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인정한 우리 장(醬) 문화 잘 계승해야죠”
전통 장 보존 앞장 담양 기순도 대한민국 전통식품 진장 명인
장 담그기 문화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52년 전통방식으로 담가…발효밥상 등 체험교육 진행
“우리 전통 간장이 한국 밥상에서 사라지면서 조상들께 빚진 마음이 있었어요. 이번에 장 문화가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는 걸 보며 사라지지는 않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함께 지켜가고 싶습니다.”
콩을 발효해 간장과 된장을 담가 먹는 ‘한국의 장(醬) 담그기 문화’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장 담그기 문화가 가진 독창성과 문화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지난 3일(현지 시간)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열린 제19차 위원회 회의에서 등재가 확정됐다.
이날 등재의 의미를 세계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기순도(76) 대한민국 전통식품명인(제35호·진장)이 370년 된 씨간장을 갖고 발표장에 참석해 직접 기쁨을 느꼈다. 52년째 전통적인 방식으로 장을 담가 온 기 명인은 직접 만든 고추장과 된장을 위원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지난 12일 1200여 개의 장독이 가득한 담양 창평면 (주)고려전통식품 장고(醬庫)에서 만난 기 명인은 “우리 전통문화를 인정받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시어머니로부터 전수받은 옛날 방식 그대로를 고수하는 기 명인은 장흥 고씨 양진재파 10대 종부로 370년간 이어진 종가의 씨간장을 보존하고, 씨간장에 새로운 장을 더하는 ‘덧장’ 문화를 이어오고 있다.
“‘장 담그기 문화’는 메주를 끓여서 장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 전체를 아우르죠. 기술뿐만 아니라 신념, 세시풍속, 주거 문화 등 복합적으로 연관돼있어요. 담그는 과정 중 한 가지만 소홀히 해도 그 맛이 안 납니다. 좋은 날을 받고 목욕재계를 한 후 고사를 지내고 메주를 끓입니다. 52년을 해 왔지만 지금도 자신 있는 건 아니에요. 항상 조심스럽고, 정성을 다합니다.”
콩 재배부터 메주 만들기, 장 만들기, 장 가르기, 숙성과 발효 등의 과정을 거치는 ‘장 담그기’는 중국과 일본의 장과는 다른 독창성을 갖고 있다. 콩을 기반으로 하지만 원재료와 발효 방법도 다르다. 메주를 소금물로 우려내면 간장, 건져 낸 메주는 된장이 되는데 띄운 메주로 두 가지 장을 만드는 것도 특징이다.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온 간장을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요. 전문 요리사들마저 국간장, 왜간장을 사용하면서 전통 장의 맛을 잃어버렸어요. 오히려 해외에서 전통 간장으로 만든 음식을 선보이면 반응이 좋아요. 우리 장이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우러진다고 해서 외국 요리사들도 좋아합니다.”
기 명인은 장 담그기 문화가 함께 지켜나가야 할 유산이 된 만큼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03년부터 전통 장 체험 교육을 해 온 그는 2015년부터 서울의 대학교를 찾아가 교육을 시작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이 전통 장을 쓸 줄 모르고 왜간장으로 실습하는 게 안타까웠고, 이들이 전통 장을 활용해 문화가 잘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또 한국전통장보존연구회 이사장인 기 명인은 1년에 2차례 ‘발효 학교’ 운영 등 전통 장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기업 발효 담당자, 고급 호텔 요리사 등이 명인에게 전통 장을 배우고 발효 밥상을 체험한다. 기 명인은 우리나라 장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 요리사들과 미국에서 봤던 초등학생들이 간장으로 만든 음식을 잘 먹던 모습이 인상 깊다고 말했다.
“‘콩, 소금, 물’ 3가지로 만든 간장에서 복합적인 맛이 나는 걸 보면 외국인들이 놀랍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통 장의 가치와 건강함을 알고 이용하는 게 한국을 위한 길이에요. 이번 등재를 계기로 사라져가는 장 문화가 되살아나고 잘 계승되길 바랍니다.”
/글·사진=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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