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명절에도 어김없이 시댁 주방은 하루 종일 기름 냄새와 설거지거리로 가득 차서 나를 숨 막히게 만들었다.
남자 식구들은 거실에 모여 TV를 보며 웃고 있었고, 손 하나 거들지 않는 남편의 모습에 가슴 깊은 곳에서 서러움이 밀려왔다.
모두가 모인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는 조용히 밥을 먹다가 식탁 위로 젓가락을 딱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정적이 흘렀고, 시어머니는 무슨 일이냐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응시했다.
나는 정적을 깨고 어머니 이번 명절부터는 음식 준비와 뒷정리를 다 같이 나누어 하고 싶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내 한마디에 시아버지는 얼굴을 찌푸렸고 항상 당연하게 대접받던 손윗동서와 시누이조차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나는 십 년 동안 혼자 전을 부치고 설거지를 전담하며 느꼈던 불평등함과 고통을 차분한 어조로 조목조목 짚었다.
곁에 있던 남편이 내 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일어나 자기도 이제는 주방 일을 돕겠다고 손을 들었다.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솔직한 선언에 충격을 받은 듯했으나 곧 자신들이 무심했음을 인정하고 조용히 고개를 떨궜다.

시어머니 역시 늘 관습처럼 여겨왔던 명절 노동이 며느리에게만 지워진 짐이었음을 깨닫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 시댁 식구들은 다 함께 주방으로 들어와 음식을 나누어 만들고 그릇을 닦기 시작했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관습을 깨부순 나의 한마디는 굳어있던 시댁의 명절 풍경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늘 참기만 했던 지난 세월에서 벗어나 내 목소리를 낸 순간 오랫동안 박혀있던 답답한 앙금이 단번에 내려갔다.
젓가락을 내려놓았던 그 작은 용기가 서로를 존중하는 새로운 가족 규칙을 만드는 시발점이 되었다.
식탁 위에 흐르던 어색한 정적은 사라지고 우리는 비로소 진짜 한 가족이 되어 함께 웃을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