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보다 더 경계하는 존재, 중국
북한이 가장 경계하는 나라는 미국이 아니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중국을 가장 큰 장애물로 본다. 겉으로는 전략적 동맹을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내부에선 중국의 영향력 침투를 정권 붕괴 가능성으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중국에 경제적·외교적으로 지나치게 의존하면 자립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공포가 강하게 작용한다.

이런 인식이 체제 내부에 깊이 자리 잡은 배경에는 역사적 경험과 이념적 반발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중국을 단순한 우방이 아닌 잠재적 위협으로 보는 시각이 북한 정권 내에 고착된 셈이다.

역사 속에 담긴 ‘중국은 숙적’이라는 인식
북한이 중국을 경계해온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한국전쟁 직후 중국과 관련된 인사들이 대거 숙청됐고, 중국 인민해방군의 철수 역시 이런 맥락으로 해석된다. 연구 자료에 따르면 북한이 중국과 맺은 동맹 관계에도 불구하고 상호 신뢰는 상당히 낮았으며, 중국을 향한 불신의 뿌리는 깊다는 평가다.

김일성이 전쟁기록에서 중국 관련 언급을 극히 제한했던 것도 이러한 불신의 증거로 지적된다. 이는 북한이 중국을 ‘형제국’이 아닌 경쟁국·감시대상으로 본다는 내부 사고 구조를 드러낸다. 이런 역사 인식은 오늘날 김정은 체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중 수교가 불러온 외교적 배신감
1992년 한·중 수교는 북한에 있어 충격적인 외교 사건이었다. 미국조차 북한 정권을 인정하지 않던 시점에 중국이 한국과 단시간 내에 수교를 맺자 북한 내부의 배신감과 불신이 폭발했다. 이후 북한은 중국과 거리 두기를 본격화했고, 중국 기업 참여의 제한·중국 인력의 추방 등이 뒤따랐다.

이러한 조치는 단순한 경제조치 이상의 정치적 메시지로 읽혔다. 특히 북한 고위층 숙청과 권력 재편 과정에서 중국과 연결된 인물들이 타겟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는 북한이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성과 주권을 강조하는 전략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략적 거리두기, 실질적 통제는 피한다
북한은 적국이라 여겨지는 미국과조차 때로 대화의 문을 열지만, 중국과는 다른 태도를 유지한다. 대외개방과 경제협력이 논의될 때에도 중국 기업 대신 제3국 기업을 선택하는 등 의도적인 거리두기를 실행 중이다. 통신망 구축 사업에서조차 중국 업체 대신 이집트 기업을 택한 사례가 등장했고, 중국의 영향력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전략이 드러난다. 이는 “중국과는 동맹이지만 주권은 넘기지 않는다”는 메시지로도 해석된다. 북한 내부에서 중국은 동맹이 아닌 견제의 대상이며, 이는 현재의 외교·경제 운용 방식에서도 확인된다.

형식적 친선 유지, 내부 속도는 다르다
김정은은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양국 관계 강화를 강조하는 답전을 보냈지만, 이는 외교적 언어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많다. 중국은 여전히 북한에 대한 전략적 통제를 꿈꾸지만, 북한은 이를 인지하고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는 북한이 미·중 갈등을 체제 유지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즉, 중국을 향한 두 겹의 전략,형식적 우호와 실질적 경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북한은 자신만의 외교적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 김정은 체제에게 중국은 우방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경계해야 할 내부 변수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