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억류된 한국인 6명이 있다…"세상이 너를 잊었다"는 말이 가장 고통스러울 그들 [스프]

김혜영 기자 2024. 10. 17. 09: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 스피커] 북한에 억류된 한국인들을 잊지 않는다는 것
통일부가 북한에 억류된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 등 국민 6명의 송환을 촉구하기 위해 이제석 광고연구소와 공동 제작한 영상의 캡처 화면
 

비주류란 이유로, 마이크를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의 스피커가 되는 저널리즘.
 
 
"낮에는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와 허리가 끊어질 듯한 중노동이 내 육체를 망가뜨렸다. (...) 북한 검사는 똑같은 말을 하고 돌아갔다. 그는 '당신 가족들은 이미 당신을 잊었어. 당신네 정부도 당신을 잊었고. 이제 당신이 여기에 있는 것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라고 말했다."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선교사의 회고록 내용입니다. 그는 45살이던 지난 2012년 북한을 전복하려 했다는 혐의로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성치 않은 몸으로 강제 노역을 했습니다. 두 달 새 몸무게가 20kg가량 빠져 영양실조에 걸리고 당뇨 등 지병까지 악화해 병원까지 가야 했지만, 북한 당국은 그를 매번 노동교화소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는 당시 신체적 고통만큼이나 심리적 좌절감도 극심했다고 회고했습니다. 특히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던 '고문' 중 하나는, 북한 검사가 반복했던 이 말이었습니다. "세상은 당신을 잊었다.", "그러니 당신은 결코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735일간 북한에 억류됐다가 2014년 석방된 케네스 배 선교사 (연합뉴스)

하지만 북한 검사의 으름장과 달리, 미국이라는 국가와 많은 국민들은 그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당신을 위해 기도한다'는 편지가 셀 수 없도록 많이 전해졌고, 심지어는 그의 이야기로 재구성된 드라마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은 그의 석방을 촉구했고, 오바마 당시 대통령도 그가 풀려나야 마땅한 선한 사람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 2014년 가을, 케네스 배 선교사는 무려 735일이라는 기나긴 억류 끝에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어 고국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 그가 석방된 그 시기를 전후해 북한에서 체포됐거나 복역 중이던 한국인들은 약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억류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케네스 배 선교사는 억류 기간에 가족들과 전화 통화를 하거나, 심지어 평양에 온 어머니를 직접 만나기도 했지만, 한국인 억류자들은 가족들과 연락을 주고받기는커녕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북측이 그간 남측의 송환 요구는 물론이고, 가족들의 생사 확인 호소에도 일절 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돌아오지 못한 한국인 6명

현재까지 북한에 억류된 한국인은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 등 모두 6명입니다. (※ 각주 : 북한에서 돌아오지 못한 한국인은 전시 납북자, 전후 납북자, 국군포로, 억류자 등으로 분류됩니다. 전시 납북자는 10만 명 내외로 추정되며, 전후 납북자는 당초 3천835명이었다가 3천319명이 귀환해 현재는 516명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국군포로는 약 8만 2천 명으로 추정되는데, 포로 교환과 탈북으로 한국에 돌아온 인원은 8천423명에 불과합니다. 이 글에서는 북한 김정은 정권 이후 한국에 돌아오지 못한 억류자 6명의 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김정욱 선교사는 올해로 11년째, 즉 이달 기준 4천 일 넘게 북한에 억류돼 있습니다. 그는 중국 단둥을 기반으로 탈북민 등을 대상으로 구호·선교 활동을 펼치다가 2013년 10월 북한 당국에 체포됐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5월 재판에서 국가전복음모죄, 간첩죄, 반국가선전·선동죄, 비법국경출입죄를 저지른 혐의로 무기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가 인도적 지원과 구호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북한은 법정 최고형인 사형 바로 아래 단계를 그에게 선고한 것입니다.

