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콤비 탄생…신유빈-우다 3-2 대역전→WTT 런던 8강행

런던으로 향하는 여정은 늘 가볍지 않다. 하지만 21살 신유빈은 지치지 않는다. 아시아선수권 단체전을 마친 지 고작 일주일, 이번엔 WTT 스타 컨텐더 런던 무대다. 혼합복식에서는 뜻밖의 파트너와 손을 잡았다. 일본 남자 탁구의 왼손 에이스 우다 유키아(세계 26위). 오른손인 신유빈과 왼손 우다의 조합, 이른바 ‘한일 혼복’이 성사된 순간부터 탁구 팬들 사이에선 말 그대로 웅성거림이 이어졌다. 장점은 분명하다. 시야가 자연스럽게 좌우로 넓어지고, 포지셔닝이 겹치지 않는다. 백·포핸드 분담이 깔끔해 리턴 템포를 한 박자 더 당길 수 있다. 그 효과는 첫 경기에서 바로 확인됐다. 신유빈-우다 조는 런던 혼복 16강에서 인도의 마누시 사아-디야 치탈레 조를 풀세트 접전 끝에 3-2(11-9, 9-11, 7-11, 11-6, 11-7)로 꺾고 8강행을 확정했다.

경기 내용도 ‘한일 콤비’의 목적에 딱 맞았다. 1게임을 힘겹게 11-9로 따냈지만, 2·3게임을 내주며 1-2로 밀렸을 때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2게임 8-3 리드를 지키지 못한 아쉬움, 3게임 시소 흐름에서 연속 실점으로 스코어를 내준 흔들림이 있었지만 4게임 시작과 함께 연속 4득점으로 리듬을 되찾았다. 키 포인트는 서브-리시브 이후 첫 3구 전개. 우다의 왼손 서브로 코스를 비틀고, 신유빈이 네트 앞에서 짧게 눌러주는 ‘짧·길’ 변주가 살아나자 상대가 다시 수동적으로 바뀌었다. 마지막 5게임도 초반 3연속 득점으로 기선을 제압, 2~3점 차 리드를 끝까지 관리하며 11-7로 마무리했다. 혼복은 호흡이 전부라고 흔히 말한다. 이 조합은 첫 단추부터 나쁘지 않다.

우다 유키아는 2001년생 왼손 셰이크핸드. 지난 8월 WTT 유럽 스매시에서 한국 간판 장우진을 3-0으로 완파하며 주가를 확 끌어올렸다. 백핸드 푸시 템포가 빠르고, 포핸드 드라이브를 사선 깊숙이 찌르는 능력이 좋다. 여기에 신유빈의 강점이 더해진다. 상대 회전과 스피드를 흡수해 맞드라이브로 되받아치는 능력, 짧은 볼에서 손목으로 각을 바꾸는 감각, 그리고 랠리가 길어질수록 흔들리지 않는 밸런스. 둘 다 ‘공격 리듬형’이라 초반부터 랠리가 타오르는 그림이 빈번하다. 무엇보다 오른손-왼손의 동선상 이점 덕에 미세한 충돌 없이 사이드 체인지가 자연스럽다. 복식에서 이 사소한 0.2초가 득점을 가른다.

이번 런던 대회는 신유빈에게 더 특별하다. 제106회 전국체전과 일정이 겹쳤지만, 그는 과감히 ‘런던행’을 택했다. 이유는 분명하다. 단식과 혼복에서 랭킹 포인트를 쌓아야 하고, 무엇보다 이달 초 WTT 중국 스매시에서 되찾은 ‘중국전 자신감’을 이어가야 한다. 당시 신유빈은 여자 단식 4강에 올라 한국 여자 선수 최초로 WTT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16강에서 세계 4위 콰이만을 잡고 중국전 8연패 고리를 끊었고, 8강에서는 주천희를 4-2로 꺾었다. 세계 1위 쑨잉사에게 1-4로 졌지만 한 게임을 따내며 “해볼 만하다”는 감각을 몸에 심었다. 그때부터 그의 샷 선택은 한층 담대해졌다. 역회전 쇼트에 지지 않고 맞드라이브를 걸고, 깊은 수비에서도 코너로 뽑아내는 ‘길게-짧게’ 변주가 눈에 띄게 늘었다.

