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여행기를 시작하며 〔아일랜드 거주 10년차 한국인의 아일랜드 여행기〕

FOUR SEASONS IN A DAY

아일랜드는 서유럽 최서단에 위치한 나라로 대서양(Atlantic Ocean)의 영향을 받아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다. 아일랜드를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바로 여름이다. 아일랜드의 여름은 5월부터 시작되는데, 가장 더운 7월에도 평균기온이 섭씨 20도를 넘는 일이 드물다. 말하자면 한국의 늦봄 날씨와 비슷한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아일랜드 여행 중에는 언제든 소나기가 내릴 수 있으니 방수가 되는 따뜻한 외투와 신발을 꼭 챙겨야 한다. 크기를 막론하고, 우산은 아일랜드의 거센 비바람 앞에서 그다지 쓸모가 없을 때가 더 많다. 그러니 청정한 아일랜드에서 산성비 걱정은 넣어두고 후드 모자를 둘러 쓴 채 빗속을 걷는 축축한 낭만을 즐길 준비를 하시라.

한두 시간 뒤에 비가 그치고 쨍하게 해가 뜨면, 지체 없이 시선을 하늘로 돌려야 한다. 그곳엔 마치 오랫동안 당신을 위해 신이 준비한 것 같은 무지개가 찰나의 시간 동안 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기분 좋게 걷다 보면 언제 비바람이 불었는지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언제고 다시 비바람이 칠 수 있으니 말이다. 아일랜드를 여행하면 일년 중 어느 때든 하루 만에 4계절의 모든 날씨를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홍차 아니면, 뜨거운 위스키 한잔.

비바람에 몸이 젖으면 한여름에도 뼛속까지 추위가 느껴질 수 있는데, 그럴 때면 어디든 눈에 띄는 펍(pub)에 들어가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도시를 여행하든 작은 시골 마을을 여행하든 아일랜드에서는 어디에서나 펍(pub)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펍(pub)은 대개 낮부터 영업을 시작해서 밤 12시에 문을 닫는다. 펍(pub) 안의 컴컴한 실내에 들어섰을 때 벌건 얼굴로 맥주를 마시고 있는 동네 할아버지가 윙크를 하며 ‘How are you?"라고 인사를 해도 너무 놀라지 말고, 벽난로 자리를 찾아 앉길 바란다. 그분들은 대낮부터 술에 절어있는 할 일 없는 노인들이 아니고, 비수기를 맞은 어부들이거나 새벽같이 일어나 할 일을 다 하고 한숨 돌리러 온 성실한 농부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벽난로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면 낙농 강국 아일랜드의 신선한 우유를 넣은 홍차(black tea) 한 잔에 몸을 녹여보면 어떨까 한다. (스콘(scone)에 버터와 라즈베리잼 그리고 생크림을 발라 함께 먹으면 정말 꿀맛이다.) 낮술 한잔이 크게 부담 없다면 뜨겁게 데운 위스키(hot whiskey)나 위스키가 들어간 아이리시 커피(irish coffee)를 마시며 훈훈한 기운을 몸속으로 흘려보내는 것도 꽤나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다.

DeBarra's Pub in Clonakilty, West Cork, Ireland @Discover Ireland

동네마다 다른 우유 맛, 맥주 맛.

아일랜드 사람들은 지역색이 강한 편이다. 지역마다 독특한 억양이 있어 어느 카운티(주(州)) 사람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또, 한국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소주가 있듯이 아일랜드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맥주가 있거나 지역의 양조장이 있다. 그래서인지 보통의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기네스 맥주가 언제나 베스트 맥주로 대우받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니 아일랜드를 여행하면서 펍(pub)에서 지역 특산 맥주나 또는 위스키를 맛보는 것도 또 하나의 묘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낙농국가인 만큼 유제품의 품질이 매우 높은 편인데, 우유뿐만 아니라 각종 유제품도 지역에 따라 브랜드가 다르다. 어떤 것은 진짜 우유에서 풀 맛이 나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꽤 고소한 맛이 나는 것도 있다. 그렇지만 매일 버터를 바른 토스트에 우유를 잔뜩 넣은 라테를 마시며, 치즈 샌드위치를 즐기다 보면 집으로 돌아갈 때는 바지가 작아진 것을 느끼게 될지 모르니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흐린 창밖을 바라보며 차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당신에게는 아일랜드가 딱 일지도.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책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에서 아일랜드를 수줍고도 온화한 곳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정말 동의한다. 아무리 큰 도시라 해도 30분만 차를 타고 나가면 넓고 푸른 들판과 바다가 펼쳐진다. 또 가까운 숲 속에서 가볍게 트레킹을 하다 보면 작은 새들의 예쁜 목소리에 기분이 좋아지고, 가끔은 여우와 사슴이 멀리서 나와 함께 걷고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힐 때도 있다. 사면이 바닷가인 아일랜드 바닷가에서 운이 좋으면 해달이나 돌고래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도 있고, 밤하늘 가득 떠오르는 별과 환한 달에 마음을 쉽게 빼앗기기도 한다.

딩글(Dingle), 케리(Kerry)주의 해변 마을. @Discover Ireland

빗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창가 옆에서 차를 마시면서 느끼는 공기의 아늑함을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아일랜드와 딱 맞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쩌면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라서 아일랜드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이곳에서 10년 동안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쁘게 여행하는 한국인들에게 섬나라 아일랜드는 유럽 여행의 일정에서 쉽게 리스트에 들기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비행기나 배를 타고 입국하는 번거로움을 무릅 쓰더라도 아일랜드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여행해 볼만한 즐거움이 가득한 곳이라 말하고 싶다.

이제부터 나는 아일랜드에서 국제결혼을 하고 살면서 아이와 함께 한 여행들을 전하려 한다. 하지만 더블린의 기네스 맥주 공장이나 해리포터의 배경이 된 트리니티 대학의 도서관과 같이 한국에 잘 알려진 관광지는 잠시 서랍에 넣어 두기로 했다. 대신에 우리 세 가족이 영화를 통해 알려진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를 여행하면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펼쳐 보이고자 한다. 두근두근.


* 아일랜드에 사는 한국인의 아일랜드 여행기

아일랜드 사람과 결혼한 뒤 10년 동안 아일랜드 코크(Cork)에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 잘 알려진 관광지 대신 이야기가 있는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를 여행하는 세 가족의 여행기입니다. 특히 아일랜드 영화의 무대가 된 장소를 여행하며, 그곳과 관련된 인물과 숨은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 글쓴이 - 도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 길에서 만난 아일랜드 사람과 결혼을 했습니다. 올 해로 10년째 아일랜드에서 타향살이를 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을 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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