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하려고 하면 너무 쑥쓰러워서 기자 눈 피하려는 이 소심남
(Feel터뷰!) JTBC 드라마 [놀아주는 여자]의 엄태구 배우를 만나다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배우의 아우라와 수줍음 많은 극 내향인의 상반된 모습이다. 인터뷰 내내 소개팅에 어렵게 나온 사람처럼 어쩔 줄 몰라 했다. 눈이 마주치면 부끄러워 눈웃음 짓고, 맑은 눈망울로 경청하며 묻고 답하는 시간이 신선했다. 그러면서도 욕심나는 캐릭터, 장르 등은 확신에 찬 눈빛을 반짝여 직업인 엄태구의 프로다운 면모도 짐작할 수 있었다.
로코 변신에 불안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에 안심한 듯 보였다. 그는 로코는 해봤으니 멜로를 해보고 싶다며 연기 변신의 갈증을 토해냈다. 내추럴 본 연기자인 줄 알았건만 “배우로서의 길을 심각하게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다”며 솔직하게 고백해 놀랐다. 다행히 지금은 직업인 엄태구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는 그의 직업정신을 들어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로코 연기 갈증 다음에는 멜로
-연기 변신의 호평과 높은 화제성으로 연일 반응이 뜨겁다. 첫 로맨틱 코미디 도전이다. '놀아 주는 여자'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로맨틱 코미디를 해보고 싶었다. 전작이 '구해줘', '낙원의 밤', '홈타운' 등이라. 내내 어두운 작품만 하다 보니 몸이 자연스럽게 밝고 경쾌한 작품을 찾았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촬영하면서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로코가 앞으로 안 들어오겠다 고민되기도 했었지만. 시청자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었다. 1화 보면서도 사실 불안했다. 제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확신이 없었건만 회차를 거듭하면서 화제성이 생겨서 감사한 마음이 한가득이다. 드라마를 좋아해 주시고 재미있다 해주셔서 감사하다. 대본이 좋았고 후반작업까지 멋지게 나올 수 있도록 보정도 잘 해주셨다. 아참! 댓글도 챙겨 봤다. 기억나는 댓글도 있다. ‘누아르 금지’였던 거 같다. (웃음) 그만큼 서지환을 좋아해 주신 거라 믿고 있다”
-모든 연기가 그렇겠지만 특히 로맨틱 코미디는 상대 배우와의 케미가 8 할이다. 한선화 배우와 '구해줘' 이후 5년 만에 재회했다.
“첫 촬영이 문자를 잘못 보낸 장면이었는데 수월하게 찍을 수 있었다. 다행히도 선화 씨와 5년 전 '구해줘'에서 만났던 사이라 오랜만에 연기하는 설렘과 떨림이 동시에 있었다. '구해줘' 때도 말을 못 놓고 있다가 마지막에서야 놓기 시작했다. '놀아주는 여자' 촬영 때도 말 놓는 구면이라 초반 어색함을 줄이는 데 도움받았다. 제가 편해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타입이고 먼저 다가가질 못한다. 상대방이 편한 쪽으로 맞추려는 성향이 있는데 좀 편하게 말해달라고 부탁하면 말을 놓으려고 노력한다. (웃음)”
-고은하를 사이에 둔 연적이었지만 연대를 펼치는 장현우 검사 권율과는 10년 만에 재회했다.
“맞다. '잉투기'(2013) 때 함께 했고 오래전부터 함께 고생한 사이여서 그런지 드라마 촬영하면서 깊게 친해진 기분이다. 로코는 처음이다 보니 형한테 의지를 많이 하게 되었다. 다시 한번 형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서지환은 불독파 보스의 아들이었지만 과거를 청산하고 육가공회사 목마른 사슴의 대표로서 모범적인 삶을 사는 인물이다. 겉은 까칠하지만 내면은 순수해, 많은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 매력적인 인물이나 판타지, 코미디가 섞여 있어 촬영 중 현타오는 때도 많았을 것 같다.
