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자율협약 어긴 노루페인트? 발암성 물질 뿜어내는 페인트 유통 의혹
페인트 업계 "자동차 보수용으로 금지된 페인트 쓴다"
환경부 "유성 도료에서 수성 도료로 전환되는 과정"
[더팩트ㅣ장병문 기자] 국민의 건강과 환경 보호를 위해 자동차 보수용 도료(리피니쉬 페인트)를 유성에서 수성으로 사용하자는 약속이 여전히 지켜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노루페인트 등 일부 페인트 기업들은 리피니쉬 페인트 대리점에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함유 기준치를 훌쩍 넘는 도료를 유통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눈앞의 이익만 쫓는 일부 페인트 기업으로 인해 국민 건강과 환경이 위협받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관계부처인 환경부는 적발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23일 더팩트 취재에 따르면 최근 수도권의 한 리피니쉬 페인트 대리점에 공업용 유성 도료가 유통되고 있다. 해당 대리점에는 노루페인트가 생산한 공업용 도료가 한 쪽 벽면에 가득 쌓여 있다. 지난달 26일 생산된 이 도료는 희석제로 우레탄과 신나가 사용됐으며, VOCs 함유량은 600g/L이다. 자동차 보수용으로 사용해야 하는 페인트의 VOCs 함유 기준은 200g/L이다.
VOCs는 차를 도장하는 과정에서 대기 중으로 휘발된다. 이때 자외선과 만나 광화학 반응을 일으키면 악취와 오존을 생성한다. 특히 고농도에 신체가 노출되면 호흡기와 눈을 자극해 염증을 유발하고 신경계 장애를 일으키는 등 인체에 유해한 발암성 물질이다.
공업용 유성 도료가 리피니쉬 페인트 대리점에 있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이 도료가 자동차 정비소로 넘어가는 순간 법을 어기게 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리피니쉬 페인트 대리점은 공업용 유성 도료를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대량으로 있을 이유가 없다. 대부분 자동차 정비소 등으로 흘러들어간다고 보면 된다"고 귀뜸했다. 그는 "대리점이 차량 정비소로 유통하기 때문에 법적 책임은 대리점 사장이 지게 된다. 페인트 제조사의 처벌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문제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VOCs 기준치 3배가 넘는 유성 도료가 주택가 인근 차량 정비소로 흘러들어 가고 있는데 노루페인트 등 도료 제조사들이 이를 방관하고 이득을 보고 있는 셈이다.
노루페인트는 자사의 공업용 유성 도료가 자동차 보수용 도료로 유통되고 있는 것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당국은 유성 도료의 유해성을 인지하고 지난 2021년 법을 개정했다. 환경부는 차량 도장에 사용되는 '베이스코트 페인트'의 VOCs 함유 기준을 기존 420g/L 이하에서 200g/L 이하로 강화했다.
당시 환경부는 VOCs가 자동차 도장 정비소에서 주로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건설기계장비, 선박, 완성차 제조사 등에도 VOCs 함유량이 높은 도료를 사용하지만, 규모가 큰 공장에서는 VOCs 유출을 막는 포집기 설비를 갖추고 있고 작업자들은 안전복을 착용하고 있다. 반면 규모가 작은 자동차 정비소에는 유해물질을 막는 설비를 갖추고 있지 않아 VOCs 주요 발생지로 꼽히고 있다. 환경부는 포집기 시설이 없는 자동차 공업소 등에는 VOCs 함유량 200(g/L) 이하의 도료만 사용하도록 법을 고쳤다. 이를 어기고 유통한 대리점과 제조사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법이 개정됐지만, 도료 제조 기업 스스로도 환경 부담이 적은 페인트를 생산·유통하자는 의견에 뜻을 모았다. 국내 페인트 제조사들은 2022년 자동차 보수용 도료를 수성 도료(희석제로 물을 사용해 환경 부담이 적은 페인트)로 사용하기로 자율협약을 체결했다. 당시 협약은 법적 구속력이 없었지만 업계가 환경 부담이 적은 제품으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자율협약에 참여한 도료 업체는 KCC, 노루페인트, 강남제비스코, 조광페인트, 삼화페인트공업, 엑솔타코팅시스템즈, 유니온화학공업, 씨알엠, PPG코리아 등이다.
업계에서는 관련 법이 강화된 지 3년이 지났지만 도장 작업 현장은 달라진 게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국 리피니쉬 페인트 대리점에서 자동차 보수용으로 수성 도료를 취급하는 곳은 거의 없는 것 같다"며 "자동차 도장 작업 현장에서 수성 도료는 유성 도료보다 비싸고 작업 속도도 느리다는 인식이 깔려 있어 몇몇 페인트 기업들이 유성 도료를 계속 유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수성 도료가 처음 나왔을 땐 유성보다 가격이 비싸고 건조 시간도 길었지만 최근에는 기술 개발과 원가 절감을 통해 가격과 건조 시간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자동차 도장 업계 관계자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리피니쉬 페인트 대리점에서는 관련 법과 자율협약을 지키기 위해 수성 도료를 생산·유통하는 페인트 기업만 손해라는 말도 나왔다.
현장 분위기와 다르게 환경부는 수성 도료 전환이 어느정도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내렸다. 환경부 관계자는 "수성과 유성 사용 비율을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수성 도료를 사용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며 "다만 현장 단속이 쉽지 않아 유성 도료 사용을 근절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대수 전 국민의힘 국회의원(현 공항철도 사장)은 지난해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노루페인트가 자동차 보수용 유성 도료를 유통한 것을 지적하기 위해 조성국 노루페인트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조성국 대표가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불발됐다.
노루페인트는 고 한정대 창업주가 1945년 세운 대한오브세트잉크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57년 '노루표' 상표를 등록하면서 소비자에게 이름을 알렸다. 현재 한정대 창업주의 아들 한영재 회장이 노루페인트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jangb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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