김정욱 선교사와 마찬가지로 중국 단둥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김국기·최춘길 선교사는 각각 2014년 10월과 12월에 체포돼 2015년 6월에 무기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탈북민 쉼터를 운영하면서 숙식 등을 제공했는데, 이들에게는 국가전복음모죄와 간첩죄, 파괴암해죄, 비법국경출입죄가 적용됐습니다. 그리고 김국기 선교사는 이달 기준으로, 최춘길 선교사는 오는 12월 기준으로 각각 억류 10년째가 됐습니다. 앞서 글 서두에 소개한 케네스 배 선교사는 한국전쟁 이후 미국인으로서는 가장 긴 기간인 735일 억류됐는데, 이들 3명의 한국인 선교사는 그보다 약 5배가량 더 긴 세월을 고통스럽게 견디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부가 북한에 억류된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 등 국민 6명의 송환을 촉구하기 위해 이제석 광고연구소와 공동 제작한 영상의 캡처 화면

북한은 이들 한국인 선교사 모두를 '국정원의 첩자'로 인식해 중대한 범죄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그만큼, 이들을 미국 국적의 케네스 배 선교사보다 훨씬 더 혹독한 조건 아래 억류시켰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이들 선교사 외에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북한이탈주민 3명도 2016년부터 억류가 된 상태인데, 북한이 탈북자를 '변절자'로 여기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은 더욱 열악한 환경에 놓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억류자 가족들은 이들의 송환 요청은 물론이고, 최소한 생사 확인이라도 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지만, 북한은 일절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이 진작 영사 접견권을 인정했다면 억류자들의 생사와 구금 장소를 모를 수가 없는데, 애당초 국제인권법을 무시한 반인도적 결정을 한 데 이어 자신들이 당사국인 여러 규약, 협약도 무시하는 처사를 10년 넘게 이어오는 것입니다.
 

"석 달 뒤면 환갑인데..." 11년째 매일같이 기도하는 형

김정욱 선교사의 형인 김정삼 씨는 <더 스피커>와의 인터뷰에서 석 달 뒤면 환갑을 맞는 동생을 위해 하루에도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남북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상황이지만, 지금까지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국제사회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동생이 절대 좌절하지 말고, 아무리 힘들어도 더 인내하고, 어떻게든 견뎌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음은 김정삼 씨와의 일문일답입니다.

2014년 2월 27일 평양에서 기자회견하는 김정욱 선교사의 모습 (연합뉴스)

Q. 올해로 11년째가 됐습니다. 가족분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A.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한 30분씩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회사에 가서도, 또 퇴근할 때도 한 번, 이렇게 하루에 세 번 이상은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어제는 억류자뿐 아니라 납북자, 국군포로분들을 위한 기도회를 나가서 6시간 동안 기도를 드리고 왔습니다. (제수씨는) 더 하다고 봐야죠. 거의 쉴 새 없이 그냥 계속 기도하는 걸로 압니다. 동생 아들들은 아버지(김정욱 씨)가 억류돼 있는 동안 무사히 군 복무를 마쳤습니다.

Q. 김정욱 씨의 마지막 체포 경위가 불분명한데, 어떻게 붙잡힌 것으로 알고 계신지요.

A. 불분명하죠. 저도 확답을 못 드리겠습니다. 제가 직접 보지 못했으니까요. 동생은 중국 단둥에서, 먹고살기 어려워 중국에 나온 북한 주민들에게 식사도 주고, 신앙심도 전해주고 그런 방문 선교사 일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단둥에 있으면 북한하고 가까우니 정보도 들었겠죠. 그러다 보면, (북한 주민들 상황과 관련해) 뭐가 문제구나, 그런 생각을 했겠지요. 그런 생각에 의해서 꼬임에 (북한 당국의 유인책에) 넘어갔다고는 생각할 수는 있죠, 제 입장에서는.

Q. 김정욱 씨를 마지막으로 본 건 언제였나요?

A. 동생을 마지막으로 만난 건 2013년 추석을 며칠 앞뒀을 때였어요. 그때 한국에 온 동생한테 '뭐 필요한 게 없느냐'라고 물었더니, 북한 사람들 들여보낼 때 선물로 주는 국수가 여름이라서 변질되는 것 같아 유통이 어렵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는, 국수 공장을 운영하는 지인에게 부탁해서, 포장 재질이라든가 기계에 대해서 같이 설명을 들었어요. 그때 헤어지면서 '추석 며칠 안 남았는데, 아버지 계신 시골에 안 갈 거냐?'라고 제가 동생한테 물었어요. 그때 동생이, 자기가 볼일 본 다음에 와서 그때 인사를 드리겠다고 했어요. 만약에 동생이 그거를 계획했다면 (북한이 주장하는 국가 전복 음모 등의 범죄를 계획했다면), 굳이 여기 와서 국수 공장 돌아볼 일도 없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자기가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서 혹 북한에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면, 시골에 계신 아버지한테 가서 인사라도 드리지 않았겠어요?

