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안 오면 공장 셧다운” 유화업체 공업용수 말라 초비상

신수민 2023. 3. 1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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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과의 전쟁’ 남부 산단 르포
지난 15일 전남 순천시 주암면 주암댐 본댐이 가뭄으로 사면이 드러나 있다. 이날 본댐 저수율은 18.1%로, 주암댐은 14년 만에 저수율이 20% 미만으로 떨어졌다. 신수민 기자
“여기서 물이 더 마르면 공장 멈춰야죠.”

지난 15일 찾은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단엔 허연 수증기와 파이프가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여수산단은 단일 규모로 세계 최대 석유화학단지다. 여수산단로4길에 위치한 A화학업체 공장도 이날 스팀을 뿜어내고 있었다. 계면활성제를 주로 생산한다는 공장 관계자 강모씨는 “화학반응을 일으키기 위해 스팀을 열원으로 사용한다”며 “스팀을 대기업으로부터 사오는데 가뭄이 계속 돼 대기업이 스팀 생산을 못하면 우리는 그냥 끝나는 거죠, 뭐”라고 속을 털어놨다. 인근의 B화학업체 관계자는 “오늘 아침에도 산업단지공단, 여수시, 수자원공사로부터 ‘공업용수 부족으로 협조를 요청한다’는 공문을 또 받았다”며 “지역 자체가 공업용수 관로와 멀어 새로운 수원을 개발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곳 여수산단엔 LG화학과 GS칼텍스, 롯데케미칼 등 10여곳의 대기업 석유화학공장을 포함 협력업체까지 200여개가 넘는 공장이 밀집해 있다. 주로 석유화학 업종이다보니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열원이나 식히는 냉각재로 물을 주로 사용해 공업용수를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 산단 내 비교적 큰 규모로 입지해 있는 C화학업체 관계자는 “공장 전체 가동의 60% 정도로 생산라인을 돌리고 있다”며 “좋게 볼 상황은 아니지만 석유화학업 시황이 좋지 않아 재고가 남아서 그나마 이 정도 수준에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석유화학 공장은 한 번 돌아가면 계속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가동률 60% 미만으로 내려가면 아예 공장전체를 셧다운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인근 광양산단 기업들도 위기감

여수산단의 공장들이 공급받는 공업용수의 수원지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호남 최대 규모 다목적댐인 주암댐이 나온다. 이날 찾은 상사면 주암댐(조절지댐)은 과연 사면이 보일 정도로 저수율(댐에 저장된 물을 이용할 수 있는 최저수위)이 낮은 상태였다. 이중호 한국수자원공사 주암댐지사 차장은 “주암댐이 준공된 이후 33년간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 차장은 드러난 사면을 가리키며 “전체 주암댐 높이로만 보면 약 20%가량 빠진 상태”라며 “저수장 형태가 빗살무늬토기 모양으로 돼 있어 윗 부분 20%가 빠진 거면 사실 그보다 물이 더 빠졌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생활·공업용수를 공급하는 주암댐 본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날 주암댐(본댐)의 저수율은 18.1%로 저수량은 예년 수준의 절반에 불과했다. 특히 취수탑을 보면 특정 부분까지 거멓게 그을려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수위가 낮아지면서 물이 항상 차있던 곳이 드러난 거라는 설명이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지난해부터 시작된 ‘남부 가뭄’에 산업 동력의 물길이 말라가고 있다. 이는 여수산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근의 광양국가산업단지 내 기업들도 고민인 건 마찬가지다. 수어댐에서 취수하는 포스코 광양제철소 관계자는 “주암댐보다는 심하지 않고, 엄청나게 위험한 정도는 아니다”라면서도 “이렇게 비가 안 오면 6~7월쯤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래도 포스코는 해수담수화 시설 등을 갖추고 용수 확보에 비교적 대처 능력이 있는 편이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공장 가동에 지장이 있거나 한 건 아니다”라면서 “(가뭄이) 언제 해결될 것이라고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라 심각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여수·광양 산단 내 대부분의 기업들 반응도 비슷하다. 산단 내 D업체 관계자는 “미리 저수장의 깊이를 더 파서 저수능력을 제고해서 용수공급량을 보장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5월 말경에는 가뭄지역이 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5월 생활·공업용수 가뭄경계지역(심한 가뭄)으로 광주광역시, 전북 정읍, 전남 여수, 광양, 순천, 목포 등을 전망했다. 아무리 가뭄이 심각해도 이 정도로 공급이 부족하냐는 의견도 있다. 용수 수요가 대폭 늘어난 것이 아니냐는 얘기다. 이에 대해 이 차장은 “산단 내 입주업체들은 애초 입주 시 공업용수 사용량을 계약하고 들어가기 때문에 사전 배분이 가능하고, 이미 지난해 가뭄 사태가 발생하기 몇 년 전부터 산단 내 업체는 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극심한 가뭄 이상기후가 원인이라고 분석한다”며 “정확히 2020년 홍수가 나고 2년 뒤 정반대로 가뭄의 상황이 일어났는데, 보통 태풍이 와도 남부지방을 거쳐 위로 올라가는데 지난해엔 건너 뛰고 가면서 강수량이 극히 적었다”고 덧붙였다.

