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사랑, 잘가 내 강아지 풋코야 [반려인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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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개를 떠나보냈다.
그러는 동안 개는 나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할 기회를 주었다.
그 과정은 개의 생명을 어떻게든 더 연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가능한 한 고통 없이 지내다가 평화롭게 생을 마감하기를 기원하는 기도 같은 것이었다.
어떤 이들은 개를 잃은 내가 식음을 전폐하거나 혹시 개를 따라 죽지는 않을지 은근히 걱정하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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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개를 떠나보냈다. 봄을 미리 빌려온 것처럼 포근하고 화창한 날이었다. 개는 만 스무 해에서 두 달 모자란 시간을 살았고, 우리는 그중 대부분의 날들을 함께 지냈다. 한 15년 정도는 개가 너무 혈기왕성하고 자기주장이 강해서 힘들었지만 재미있었고, 재미있었지만 힘들었다. 그 후 3년쯤은 아, 이 정도면 개 키울 만하다 싶은 평온의 시절을 누렸다. 마지막 2년은 점점 본격적이고 구체적으로 개가 노쇠해가던 시기였다. 개는 매일 조금씩 더 늙어가면서 넘어지거나 부딪치거나 끙끙거렸다. 이상하게도 그런 개의 노화 과정은 나의 기억을 덥석덥석 집어삼켜버려서, 돌아보면 개가 조금 더 건강했던 어제가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지곤 하는 것이었다. 반려동물의 노화와 죽음과 그에 따르는 이별에 대해 짐짓 담담한 체해오던 나는 그것들이 해상도를 높이며 바싹 근접해오자 금세 안절부절못하며 심연을 드러내고 말았다.
개를 떠나보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9년 전 이맘때 이 개의 엄마를 병으로 잃었는데, 그때는 개가 아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나서 불과 한 달 만에 모든 일이 해일처럼 들이닥치는 바람에 통 경황이 없었다. 내가 노력하거나 준비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번엔 달랐다. 이 개는 정말이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제 삶을 살았고, 아주 천천히 조금씩 소멸에 다가갔다. 그러는 동안 개는 나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할 기회를 주었다.
개는 일어설 힘이 없어 종일 누워 지내면서도 차를 타고 나가면 차창 밖으로 바람을 느끼고 싶어 했다. 좋아할 만한 음식을 열심히 만들어 코앞에 갖다 대면 싫다고 고개를 돌리다가도 문득 사과나 옥수수, 브로콜리 따위를 맛있게 먹기도 했다. 의사표현이 희미해진 개가 뭘 원하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조금 덜 힘든지 놓치지 않기 위해 종일 개를 붙잡고 들여다보았다. 인생 전체를 되짚어봐도 이만큼 열심히 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 과정은 개의 생명을 어떻게든 더 연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가능한 한 고통 없이 지내다가 평화롭게 생을 마감하기를 기원하는 기도 같은 것이었다. 어디선가 들은 다른 집 반려동물의 경우처럼 내 품에서 잠들듯 자연사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그런 행운까지는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진통제 없이 버티지 못하는 시간이 점차 늘어갔고, 내가 결단을 내리는 게 우리의 오랜 우정에 값하는 일이라는 사실이 하루하루 더 또렷해지고 단단해져갔다.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어 금요일 저녁 조용한 시간을 잡았다. 목이 메어 말을 맺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개의 죽음을 SNS에 알리고 연재해오던 만화에도 그리자 많은 이들이 애도와 위로를 보내주었다. 따뜻한 애정 한번 받아보지 못한 쓸쓸한 죽음, 최소한의 존엄성조차 지켜지지 못한 비참한 죽음, 제대로 꽃피워보지 못한 허망한 죽음들이 도처에 널린 세상에서 제 삶을 실컷 살다가 고통 없는 죽음을 맞은 개 한 마리가 이렇게 융숭한 추모를 받아도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떤 이들은 개를 잃은 내가 식음을 전폐하거나 혹시 개를 따라 죽지는 않을지 은근히 걱정하는 눈치였다. 개가 내 품을 떠난 후 요즘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자신의 개를 무척 사랑했다, 그래서 결국 불행해졌다. 이건 어딘가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개와 살기를 참 잘했노라고, 작별 후에도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길이 틀림없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지금 그걸 찾는 중이다. 안녕 내 사랑, 내 강아지 풋코야.
정우열 (만화가·일러스트레이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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