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할 땐 산] 레깅스 아가씨의 남친은 왜 안절부절못할까

이지형 '강호인문학' 저자 2022. 11. 2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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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의 7가지 이유
그림=윤성중 기자

산을 오르는 데 꼭 이유가 있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런 대화는 어떤가.

산을 왜 오르시나요?

산이 거기 있으니까.

하나마나한 답변이다. 궁색과 경박의 고백이라 생각한다. 어눌함을 가장한 철학적 답변으로 봐줘야 할까. 그런 게 철학이면 동네 장터의 흥정은 진리의 교본이겠다. 그럼 이런 문답은?

산을 왜 오르시나요?

내려오려고.

이것도 철학적인가. 전형적인 바보 답변으로 본다. 실체 없는 레토릭일 뿐이다.

심술을 부려보는 건 실은 내 답변도 마땅찮아서다. 주말 새벽이면 부리나케 짐을 챙겨 산에 오르면서도, 누군가 등산의 이유를 물으면 답할 자신이 없다. 건강 때문인가 생각하다가도, 과연 그것 때문만일까 주춤한다.

건강이 아니면 뭘까. 산 능선이나 정상에 선 채 먼 풍경을 바라보는 커플들의 흔한 감탄은 "와, 정말 아름다워!"다. 맞는 얘기이지만 상투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실속이 필요하다.

'배라'처럼 31가지는 아니어도

그래서 하루는 산에 오르는 대신, 공원 벤치에 앉아 정색을 하고 골몰했다. 도대체 나는 왜 산에 오를까? 건강을 위해 그냥 거기 서있는 산에 올랐다가, 아름다운 풍경에 형식적으로 반한 뒤, 어차피 내려올 길이니 내려올 수도 있는 거지만 조금은 내밀한 등산의 이유를 찾아내고 싶었다.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처럼 31가지는 아니어도 나만의 등산 이유 톱7 정도는 마련하고 싶었다. 7개의 이유도 발견 못 하면 앞으로 산에 가지 말아야지…. 유치한 결심까지 해봤다. 그렇게 결연한 마음으로 정리한 나만의 등산 이유 7가지다.

1 그들의 질투를 감상하다

산에서만 만날 수 있는 희귀한 풍경들이 있다. 예컨대 레깅스 커플도 그중 하나다. 그런 커플 중엔 레깅스 차림의 여성이 앞서고 남자 친구가 그 뒤를 바짝 따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뒤에 선 남성의 움직임에서 조바심이 느껴질 때가 있다. 무언가 엄폐하려는 듯한 인상이다. 때때로 뒤를 돌아보기도 한다. 젊은 저 남성은 왜 저렇게 전전긍긍할까. 고민 끝에 이유를 추론해 냈다.

아무래도 딱 붙은 레깅스로 인해 드러난 여자 친구의 몸매를 가려주려는 것 같다. 뒤에서 올라오는 다른 남성들의 시선을 차단하려는, 그러니까 어쩌면 질투심 비슷한…. 그밖에도 산에는 특별한 풍경들이 많다.

2 블라인드 코너

영어에 '블라인드 코너blind corner'라는 말이 있다. 저 앞의 모퉁이를 돌았을 때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예상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등산 중에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가면 블라인드 코너를 만나도 두려울 게 없다. 저 고개를 넘든, 이 모퉁이에서 급하게 길을 꺾든 다시 안전한 등산로가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을 타다 보면 가끔 등산로를 이탈한다. 이때 무리해서 능선이나 계곡을 오르다가 블라인드 코너를 만날 때가 있다. 막다른 길을 만나 오도 가도 못하고 벌벌 떤 적이 있다. 다행히 무사히 하산했고 추억이 됐지만, 다른 분들에게 권하진 못하겠다.

3 '로쿠스 솔루스'를 찾아서

100년 전쯤 활동하던 프랑스 소설가 중에 레몽 루셀이란 이가 있다. 이 작가의 소설을 통해 알게 된 라틴어가 '로쿠스 솔루스Locus Solus'다. 우리말로 풀면 '외딴 곳', '은밀한 장소' 쯤이다. 등산을 오래 다니다 보면 그렇게 나만의 아지트 같은 곳이 생긴다. 후미지고 외진 곳이 아니어도 좋다.

주위에 사람들이 있어도 그들을 잠시 잊고 나에게 집중한다면, 그때 내가 앉은 곳이 로쿠스 솔루스다. 굴곡진 소나무 아래든, 계곡의 한 구석이든, 정상 옆의 작은 바위이든 주위를 잊으면 그곳이 로쿠스 솔루스다.

4 7시간의 침묵

동네 선원禪院에 간 적이 있다. 선원장은 눈 감고 정좌한 채 마음속의 흙탕물을 가라앉히라 했다. 도심의 선방에서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일은 상쾌했다. 무엇보다 침묵의 도움이 컸다고 생각한다. 언어를 버리는 건 사유를 쉬는 것이다.

그런데 선방보다 더 강렬한 침묵의 체험을 나는 '홀로 산행'에서 얻는다. 누구에게도 말 걸지 않고,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은 채 7시간을 느릿하게 걸으면 마음속 흙탕물이 저절로 가라앉는다. 어느 그늘에 앉아 잠시 눈이라도 부칠라치면 그대로 선정禪定이다.

5 누구나 철학자

산에 관한 시詩들이 여럿 있다. 그중 내용으로만 기억하는 구절이 있다. 산을 오를 때는 실존주의자였다가, 정상에 오르면 유물론자가 된다는 얘기다. 그럴 듯하다. 온 몸의 진과 힘을 다 빼며 산을 오르다 보면 본질, 이데아 등등은 잊는다. '지금 나'의 존재를 절감하며 우리는 슬쩍 실존주의란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잠깐이다. 정상을 밟는 순간 내 발밑의 산을 굽어보고 내려다보며 그 산의 소유자가 된다. 이런 걸 딱히 유물론이라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산행을 통해 잠시나마 철학적이 되는 건 맞는 얘기라 생각한다.

6 미적 체험

20여 년 전 북한산을 처음 오를 때 한국화를 그리는 미대 교수 한 분과 동행했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아마도 구기동에서 탕춘대 능선을 통해 향로봉 쪽으로 올랐던 듯하다. 교수님이 계곡 대신 능선을 택한 이유는 뚜렷했다. 산수화의 원리를 속성 과외해 주겠다는 의도였다.

북한산의 유려한 산세가 어떻게 화폭에 담기는지 진진한 산상 강의를 들었다. 그때 귀동냥한 '일획론一劃論'과 '기운생동氣韻生動'의 개념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얘기들이 동양미학의 한 핵심을 짚고 있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 물론 미학 따위 잊는다 해도 미적 체험은 오롯하다.

7 한 줄기 바람에 반하다

무덥던 그해 여름, 일상의 스트레스마저 화병 수준으로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오던 그날, 열을 분출하며 휴식도 없이 북한산의 어느 안부에 씩씩거리며 올라 쓰러질 듯 암문暗門의 돌기둥에 몸을 기댔다. 그때 저 아래, 산기슭에서 홀연히 치고 올라와 내 이마에 부딪던 한 줄기 찬바람….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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