극심한 가뭄, 이상기후가 원인

가뭄이 더 심해지면 용수부족 문제도 있지만, 기업들의 추가 비용이 더 늘 수 있다는 점도 우려 지점이다. 정재환 여수산단환경협의회 환경지원처장은 “가뭄으로 저수위가 되면 침전물이 가라앉은 물들만 남게 돼 이를 사용하는 데 정화하는 비용은 더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차장은 “주암댐은 수질이 깨끗해 녹조가 생길 우려는 없지만 아무래도 저수위의 물이 계속 고이면 정화비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대안으로 폐수 재이용 시설, 해수 담수화 시설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비용적 측면에서 보면 만만치 않다.

결국 지금으로선 절수밖에 방법이 없다. 산단 내 공장들은 절수를 위해 가동률을 줄이거나, 주기적으로 공장 가동을 멈추고 정비하는 대정비(TA) 작업기간을 하반기에서 가뭄 심화가 예상되는 상반기로 옮겨서 시행하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다. 작업기간 일수도 기존보다 10~30일 가량 더 늘려 절수 기간을 늘리는 노력도 하고 있다.

김담희 여수산단 총무부서장협의회 회장은 “대부분 업체가 절수에 공감하는 가운데 최근엔 15곳 업체가 대정비 기간을 상반기로 앞당겼다”며 “쌓아둔 재고가 있어서 큰 차질은 아직까지 없지만, 액상제품을 만드는 곳은 보존기간이 길지 못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포스코 관계자는 “철강업은 석유화학과 달리 연속공정이고 생산 마감일정이 있어서 대정비 기간을 자유로이 조정하기는 어렵다”며 “전체 생산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정부, 폐수 재활용 시설 재정지원 검토…전문가 “통합 물 수요 관리를”

「 ‘남부 가뭄’에 주암댐, 섬진강댐, 동복댐 등 주요댐 저수율이 일제히 20%선을 밑돌자 물대란의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정부도 서둘러 관계부처 합동 회의에 나섰다. 산단 내 폐수 재활용 시설, 해수담수화 시설 등의 인프라 구축과 재정 지원을 포함한 대책안을 검토 하고 있다. 정재환 처장은 “당장 생산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기업들은 제한급수를 몇 %로 한다든지와 같이 구체적 로드맵을 미리 알려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담희 회장은 “재활용 용수 이용 비용은 지금보다 3배 더 들기 때문에 추가비용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원을 끌어오는 안도 논의 중이다. 16일엔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수자원공사가 협약을 맺고 보성강댐 강물을 주암댐으로 보내는 식으로 연계 운영하기로 했다. 여수시 토박이라는 택시기사 박모씨(65)는 “섬진강댐 강물을 끌어온다 들었는데 5~6월 한창 재첩 수확기인데 섬진강 일대 어민들이 괜찮다고 하겠냐”며 “제한급수까지 하면 생활용수를 20% 정도 줄여야 하는데 5일 중 하루를 안 씻는거면 보통 불편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수공 관계자는 “섬진강댐 저수율은 19.1%라 끌어와 쓸 수 있는 만큼 충분한 양이라고 볼 수 없다”며 “그나마 낫다는 수어댐도 저수율은 70% 정도이지만 큰 댐이 아니라 취수장에서 푼 물을 받아놨다가 공급하는 식이라 괜찮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취수원 확보는 근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는 평가다. 민동준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석유화학, 철강업 뿐 아니라 반도체도 공업용수가 없으면 공장이 안 돌아간다”며 “전 산업이 바뀌는 이때 정부, 지자체, 관계부처가 전체적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하고, 그 첫 순서가 ‘통합 물 수요 관리’”라고 짚었다.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도 “호주처럼 기업 간 취수권을 사고팔 수 있는 ‘취수권 거래제’도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용수의 공급용도를 파악해 댐별 교차이용을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여수·광양=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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