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초자연적 소재와 초사실적 연출이 만난 웰메이드 스릴러
“험한 것이 나왔다.”
22일 개봉한 영화 ‘파묘’의 광고 카피를 흉내 내 이 영화를 평가한다면 “센 것이 나왔다.” ‘파묘’는 2월이 다 가도록 시름시름 앓으며 맥을 못추던 한국 영화판에서 관객을 빨아들일 강력한 재미를 장착했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로 오컬트 전문 감독이라는 별명을 얻은 장재현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연출작으로 두 전작의 장점들을 매끄럽게 다듬은 웰메이드 작품이다. 개봉 전 입소문을 타고 개봉일 오전 7시 기준으로 예매율 54%, 예매 관객 수가 37만명까지 치솟았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파묘’의 소재는 풍수와 무속신앙이다. 특히 최민식이 연기하는 풍수사의 역할과 풍수 이야기, 즉 대한민국 상위 0.1%가 대대손손 성공과 번영을 위해 기를 쓰고 매달린다는 묫자리에 관한 이야기는 ‘파묘’를 좀 더 대중적인 관객들의 관심사로 확장한다. 여기에 헬스클럽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꼰대’를 ‘극혐’하는 요즘 젊은 무당의 캐릭터가 버무려지며 무거운 오컬트 보다는 깔끔한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로 완성 됐다.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은 아버지와 아들, 갓태어난 아기까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앓던 부유한 교포 가족을 만나러 엘에이(LA)로 간다. 화림은 상담을 의뢰한 장손과 만나고 집안에 흐르는 기운을 느끼며 조부의 묫자리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챈다. 화림과 봉길은 거액과 함께 이장을 요청받고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을 찾아간다. 강원도 깊은 산자락에 위치한 묫자리에 도착하자 상덕은 얼어붙으며 손을 떼겠다고 한다.
‘파묘’는 무속신앙의 용어들을 활용한 6장으로 구성돼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이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은 풍수, 무속 신앙, 죽음 등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을 하지만 ‘먹고사니즘’에 충실한 네 명의 각계 전문가가 묘를 파고 화장으로 마무리하기 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굿을 벌이고 관을 꺼내고, “험한 것”이 빠져나오고, 이로 인해 초자연적 현상을 겪고 네명이 이와 맞서는 과정이 자로 잰 듯 군더더기 하나 없는 연출력으로 팽팽하게 달려가는 맛이 일품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김고은이 파묘 일꾼들을 귀신에게서 보호하기 위해 대살굿을 벌이는 장면은 그동안 무속을 다룬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실성 넘친다. 장재현 감독은 2년 반 동안 취재하면서 영화에 등장하는 무속신앙의 정보에 사실성을 입혔다고 한다.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기자들과 만난 장감독은 “무속 퍼포먼스를 비주얼로 접근하지 않고 정확한 목적이 보이도록 찍고 싶었다”면서 “화림이 자신의 입에 피를 묻히고 자신의 몸을 칼로 긋고, 피를 먹는 행위 하나하나가 구체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무속인들이 현장의 디테일까지 꼼꼼히 가이드를 했고 실제 화면 뒷부분에 등장한다”고 말했다.
영화의 주제의식과도 밀접하게 연관되며 “허리가 끊긴” 영화는 2부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등장시킨다. 우여곡절 끝에 파묘를 끝낸 자리에서 첩장, 즉 기존에 놓여있던 관 아래 세로로 우뚝 서서 파묻힌 거대한 관이 하나 더 발견되는 것이다. 네 인물은 이 관에 숨겨진 비밀을 캐내고 더 험한 것과 맞서게 된다. 이 ‘더 험한’ 것에 대한 반응은 다소 엇갈릴 수 있다. 오컬트 장르에 충실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관객들이라면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난데없는 문제의 실체가 거슬린다거나 ‘깬다’는 느낌까지 가지 않는 이유는 네 배우가 멱살 잡고 끌고 가는 연기의 힘 덕이다. 역시나 명불허전인 최민식이 안정감 있게 끌고 가며 중심을 잡고, 영화의 온도를 자유자재로 올렸다 내렸다 하는 김고은의 에너지, 조력자로 모자람도 더함도 없는 유해진과 이도현의 연기 조합은 어느 한 장면 허투루 낭비하지 않는다. 장재현 감독은 ‘사바하’를 마치고 “하드한 호러영화를 준비하다가” 코로나 시국에 극장의 답답한 느낌에 거부감이 들어 “화끈하고 체험적인 영화로 방향을 선회해 ‘파묘’를 완성했다”고 말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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