Q. 형님으로서 기억하는 김정욱 씨는 어떤 동생이었나요?

A. 활동력이 있었죠. 축구도 잘하고 다른 운동도 좋아하고. 신앙적으로는 원래 평신도였는데, 나중에는 목사 안수를 받으면서 신학을 팠죠. 그리고 선교사 파송하기 전에는 40일간 금식을 했습니다. 그 40일간 금식을 아무나 하나요. 본인이 체력이 강하다고 해도 그게 쉽지가 않잖아요. 집념이 강한 게 맞아요.

Q. 그렇게 강한 집념을 가진 분이니, 아주 힘든 상황 속에서도 버티고 계실 거라고 보시는 거죠?

A. 그렇죠. 그런 면에서는 아무래도 힘든 상황을 버티는데 조금 나을 수는 있지만, 동생도 뭐 이제 60이 넘어가니까... 동생이 64년 1월생이라 석 달 뒤면 환갑이에요. 그러니까 또 모르지. 나이 먹으니까, 건강할 때 버티는 거하고 다를 수는 있겠죠.

김정욱 선교사가 지난 2008년 중국 단둥 선교 활동에 사용하기 위한 물품에 손을 얹고 사진을 찍고 있다. (김정욱 선교사 가족 제공)

Q.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현 윤석열 정부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부가 아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렇다 할 성과를 낸 적도 없었습니다. 반면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든 트럼프 행정부든, 북한과의 관계가 나쁠 대로 나빠진 상황에서도 억류됐던 자국민을 구출해 냈어요. 물론 근본 원인은 북한에 있습니다만, 그 대조적인 모습을 보며 만감이 교차하셨을 것 같아요.

A. 그렇죠. 박근혜 정부 때는 일단 동생이 붙잡힌 데다 남북대화가 막혀 있었으니까 '이제 큰일 났다' 하는 생각이 더 컸죠. 그래서 정부에다 내가 빨리 힘써서 어떻게 좀 해봐달라고 요청해도 그게 보이지가 않았죠. 그다음 문재인 정부 때는 남북 정상회담도 하고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으니까 기대를 한 측면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그 기대가 무너지고 사라져 버리게 됐어요. 지금 정부는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EU 대표단 분들도 만났는데, 그런 것도 만약 정부에서 힘을 안 실어줬다면 불가능했겠죠.

다만 역대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미국이라든가 캐나다라든가 억류자를 석방한 다른 나라들을 보면 그 국가들의 힘, 그 인권을 생각하는 국력이 우리와도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그건 다른 분들도 다 인식을 하더라고요. 헌법에 명시된 국민을 보호할 국가의 책무가 분명히 있는데, 그걸 또 다른 정치적인 부분들에 의해 밑으로 내려버리면, 힘을 싣기가 어려워지겠죠.

물론 정치라는 게 꼭 제 동생만을 위해서 하는 건 아니고, 국민을 위해서,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서, 여러 관계를 위해서 하는 것이긴 합니다. 그래도 제가 봤을 때는 남북 관계의 뒤에서 풀어갈 수 있는 부분들은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임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자국민 3명을 북한에서 풀어줄 때, 미국도 지금 우리 상황보다 더 위험한 단계까지 갔습니다. 북한과 미국이 서로 핵무기를 금방이라도 꺼낼 듯한 단계로 갔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 전에 3명이 풀려났죠. 그 험한 막말이 오가면서도 미국은 국무장관이 가서 비행기에 태워서 3명을 석방했어요. 그래서 그런 걸 봤을 때는 정치적으로 그분들이 북한에 어떤 마음을 갖고 하느냐에 따라서 풀려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Q. 석 달 뒤 환갑을 맞는 동생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있으실까요.

A. 그간 힘들게 지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든 인내하고 견뎌줬으면 좋겠습니다. 가족들이든 친척들이든 교회에서든, 또 지금은 정부도, 언론도, 전 세계적으로 힘을 싣고 있는 상황이니까, 좀 더 힘내서 견뎌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동생은 또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생각이라고 하면 더 깊이 와닿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향해서도 가고 있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좌절하지 말고, 신앙적으로 잘 버티리라 믿고. 그때가 되면 만나서 같이 예배드린다거나, 맛있는 것도 같이 먹고, 뭐든지 동생 하고 싶은 대로 해주고 싶습니다. 그 마음이 꽉 차 있다는 걸 동생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혜영 기자 khy@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