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만든 전공의 구속에... 의료계 “대화하자더니 겁박”

오유진 기자 2024. 9. 2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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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은 의사·의대생의 신상 정보가 담긴 블랙리스트 '감사한 의사'를 유포한 사직 전공의 정 모씨가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경찰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전공의 집단 행동 등에 참여하지 않은 의사들의 신상 정보를 담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게시한 사직 전공의가 최근 구속된 가운데, 의료계는 잇달아 성명을 발표하며 반발하고 나섰다.

서울시의사회는 지난 21일 성명을 통해 사직 전공의 구속을 ‘본보기식 구속’이라 규정하면서 “참담함을 금치 못하겠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의사회는 “정부는 앞에서는 대화를 청하면서 뒤로는 검경을 통해 겁박하고 있다”며, 블랙리스트 작성을 “정부의 초법적 행위에 대한 저항”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정부와 정치권은 더 이상의 사직 전공의 탄압을 멈추고, 사태 해결에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북도의사회도 성명을 내고 “의료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노력해 온 의사들의 명단을 공개하는 행위를 범죄로 몰아가는 공안 통치의 전형”이라며 “정부가 의료계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개인적인 의견 표출을 이유로 사직 전공의를 구속하는 행위는 명백히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의료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구속된 사직 전공의를 즉시 석방할 것”을 촉구했다.

경기도의사회는 서울 이태원 인근에서 ‘전공의 구속 인권 유린 규탄’을 주제로 집회를 열고, “이런 정도의 소극적 의사 표현 조차 말살하는 것은 북한 수준의 인권 유린”이라고 했다. 구속된 전공의를 면회한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구속된 전공의와 리스트에 올라 피해를 입은 분들 모두가 정부가 만든 피해자”라며 “정부가 의사들 사이를 다 결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의료계에선 “증거 인멸 우려도 없고 도저히 구속 사안으로 볼 수 없다”며 정부는 물론 판사까지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복귀 전공의 신상을 공개하면서 사실상 조리돌림한 것은 상식적으로 있어선 안 되는 일”이라며 “복귀 전공의는 물론 현실적인 이유 등으로 복귀를 고민하고 있는 전공의들에게도 겁박이나 다름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공의는 “저런 신상 공개 때문에 복귀를 못하고 고민하고 있는 동료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고 했다.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사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배포하시는 분들은 스스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을 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란다”며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전공의들의 사직이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임을 의심하게 한다”고 글을 남겼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은 페이스북에 “(구속된) 정모씨의 행동은 그 취지가 마녀사냥과 다름없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썼다. 다만 이 둘 모두 적법한 구속인지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가운데 근무 중인 의사의 실명을 ‘감사한 의사 명단’이라는 제목으로 공개한 아카이브 사이트엔 최근 “추가적인 업데이트는 더 이상 하지 않고 이제 리스트를 고정하겠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운영자는 “어느 정도는 (아카이브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한다”며 “계속 언론에 소개되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에 좋지 않은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용자들에게 ‘보안 가이드라인’을 안내했다. 운영자는 “(아카이브) 링크를 카카오톡이나 네이버 댓글 등 국내 사이트에 올리면 안 된다”, “제대로 된 가상사설망(VPN)과 익명 네트워크 토르(Tor)를 같이 써야 한다” 등 지침을 안내하면서 이를 어기는 건 ‘저를 잡아가 주세요’라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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