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사고본 특수성 바탕, 강원도민 강한 의지의 결실”

김여진 2023. 11. 1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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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박물관 평창 건립 의미
옛 평창 오대산 사고 위치 근접
실록·의궤 등 유물 1207점 전시
왕실기록물 역사·수난사 한눈에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의 환수 운동을 이끌었던 혜문 문화재제자리 찾기 대표는 지난 8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역사서인 실록의 결말은 조선 왕실의 패배를 기록했지만, (일본 도쿄대에서) 환수해 오는 과정을 통해 오히려 승리로 기록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100년을 맞은 관동대지진으로 오대산 사고본이 대부분 소실된데 대해 “실록이 한국에 남아있었다면 분명 보존됐을 것”이라며 반출부터 환수까지 모든 과정을 뼈아픈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는 12일 평창 오대산 아래 새로 문 여는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은 이 모든 과정을 잊지 않기 위한 또 하나의 기록 공간이다.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은 조선시대였던 1606년 세워진 옛 오대산 사고 위치와 가깝다. 역할도 옛 오대산 사고와 같다. 일본에서 반환받은 후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했던 오대산 사고본 실록 75책과 의궤 82책 등 유물 1207점을 보존·전시한다. 조선시대에 왕실기록물을 어떻게 만들고 보관했는지부터 오대산사고에 보관했던 실록과 의궤의 편찬과 분상(分上·조선시대 국가와 왕실의 중요한 기록물을 여러 부 제작하여 사고와 관청 등에 나누어 보관하는 것) 등의 역사, 일제강점기인 1913년 반출된 후 110년 만에 원래 자리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이 이어서 펼쳐진다. 아픈 민족사에 휘말려 고난을 겪은 반출 문화유산의 운명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문화재청은 9일 평창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개최, 박물관의 오대산 건립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오대산 사고본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이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박수희 문화재청 학예연구관은 “국내 환수과정에서부터 많은 관심을 보여왔던 강원도민들의 강한 의지 또한 평창에 박물관을 건립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은 이같은 기획을 통해 전시는 물론 조선왕조실록·의궤 통합 연구조사기관이자 기록문화유산 전문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양하게 수행하겠다는 방침이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오대산 사고본에 이어 2006년 환수된 실록의 추가 등재도 추진 중이다. 현재 소장처에서는 별도로 공개하지 않고 있는 정족산이나 태백산 사고본 등 다른 사고본 실록과의 통합 전시도 가능하게 됐다. 박물관은 기존 월정사 성보박물관이 운영해 온 왕조·실록의궤박물관을 새 단장하는 방식으로 지어졌다. 총 면적 3537㎡, 지상 2층 규모다. 수장고와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실감형 영상관 등으로 구성된다.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은 11일 오후 2시 개관식을 거쳐, 12일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정식 개관한다. 김여진·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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