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2월 현재, 한국 이커머스 시장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마지막 승부수를 주목하고 있다. 2021년 3조4000억원을 투입해 G마켓을 인수한 이후 4년간 지속된 적자와 시장점유율 하락 속에서, 정 회장은 중국 알리바바와의 합작법인 '그랜드오푸스홀딩스'의 초대 이사회 의장으로 직접 나서며 G마켓 부활에 사활을 걸었다. 그러나 쿠팡과 네이버가 장악한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이 도박이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 3조4000억원 역대급 인수, 그러나 4년간 누적 적자 1650억원
신세계그룹의 G마켓 인수는 그룹 역사상 최대 규모의 M&A였다. 2021년 6월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며 정용진 회장은 "얼마가 아니라 얼마짜리로 만들 수 있느냐가 의사결정의 기준"이라며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당시 경쟁자였던 롯데그룹보다 약 1조원 가까이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최종 승자가 됐다.
그러나 인수 이후 G마켓의 실적은 참담했다. 인수 첫해인 2021년 영업이익 43억원을 기록한 뒤, 2022년 655억원, 2023년 321억원, 2024년 67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매출액도 2022년 1조3185억원에서 2023년 1조1967억원, 2024년 9612억원으로 매년 감소하며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2025년 3분기 누적 적자는 663억원에 달했으며, 기업가치 하락으로 인한 손상차손은 9000억원을 넘어섰다.
G마켓의 몰락은 통합 작업과 개발 인력 확충 등으로 인한 비용 부담, 그리고 쿠팡과 네이버의 공격적인 시장 확대에 밀린 결과였다. 2024년 6월 삼정KPMG 조사에 따르면 네이버와 쿠팡은 각각 22%, 20%의 시장점유율을 보유한 반면, G마켓은 14.8%로 3위에 머물렀다.
▮▮ 알리바바와의 합작, 정용진 회장이 직접 의장 맡은 이유
2025년 9월 공정거래위원회의 조건부 승인 이후, 신세계와 알리바바인터내셔널은 50대50 지분 구조의 합작법인 '그랜드오푸스홀딩스'를 설립했다. 이 합작법인은 G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를 각각 100% 거느리는 구조다. 2025년 11월, 정용진 회장은 이 합작법인의 초대 이사회 의장으로 취임하며 12년 만에 등기이사로 복귀했다.
정 회장의 직접 개입은 "G마켓 살리기는 그룹 차원의 최우선 전략"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합작법인을 세운다고 했을 때 G마켓을 알리쪽으로 파는 수순을 밟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정 회장이 직접 의장에 이름을 올리며 경영 주도권은 여전히 신세계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분석했다.
합작법인은 2030년까지 거래액 40조원을 목표로 설정했다. G마켓은 연간 7000억원을 투입해 판매자 지원, 고객 혜택 강화, AI 기술 활용 등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알리바바는 글로벌 물류망과 가격 경쟁력을, 신세계는 국내 유통 네트워크와 브랜드 신뢰도를 각각 강점으로 내세웠다.
▮▮ 역직구 전략과 K상품 수출, 새로운 돌파구 모색
2026년 1월, 신세계그룹과 알리바바 인터내셔널은 베이징에서 역직구 시장 확대에 관한 MOU를 체결했다. 이번 협력의 핵심은 G마켓 셀러들이 알리바바의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아시아와 유럽 등 전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신세계는 '상품 발굴자'로서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K상품과 셀러를 선별하고, 알리바바는 플랫폼, AI 기반 번역·이미지 편집, 현지화 물류를 제공하는 역할 분담 구조다.
정용진 회장은 5년 내 연간 1조원 규모의 역직구 거래액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미 2025년 알리바바의 라자다 플랫폼을 통해 G마켓 셀러들이 동남아 5개국에 상품 판매를 시작하는 등 협력이 가시화되고 있다. 알리바바 인터내셔널의 제임스 동 사장은 "신세계가 엄선한 우수한 제품에 알리바바의 글로벌 플랫폼과 AI 기반 도구를 결합함으로써 소규모 판매자들도 전 세계 고객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명했다.