“연기는 (어떤 연기든) 하면 할수록 어럽다. 그래서 오버하는 장면마저도 매번 진심으로 다가가려고 했다. 일할 때는 카리스마와 무게감을 잡고 은하와 있을 때는 삐걱대는 모습으로 차이를 두려 했다. 무게감 잡는 상황에서도 미묘한 선을 지키려고 했는데 상대, 상황마다 매번 달랐다.
현타 오는 장면은 너무 많았지만.. (웃음) 그중에서도 멋있는 척하면서 식당으로 들어가는 상황 바람이 부는 장면이었다. 5개월을 이미 부끄러움을 이기며 촬영했는데, 새로운 장소에 가면 왜 이리도 늘 새롭게 민망하고.. 긴장되는지 모르겠다. 부끄러움은 어느 촬영장이나 마찬가지다. 노하우라면, 테이크를 반복하다 보면 그 공기에 취해 민망함이 덜어진다. (웃음)”
-현장에서 대본은 안 배우라는 소문이 있다. 애드리브나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음.. (뜸 들이며..) 그렇다고 대답하면 계속 다 외워 와야 하는데.. (웃음) 대본이 하루 전에만 나오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보통은 대본대로 하고 컷이 안 나면 이어서 계속하는 편이다. 상대와 있을 때는 애드리브는 지양하고 혼자 있는 장면에서 필요하다면 한다. ‘애기야 가자’는 대본에 있었는데 ‘오빠가 라면 끓여 줄게’는 제가 한 애드리브 대사다. 계단이 생각보다 오르는 데 시간이 걸려서 한 번은 멈춰서 뭔가를 해야 했다. 평소에 안 쓰는 말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왜 그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해봤다. (웃음)”
직업으로서의 배우, 힘든 점
-연기를 그만두려고 했던 사연은.
“연기 시작은 19살 때 멋있어 보여서였다. (웃음) 하다 보니 이렇게 힘들지는 몰랐다. 현장에 적응도 잘 못하고 연기도 잘 못해서 욕먹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힘들었다. 생각만큼 연기를 잘 못한다는 생각, 주변에서 부정적인 코멘트도 들었다. 여러 가지를 열심히 해봤는데 반응이 안 좋으니 연기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만두려고 했다.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쯤 이미 오랜 시간을 배우로 살아왔더라.
하지만 다른 일을 찾아야 하나 방황하고 있었을 때 결정적으로 배우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겠다고 확신한 작품 '밀정'을 만났다. 연기 방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받는 기분이라 제게는 은인 같은 작품이다. '밀정'을 끝내고 직업 배우의 길을 결심했다. 현장에서 김지운 감독님과 송강호 배우님이 따듯하게 대해주셨다. 술도 잘 못 먹었지만 같이 자리해 주시고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유도해 주셨다.
이거 말고는 잘하는 게 없어서 어렵지만 이 길을 가고 있다. (잘할 수 있는지) 불안한 순간에 비하면 (잘 해서) 보람을 느끼거나 성취감은 조금 적긴 하다. (웃음)”
-내향인의 대명사다. 배우의 성격과 직업적인 배우 성향이 확연히 달라 힘든 점은 없나.
“현장에서도 동료 배우나 스태프와 쉽게 친해지지 못해서도 힘들었다. 여러 방법을 동원해서 극복해 보려고 했었는데 오히려 그 이후가 어색해지더라. 그래서 나만의 방법으로 다가가려는 시행착오가 좀 있었다.
그러다가 예능 '바퀴 달린 집'을 통해 좋은 선배들을 만났고 그 이후 단점을 좋게 봐주셨다. 그나마 답답한 모습을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어 신기했고 용기를 얻었다. 굳이 어딜 가서 뭘 하려고 안 해도 다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한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 살아있는 순간이 담긴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연기는 어떤 식으로 캐릭터와 일치하도록 채워가나, 혹은 비워내나.
“슛 들어가면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고 항상 준비한다. 잘하고 싶은데 잘 안되는 때도 많다. 어쨌거나 연기는 혼자 준비하고 혼자 싸워야 하는 일이라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예전에는 적성에 안 맞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상상하고 무언가를 꺼내놓는 게 혼자 있길 좋아하는 제 성격과 잘 맞았다.