대표팀 차원에서도 신유빈의 상승세는 중요하다. 다음 달 말 중국 청두에서 혼성단체 월드컵이 열린다. 남자팀은 장우진, 안재현, 오준성, 박강현, 여자팀은 신유빈, 이은혜, 김나영, 최효주가 부름을 받았다. 지난해 대회에서 신유빈과 짝을 맞췄던 임종훈, 조대성은 이번 명단에 없다. 새 ‘황금 콤비’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고, 왼손인 박강현과의 혼복 카드가 강하게 점쳐진다. 오른손-왼손 조합은 앞서 말했듯 동선과 포지셔닝에서 유리하다. 오상은 감독도 “조별리그부터 경기 수가 많아 탄력적 운영이 필요하다”고 했을 만큼, 이번 런던에서의 실험과 경험치는 그대로 대표팀 전략의 재료가 된다. 신유빈-우다 조의 ‘현장 데이터’ 또한 귀중하다. 왼손 파트너와 호흡을 어떻게 다듬어야 하는지, 어느 구간에서 서브-리시브를 바꿀지, 타임아웃에서 어떤 변주가 통하는지까지, 런던은 작은 리허설 무대다.

물론 체력 변수는 늘 따라붙는다. 올해만 10개가 넘는 국제대회에 나섰다. 단식·복식·혼복을 동시에 소화하며 랭킹을 고르게 끌어올렸지만, 피로가 누적되면 손목과 하체 반응 속도가 눈에 띄게 둔해진다. 그럼에도 최근 경기에서 신유빈의 풋워크는 오히려 더 가벼워 보인다. 짧은 볼 처리에서 한 박자 더 기다렸다가 ‘툭’ 하고 넘기는 여유가 생겼고, 백사이드에서 포핸드로 돌아나가는 스텝이 간결해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멘탈 루틴이다. 크게 뒤지는 게임에서도, 듀스에서 맞붙는 순간에도 그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는다. 중국 스매시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었고, 그 믿음이 지금 런던에서 한층 또렷해진다.

런던 혼복 8강 상대는 대만의 린윤주-정이징 조. 린윤주는 특유의 유연한 타점을 가진 오른손, 정이징은 리듬 끊기에 능한 빠른 손목을 갖고 있다. 한·일 콤비가 이 고비를 넘기려면, 초반 서브 게임에서 상대를 ‘길게’ 묶어두는 게 핵심이다. 짧은 서브로 네트를 부르면 대만 조는 순식간에 템포를 올린다. 반대로 롱서브와 롱리시브 비중을 조금만 높여 랠리를 길게 끌고 가면 신유빈의 체력과 우다의 백핸드 템포가 살아난다. 결국 혼복은 첫 3구 싸움이 승부다. 오늘 16강에서 2·3게임을 내줬던 이유도 3구에서 리턴이 짧게 떠오른 탓이었다. 신유빈의 포지셔닝을 반 걸음 뒤로 빼고, 우다의 왼손으로 각을 먼저 틀어주는 세팅만 지켜지면 8강은 충분히 승산이 있다.

단식도 놓칠 수 없다. 신유빈은 WTT의 와일드카드 초청으로 런던 단식 본선 무대에 선다. 중국 톱랭커와 수비형 유럽 선수들이 한데 모이는 이 대회는 스타일 공부가 되기 딱 좋다. 회전량이 많은 중국 선수에게는 빠른 타점으로, 체인지업을 즐기는 유럽 선수들에겐 첫 3구에서 승부를 보는 방식으로, 매 라운드마다 설계가 달라져야 한다. 지난 중국 스매시에서 보여준 ‘상대 스타일 맞춤 조합’이 런던에서 다시 통할지, 그 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성장이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한일 콤비, 만리장성까지 뚫을 수 있을까?” 단기적으로는 런던 8강, 4강의 길이고, 장기적으로는 청두 혼성단체 월드컵의 승부처다. 섣부른 장담은 금물이다. 다만 분명한 건, 신유빈이 지금 ‘이기는 법’을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회전과 각, 리듬과 담대함. 21살의 라켓 끝에서 모든 요소가 맞물리기 시작했다. 런던의 조명 아래, 그는 또 한 번 조용히 승부를 만들 준비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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