▮▮ 쿠팡·네이버 양강체제, 넘기 어려운 벽
그러나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 쿠팡과 네이버의 입지는 너무나 견고하다. 쿠팡은 '로켓배송'이라는 혁신적인 배송 시스템으로 고객 신뢰를 확보했다. 자체 물류망을 구축하고 '쿠팡친구'라는 배송 인력을 직접 고용해 서비스 품질을 표준화했으며, 주문 다음 날, 심지어 당일이나 새벽에 상품을 받아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네이버는 멤버십 전략과 스마트스토어 생태계를 통해 판매자와 소비자를 모두 확보하며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박상준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합작법인이 쿠팡과 네이버의 시장 지배력을 위협하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양사의 국내 총 거래액 규모가 두 곳보다 많이 낮고 배송 편의 측면에서도 서비스 격차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쿠팡과 네이버는 합쳐서 약 42%의 시장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어, 14.8%에 불과한 G마켓이 이들을 따라잡기에는 격차가 너무 크다.
▮▮ 중국 자본에 대한 불안과 위해성 논란
알리바바와의 합작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감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중국 자본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우려와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적지 않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2024년 7월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 모회사 알리바바닷컴이 국내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해외 판매자에게 제공했다며 과징금 20억원을 부과한 바 있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저품질 상품과 가품 이슈로 지속적인 논란을 일으켰다. 예고 없이 배송이 지연되거나 주문한 물건이 오지 않고, 환불을 거부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의 중국 상품이 G마켓에 유입될 경우, 국내 안전기준에 미흡하다는 비판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업계에서는 중국 기업의 공격적인 투자로 국내 이커머스 시장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가 해외 이커머스 플랫폼에 대한 소비자 보호 강화 대책을 내놓았지만, 직권조사나 제재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매각 가능성 관측과 신세계의 진짜 속내
일각에서는 이번 합작이 신세계의 G마켓 매각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합작법인이 향후 IPO를 추진하거나 알리바바가 신세계 지분을 인수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으나, 이는 공식 확인되지 않은 관측에 불과하다. 신세계그룹이 장기간 적자를 내온 G마켓을 단계적으로 정리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도 뒤따른다.
다만 신세계그룹 측은 IPO와 매각 추진설에 대해 부인했다. 정용진 회장이 직접 의장에 취임한 것은 경영 주도권을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단순히 매각을 위한 수순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선두업체의 입지가 너무 강력해 알리바바가 위험을 떠안고 추가 투자를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커머스 관계자는 "과거 외국기업들의 선례를 비춰보면, 무리한 투자를 하기보다는 기업 인수·합병 등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질적으로는 신세계가 이커머스 시장에서 '철수'를 선언한 것에 더 가깝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 정용진의 승부수, 성공 가능성은
정용진 회장의 G마켓 살리기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 국내 시장에서 쿠팡과 네이버의 우월적 지위를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쿠팡의 '로켓배송'과 네이버의 '멤버십 전략'이 구축해 놓은 소비자 신뢰도를 뒤흔들기는 쉽지 않다.
알리바바와의 협력이 단순히 가격 경쟁력과 글로벌 물류망 확보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서비스 개선과 소비자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중국 상품의 위해성 논란과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소비자 선택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역직구 전략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K상품의 글로벌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알리바바의 플랫폼을 통해 G마켓 셀러들이 해외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다면 국내 시장에서의 열세를 일정 부분 만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중국과 동남아 시장에서의 경쟁이 치열하고, K상품의 경쟁력이 지속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결국 정용진 회장의 승부수는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서의 재도약과 글로벌 시장으로의 확장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협력이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아니면 결국 G마켓 매각으로 이어질지는 앞으로 2~3년이 결정적인 시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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