연기하는 순간은 확 저질러 버려서 잘 해내려고 한다. 대본에만 집중해서 본능에 따라 분석하고 해석하는 스타일이다. 준비를 많이 하고 가면 현장에서 에너지로 채워서 연기하는 편이다. 집중해서 딴생각을 덜고자 한다. 완성본을 봤을 때 어색하게 나오면 그것만 한 괴로움도 없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어떻게든 진심으로 하려고 노력한다. (지금까지의 설명은) 직업으로 삼으면 누구나 겪는 마음가짐이지 않을까. (웃음)”
-천생 배우처럼 끼와 흥을 타고나는 배우와 본인만의 매력, 혹은 무기가 있다면 알려달라.
“어렸을 때는 흥, 끼, 재능이 많은 분이 부러웠다. 자라면서는 각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본연의 무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도 저만의 무기가 있는 것 같은데, 그건 보시는 분들이 말씀해 주시는 게 아닐까. 제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다.. (웃음)”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지만 예능, 로코 등 계속 도전하길 좋아하는 용기를 내는 타입 같다.
“엄청 두려워하다가 결국 선택해야 하니까 이끌려서 하게 된다. [바퀴 달린 집]은 8개월 동안 사람도 안 만나고 있었는데 밥만 먹고 가면 된다고 해서 스타일리스트가 주는 옷만 입고 집에서 바로 간 거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적응하는 모습이 그대로 나온 거다. 첫 예능이라 긴장되기도 했고 말도 잘 못했었다.
지금은 이번 작품도 찍고, '조명가게', '낙원의 밤'도 찍은 후라 좀 편해졌다. 연습을 따로 한 건 없지만 여러 사람들, 카메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가 되었다. '유퀴즈'에 나오게 된 것도 팬분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표현의 일환이다. 회사와 논의 중인데 어떠한 방식으로도 소통할 기회를 만들고자 기획 중이다”
-은하와 천진난만하게 놀았지만 실제는 뭘 하면서 노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악역이나 힘든 캐릭터를 자주 했는데 역할에 빠져나오는 방법이 있다면 들려달라.
“딱히 없다. 쉴 때는 본가에 내려가서 강아지 엄지나 부모님과 산책한다. 가만히 집에 있으면 그게 휴식이라 느끼는 것 같다. 그냥 집밥 먹고 혼자 시간을 보낸다. 특별히 뭘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지는 않는다. 취미는 없었는데 재활 때문에 헬스를 다니고 좋아져서 그 이후로 계속하고 있다.
저는 작품이 끝나면 다 보내버리는 타입이다. 그 감정을 오랫동안 가지려고 안 한다. 온. 오프가 잘 되는 편이다. 잘 나왔오면 좋고, 잘 못했다고 느끼면 계속 복기한다. 그래서 촬영 때 한 테이크 더 가는 걸 좋아한다. 한 번 더 찍고 싶다는 말도 잘 못했는데 요즘은 눈치 봐가면서 한 번 더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는 편이다. (웃음)”
-'놀아주는 여자'는 엄태구의 필모에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나.
“기존 색깔과 다른 색깔을 보여드릴 수 있었던 터닝 포인트다. 새로운 캐릭터를 해봤고 시간이 지나 다시 보더라도 변함없는 진심을 전달받을 수 있는 작품이라 감사했다. 상업, 독립 작품 따지지 않고 이야기가 좋으면 선택하게 되는 것 같다. 형 작품에 조감독도 했던 동갑 최수혁 감독의 단편 '업보'에도 친분으로 출연했다. 하고 싶은 장르나 캐릭터가 온다면 몸이 반응한다. (지금 생각만으로는) 정통 멜로나, 코미디도 해보고 싶다.
무엇보다 엄태구가 나온다고 했을 때 기대되는 작품이란 소리를 듣고 싶다. 물론 저도 열심히 해야겠지만 운도 따라야 했다. ‘기대되는 배우’란 수식어를 갖고 싶다”
글: 장혜령
사진: TEAM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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