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아는 백조? 누구도 몰랐던 백조!

노정연 기자 2026. 5. 18.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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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몬테카를로 발레단 ‘백조…’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한 장면. ⓒ 라보라예술기획·영앤잎섬


백조의 날개처럼 부드러운 순백의 튀튀(tutu), 머리엔 하얀 깃털 왕관을 쓰고 우아하게 춤추는 발레리나들. 발레 <백조의 호수> 하면 떠오르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 백조들은 다르다. 무용수들의 손끝에는 날카로운 깃털이 돋아나 있고, 근육의 결을 드러낸 신체는 거친 뒷발질과 하악질로 야성적인 에너지를 뿜어낸다.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관능적인 잔혹 동화 <백조의 호수(LAC)>가 한국 관객을 만났다. 지난 13일 화성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16~17일 서울을 거쳐 20일 대전 공연을 앞두고 있다. 프랑스 현대무용의 거장 장크리스토프 마요가 안무해 2011년 초연한 이 작품은 우리가 알던 고전의 환상을 산산이 깨뜨린다.

흑백 무성영화로 막을 여는 무대는 시작부터 낯설다. 마요는 낮에는 백조, 밤에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공주 ‘오데트’와 왕자 ‘지그프리트’의 비극적 사랑이라는 틀은 유지하되 서사를 심리극으로 압축했다. 불안과 결핍 속에 흔들리는 왕가와 주변 인물 등 다층적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특히 욕망과 집착을 상징하며 관계를 분열하는 ‘밤의 여왕’의 존재감을 확장했다.

치밀하게 얽힌 인물 관계와 빠른 장면 전환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다. 그 중심에는 왕실의 은밀한 치정이 자리한다. 과거 왕과 부적절한 관계였던 밤의 여왕, 두 사람 사이 불륜으로 태어난 흑조라는 설정은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진 아수라장 속에서 왕과 밤의 여왕, 왕자와 흑조가 뒤엉켜 파드되(2인무)를 추고, 이를 지켜보는 왕비의 불안은 비극적 파멸의 씨앗이 된다.

무엇보다 강렬한 것은 백조들이다. 우아한 존재였던 백조들은 인간의 욕망과 불안, 파멸을 끌어안은 야생의 생명체로 변모한다. 찌를 듯 뾰족한 깃털로 무장한 백조들은 섬세하고 정교한 군무 대신 거친 에너지를 폭발시키며 묘한 쾌감을 안긴다. 의상 디자이너 필립 기요텔은 현대적이고 파격적인 의상으로 작품의 강렬한 인상을 완성했다.

120분 동안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파격의 힘은 관객을 매혹하기 충분했다. 2016년 몬테카를로 발레단에 입단 후 고국 무대에 오른 수석무용수 안재용은 유약하면서도 치명적인 욕망에 흔들리는 인간적인 왕자 지그프리트를 완벽하게 그려내며 찬사를 받았다.

사실 <백조의 호수>는 태생부터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1877년 볼쇼이 극장 초연 당시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오늘날의 형태는 차이콥스키 사후인 1895년, 마리우스 페티파와 레프 이바노프가 새롭게 재안무한 버전을 기반으로 한다. 순백의 백조 군무, 오데트와 오딜을 한 명이 연기하는 1인 2역, 흑조의 ‘32회전 푸에테(Fouette)’ 등 지금의 상징적인 장면들도 이후에 완성됐다.

<백조의 호수>는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왔다. 영국 안무가 매슈 본의 <백조의 호수>(1995)가 대표적이다. 근육질의 ‘남성 백조’들이 맨몸에 깃털 바지를 입고 선보인 야성적 움직임은 충격 그 자체였다. 외로운 왕자의 심리로 서사를 재구성해 발레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변주로 손꼽힌다.

알렉산더 에크만(노르웨이 국립발레단)은 무대에 물 6000ℓ를 채워 거대한 호수를 구현하고 무용수들이 물속을 첨벙이는 원초적 야생성을 폭발시켰다. 앙줄랭 프렐조카주는 아름다운 호수 위에 공장을 세우려는 개발업자와 환경 파괴로 위협받는 백조들의 생태 위기를 다뤘다. 오데트 역시 수동적 공주가 아니라 환경 파괴에 맞서 싸우는 주체적 인물로 재탄생했다.

백조는 시대마다 다른 얼굴로 다시 태어나며 인간의 원초적 감정을 비춰낸다. 15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백조의 호수>가 탄생하는 이유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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