한 스티어링 휠의 디자인(!)으로 인해 많은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GM은 2022년에 판매 부진을 이유로 4세대 카마로 생산을 종료했다. 부활은 그로부터 한참 뒤에 이루어졌다.

5세대(2010~2015)

이 모델은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익숙한 디자인일 것이다. 영화 '트랜스포머'에 등장한 것도 그 이유이지만, 지금은 현대차와 제네시스 디자인을 지휘하는 이상엽이 디자인(외형)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GM은 카마로에 레트로 디자인을 입히기 원했고, 콘셉트카를 통해 가능성을 본 뒤 양산 모델을 출시했다. 플랫폼은 호주의 회사인 '홀덴'에서 갖고 왔다.

어쨌든 이 카마로도 포드 머스탱을 꺾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그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기본형 6기통 엔진도 최고출력 308마력으로 인상적이었는데, 6.2ℓ 8기통 엔진은 최고출력 432마력을 발휘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출시 후 2년 동안 카마로가 머스탱보다 더 많이 팔렸다. 그 뒤 2012년에는 엔진에 슈퍼차저를 더해 최고출력 588마력을 발휘하는 ZL1이 추가됐고, 2014년에는 콜벳 Z06의 엔진을 가져와 최고출력 512마력을 발휘했다.

PS : 우리는 여러 매체의 보도를 통해 카마로 디자이너의 이름을 알고 있지만, 사실 GM은 공식적으로 디자이너를 알린 적이 없다. GM에서 공식적으로 이름을 알린 디자이너는 '할리 얼' 뿐이고, 그나마도 할리 얼이 회사 내에서 세운 공이 워낙 크기 때문에 그것을 기념하는 정도다. 그 이후로 특별히 자동차를 통해 이름을 알린 디자이너는 없다. 현재의 자동차 디자인은 디자이너 한 명이 주도하는 게 아니라 공동작업이 많기 때문이다.

6세대(2016~2023)

언뜻 보면 5세대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처럼 보이지만, 차체가 바뀌었기 때문에 온전한 신차다. 2세대 이후 처음으로 기본형에 4기통 엔진을 탑재한 모델이기도 한데, 최고출력이 279마력에 달하니 아쉽지는 않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8기통 엔진을 탑재한 버전이 팔렸는데, 새 플랫폼에 MRC 서스펜션 등 다양한 기술을 집어넣어 미국 포니카가 아닌 경쾌한 스포츠카의 움직임을 만들어낼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국내에서는 판매하지 않았지만, 콜벳에 탑재하는 엔진을 갖고 와 최고출력 659마력을 발휘하는 ZL1 버전도 있었다. 2019년에 어설프게 페이스리프트를 단행했다가 몰매를 맞고 다음 해에 곧바로 수정되었던 아픈 기억도 있다. 그리고 이제 2023년을 마지막으로 카마로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 아마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굉장히 슬픈 일이다. 전기차 시대가 되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이제 8기통 엔진을 탑재한 그나마 저렴한(?) 스포츠카를 살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포드 머스탱은 하이브리드를 도입해서라도 살아남겠다고 하는데, GM에는 그런 근성(?)을 바랄 수 없었던 것일까. 마음이 착잡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