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MBC가 만들어낸 이상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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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쥴리’ 유포 세력, 김어준 등 총공세
MBC, 대통령 말 잘 안 들리는데도 자막
美 폄훼 방향으로 해석 이끌어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 순방 기간 국내에선 허위 정보가 끊이지 않았다. 맨 먼저 등장한 것은 ‘천공 뉴욕 도착’ 루머였다. 각종 소셜미디어에 백발에 수염 기르고 흰 한복 걸친 남자가 뉴욕 공항에 서있는 사진이 퍼졌다. 대통령이 순방 중 무속인과 만날 것이라는 암시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촬영 시점이나 방문 목적 등 주요 정보는 숨기고 뉴욕만 부각시킨 전형적인 ‘가짜 뉴스(Fake News)’였다.
정상적인 언론은 이 소식을 다루지 않았다. 검색만 잠깐 해봐도 천공의 뉴욕 초청이 취소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사진을 누가 왜 찍었는지 등이 모두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아무 확인 없이 ‘옳거니’ 하면서 이를 퍼다 날랐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이른바 ‘쥴리’를 만들어냈던 유튜버들이 극성맞게 활동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뿐이 아니었다. 대통령 순방 기간 내내 ‘장례식 망사 모자는 왕족만 쓰는 것’ ‘조문록 왼쪽 기재는 망신’ 등 허위 정보가 끊임없이 등장해 ‘국격 훼손’ 논란을 일으켰다.
여기엔 지상파까지 가세했다. 지난 20일 KBS1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는 탁현민 전(前)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전화 인터뷰에 나와 대통령이 조문록을 잘못 썼다면서 “통상 정상들은 오른쪽에 쓴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같은 왼쪽 페이지에 쓴 다른 나라 정상들 사진이 수두룩한데도 ‘의전 전문가’ 행세를 하며 정치 공세를 벌인 것이다. TBS ‘뉴스공장’의 김어준은 “베일은… 장례식에서 로열 패밀리만 쓰는 것, 모르시는 것 같아 알려드린다”고 했다가 자기 발언을 다시 주워 담아야 했다. 잠시 팩트체크만 했더라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었을텐데 다들 ‘한 건’ 잡았다는 생각이 앞섰을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은 MBC가 장식했다. 지난 22일 뉴욕에서 대통령의 발언은 분명 부적절했다. 극소수 참모에게 건넨 말이었지만 대통령의 언어로 공개되기에 부적절했다. 하지만 취재진 카메라에 잡힌 이상 묻어두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잘 안들리는 부분도 중간중간 있었다. 언론들은 이럴 때 취재를 통해 발언자의 의도와 상황 등을 충분히 파악해 전달해야 오해를 피할 수 있다.
MBC는 자막으로 자기들 ‘해석’을 담았다. 자막 중 ‘이 XX’와 ‘쪽팔려서’의 음성은 비교적 선명하게 들리지만, ‘바이든’이나 ‘(미국) 국회’ 부분은 잘 들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MBC가 붙인 자막이 더해지면, 윤 대통령이 미(美) 국회를 욕설로 지칭했다는 방향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잘 안 들리면 자막 옆에 물음표 같은 것을 붙여두는 방법도 있었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 뇌는 불충분한 정보를 메꾸기 위해 어떤 텍스트가 잘 안 들리거나 잘 안 보이면 다른 감각기관으로 수용한 정보까지도 적극 활용한다. 이번처럼 소리가 불분명할 때 자막을 붙이면 선명하게 들리는 효과가 있다. 문자가 불충분한 음성 정보를 메꿔 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과거 TV 개그 소재로도 활용되었던, 가사가 잘 들리지 않는 영어 팝송에 비슷한 음절이 들어간 한글 자막을 달면 한국 노래 가사처럼 들리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바로 이 과정에서 왜곡이나 편향이 발생하기 쉽다. 당장 대통령실 발표대로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자막을 깔면 전혀 다르게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인간의 연약한 인지(認知)로 인해 처음 노출된 정보가 닻(anchor)처럼 머리에 콱 박혀 판단 기준이 되는 ‘기준점 편향’까지 작용한다. MBC의 ‘해석’은 자막을 통해 바로 이 기준점을 차지했다. 다른 방송사들의 보도는 MBC가 먼저 ‘터뜨린’ 이후에 등장했다.
한번 잘못된 인식은 바꾸기 힘들다. 이제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인지,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인지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의 영역에 들어갔다. 아무리 증거를 갖다 대고 발언 당사자가 아니라 해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세월호 침몰 외부 충격설’ ‘천안함 좌초설’ 같은 것들이 난무하는 이 영역을 이미 알고 있다. 그곳은 불충분한 팩트나 허위 정보라도 어떤 식으로든 엮어 자신들이 원하는 현실, 이른바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사는 이상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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