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나눈 사이지만 더 심하다.." 60살 넘어가면 가족에게 받는 스트레스 3가지

가족은 가까울수록 좋다고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그 가까움이 스트레스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남에게는 절대 묻지 않을 것들을 가족이라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묻고, 서로 걱정한다는 명목으로 상대의 삶에 자꾸 들어가려 한다. 미워해서가 아니라 사랑해서 하는 말들인데도, 정작 그 말을 듣는 쪽은 지치는 일이 반복된다.

이상한 건 서로 나쁜 마음이 없는데도 관계가 자꾸 힘들어진다는 거다. 대체 뭐가 이 스트레스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는 걸까.

1. 다 큰 자식을 여전히 어린애 취급한다

일흔 살 부모에게 쉰 살 자식은 여전히 어릴 때 그 모습으로 남아 있다. 자식이 회사에서 수십 명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도, 부모 앞에 앉으면 다시 예전의 그 아들딸로 돌아간다.

그래서 돈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라거나, 그 나이에 운전은 그만하라거나 하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부모는 평생 해오던 걱정을 그대로 전한 것뿐이지만, 듣는 자식은 아직도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못 사는 사람 취급을 받는 기분이 든다. 역할이 굳어 있으면 사람이 아무리 변해도 관계는 예전 그대로 멈춰 있게 된다.

2. 도와준 걸 근거로 결정권까지 가지려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목돈을 보태주거나, 자식이 부모의 병원비를 대신 낼 때는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도움이 조용히 권리로 바뀌어간다.

내가 그렇게 도와줬는데 얼굴 한번 보는 게 그렇게 어렵냐는 서운함, 우리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왜 말을 안 듣냐는 답답함이 따라온다. 가족은 계약서를 쓰지 않기 때문에 누가 얼마나 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더 말할 자격이 있는지는 각자 마음속에서만 계산된다. 사랑으로 시작한 도움이 어느새 결정권을 주장하는 근거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3. 가족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명절엔 당연히 와야 하고, 아프면 당연히 자식이 챙겨야 하고, 가족끼리는 이 정도 말도 당연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다. 문제는 그 당연함의 기준이 부모와 자식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순간 상대에게 묻지 않게 된다. 얼마나 자주 만나고 싶은지, 어디까지 도와주면 좋을지 확인하지 않은 채로 서로 다른 기준을 들이대다 보면 똑같은 말도 한쪽에서는 걱정으로, 다른 쪽에서는 감시나 부담으로 들린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묻지 않는 습관이 오히려 서로를 가장 모르는 사이로 만들어버린다.

가족에게 받는 스트레스는 정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서로의 삶에 들어갈 권리가 여전히 많다고 믿기 때문에 생긴다. 어린애 취급하지 않고, 도움을 권리로 바꾸지 않고, 당연하다는 생각 대신 직접 물어보는 것. 이 세 가지만 바꿔도 가족 사이의 피로감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